[월요기획] 위기 속 국내 제조 산업, OEM→ODM 구조개편 반드시
국내 제조 생태계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K-제조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주문받은 대로 생산하는 기존의 OEM 구조를 넘어서 고도화된 ODM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패션 업계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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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의류 제조 산업이 지금의 상태에 머문다면 10년도 버티기 어렵다는 경고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봉제 공장의 줄폐업과 생산 인력의 고령화는 이미 수명을 다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신호다. 업계 관계자들은 개별 영세업체의 생존만 붙들어 두는 지원으로는 K-패션 제조를 살릴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장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제조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구조 전환의 방향으로는 하청 중심 구조를 넘어 기획과 디자인 역량까지 갖춘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으로의 전환이 꼽힌다.
K-제조를 국내에서 근근이 유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하는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결국 제조사가 개발 역량을 갖춘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봉제 공장 2만5000개 중 ‘OEM 방식이 80%’
현재 국내 봉제 현장의 한계는 자체 개발 역량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브랜드가 건네는 작업지시서에 따라 생산하고 공임만 받는 구조로는 인건비가 낮은 해외 공장에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국내 봉제 공장은 약 2만5000개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80% 이상이 여전히 OEM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고, 현장을 지키는 인력은 60대 이상이 주를 이룬다. 낮은 단가 구조까지 겹치면서 산업의 지속가능성은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지원은 여전히 OEM 공장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체질 개선보다는 연명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단순히 설비를 돌리는 공장이 아니라 브랜드에 디자인과 소재, 실루엣까지 먼저 제안할 수 있는 ODM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쉽게 대체되지 않는 파트너로 남을 수 있다. 단순 생산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고, 샘플 · 패턴 · 개발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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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생산 → 솔루션 파트너로, 해외 수주 경쟁력↑
이런 경쟁력은 국내 브랜드 대응뿐 아니라 해외 오더 유치 측면에서도 강점이 된다. 해외에서도 한국 샘플실과 패턴실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 직접 오더를 요청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빠른 납기와 소량 생산 대응력은 국내 제조가 가진 분명한 장점이다.
업계는 이 같은 변화가 일부 프로모션 업체만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영세 공장을 포함한 제조 생태계 전반의 살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개발 역량을 갖춘 제조사가 앞단에서 성과를 만들면, 그 주변의 협력 공장까지 함께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업체로는 국내 소싱의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는 굿트러스트(대표 박영근)와 비에파(대표 윤순민)가 있다. 굿트러스트는 개발형 제조사가 어떻게 지역 생산 네트워크까지 함께 끌고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의류 제조기업 굿트러스트는 지난해 7000만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2024년 대비 12% 성장하며 ‘메이드 인 코리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외 시장 수요에 맞춘 제품 개발을 병행한 결과다. 현재는 부산 지역 40여 개 협력 공장을 함께 이끌며 지역 제조 생태계까지 떠받치고 있다.
‘굿트러스트 · 비에파’ K-제조 뉴웨이브로 손꼽혀
비에파는 내부 개발 역량과 외부 협업 체계를 함께 운영하는 방식으로 제조 구조 전환의 또 다른 모델을 보여준다. 비에파는 자체 개발과 제조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시에 외부 5개 주요 생산업체와 협업 체계를 갖추고 있다. 모든 물량을 내부에서 처리하기보다 협력업체의 특화 역량을 활용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대형 프로모션 업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체 샘플 · 패턴 기술을 보유한 영세 업체들도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일본 오더를 꾸준히 유치하며 경쟁력을 이어가고 있다. 정준화 패션앤제이 대표는 “대학교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며 샘플과 패턴 기술을 익혔고, 이를 기반으로 부모님 세대부터 이어온 제조 공장을 물려받아 강점으로 전개하고 있다”라며 “단독 샘플실이나 패턴실에서 따로 진행하면 비용이 더 들지만, 우리 공장에서는 샘플·패턴·생산을 모두 한 번에 진행할 수 있어 좀 더 경쟁력 있는 단가로 대응할 수 있다.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주문을 꾸준히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협회 측도 개발 역량을 갖춘 제조회사를 키우는 것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핵심이라고 보고, 이를 위한 지원과 기반 조성에 힘쓰고 있다. 김왕시 한국패션협회 의류제조혁신 사업3부 이사는 “차세대 의류 제조 생태계의 핵심은 개발력을 갖춘 제조회사를 키우는 것”이라며 “그래야 그 효과가 아랫단까지 효율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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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 정교한 컨트롤, 지원 정책 ‘미스매칭’ 해소
이어 “현재 ODM 업체들은 외부 하청업체를 좀 더 정교하게 관리하기 위해 공장마다 생산 MD가 매일 품질을 체크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 공장에 무엇이 부족한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라며 “제조업체에 일감을 주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인력이 필요한지, 노후화된 생산 현장에서는 어떤 설비를 교체해야 하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정부나 협회도 제조업체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방식보다 패션 프로모션 업체를 통해 현장 의견을 받는 방식으로 지원한다면 미스매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정적으로 일감을 연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절실하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전환의 전제 조건은 결국 사람이다. 생산 공장에 샘플사와 패턴사 등 오더 기업에 먼저 제안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이 갖춰져야 역량 있는 프로모션 기업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생산 인력뿐 아니라 샘플사와 패턴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를 이어갈 인력 양성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5 의류제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체 제조업계 종사자 가운데 샘플사와 패턴사는 약 2%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는 이 인력이 1000명 아래로 떨어질 경우 북유럽처럼 자국 제조 기반이 사실상 사라진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패턴사의 경우 전국에 약 1167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 가운데 20~30대 젊은 패턴사는 약 80명뿐이다.
2030 젊은 패턴사 약 80명에 불과 “인재 양성 힘써야”
의류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디자이너, MD, 브랜드 론칭 분야로만 진로를 좁혀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 개선은 물론, 직업 인식 개선을 통해 이 같은 패션 전문 엔지니어 육성에 힘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학 안에서도 현업 전문가들이 직접 패턴과 샘플 교육에 참여해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샘플사와 패턴사 같은 개발 인력의 가치는 해외 오더 흐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제조 생태계의 경쟁력이 결국 이들 전문 인력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로제패턴실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로제패턴실은 수작업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완성도를 높이며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K-팝 아이돌 의상을 보고 한국 특유의 감각을 구현할 수 있는 패턴사와 협업하고 싶다며 직접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인트마틴 등 해외 유명 학교에서 졸업 작품 제작을 맡기기 위해 국내 패턴실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특수복 샘플 의뢰도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혜은 로제패턴실 대표는 “일부 해외에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 라벨을 얻기 위해 해외에서 생산을 마친 상품을 국내로 들여와 마무리만 한국에서 진행한 뒤 라벨을 붙이기도 한다. 그만큼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이름에 프리미엄이 있다는 뜻”이라며 “필요한 것은 그런 편법이 아니라, 해외 시장의 수요를 한국으로 끌어올 수 있도록 브랜딩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일이다. 지금은 제조업 전반의 고령화로 인해 실력이 있어도 해외 오더를 유치할 인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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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술 + 디지털 역량 ‘뉴 메이드 인 코리아’ 기대
K-봉제 산업의 미래는 단기 처방으로 바뀌지 않는다. 인력 양성, 제조업과 관련 직업에 대한 인식 전환, 디지털 기술 접목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해외 생산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력과 디자인 감도를 갖춘 K-브랜드가 많아질수록 생산 생태계도 더 단단해질 수 있다.
K-봉제는 더 이상 K-패션의 후방 산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소재 소싱부터 샘플 개발, 본 생산까지 아우르는 풀서비스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브랜드가 원하는 방향을 스케치만으로 제시해도 이를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ODM 역량을 키워야 한다. 결국 K-패션의 다음 경쟁력은 한국의 손기술에 개발력과 디지털 역량을 더한 ‘뉴 메이드 인 코리아’에 달려 있다.
<K-제조 산업>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6년 5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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