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br> 어느 인문학자의 가을 바람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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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어느 인문학자의 가을 바람에 관한 단상

Wednesday, Oct. 19, 2022 | 외고,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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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새벽 온갖 마술을 부리는 바람을 본다.  
바람은 자신이 가는 길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갈대는 마치 긴 다리를 자랑하는 분홍빛 플라멩코처럼  
목을 길게 빼고 흐트러진 머리를 살랑대며  
그의 결에 따라 부드럽게 춤을 춘다.  
산 위에 있는 커다란 나무는  땅 빛을 닮아가는 잎들을 흔들어  
떠오르는 햇살을 반사해 온통 반짝이며
아프리카 여인네들이 내어 지르는 듯한 환희의 소리를 토해 낸다
그 커다란 나무는
가지 위의 무성한 잎들이  
마지막 한 잎까지 다 떨어져  
어머니 대지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빨갛고 노란 정열을 내뿜으며  
바람과 사랑할 것이다.


‘바람둥이’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는 플레이보이(playboy)와 우머나이저(womanizer), 중국어로는 huahuagongzi(화화공자: 꽃을 좋아하는 사람), 일어로는 うわきもの(우와키모노), 스페인어로는 casa no va(카사노바: 집에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바람둥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어느 문화에서도 ‘바람’의 속성과 사람의 기질을 연결한 곳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렇다. 자연에 둘러싸여 가을 새벽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바람둥이는 한 사람,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는 속성 때문에 생겨난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본 가을바람이 바로 그랬다. 돈 후안 또는 돈 조반니라 불리는 전설의 바람둥이 돈 주앙 같았다. 그는 어떤 여성을 만나더라도 그 안에서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한다. 흔히 추녀라고 불리는 여성에게서도 남이 보지 못하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가을바람 역시 그렇다.  

가을바람은 자신이 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희롱하고 사랑한다. 그것이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잡초여도 괜찮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갈대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커다란 나무여도 상관없다. 모든 것을 희롱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내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색과 소리와 몸짓을 온 정열로 토하게 한다.  

그렇게 사랑하고는 가을바람은 가 버린다. 하지만 잡초나 갈대나 커다란 나무는 그 사랑을 후회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사랑의 찰나는 무덤덤한 영원보다 가치 있을 것이기에!  


■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 스토리
- 패션MD 시리즈

경력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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