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말(言)도 ‘스타일링’이 필요하다"

새해가 되면 거창한 마음가짐과 소박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현실적인 다짐들로 목록을 채우게 된다. 올해 리스트의 맨 윗줄에는 ‘말 예쁘게 하기’를 적었다. 평소 말을 밉게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니 이상하게 말이 툭툭 제멋대로 튀어 나간 순간들이 많았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어떻게 하면 말을 예쁘게 그리고 ‘태’ 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문득 아침 출근 준비 풍경이 떠올랐다. 거울 앞에서 그날 입을 옷을 고르고 머리를 매만지듯 오늘 하루 내가 쓸 말도 미리 ‘스타일링’을 해보면 어떨까? 매일 아침 옷을 고르듯 단어를 고른다면 실수의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패션의 완성은 흔히 얼굴(!)이나 신발이라고 하지만 그날 하루의 스타일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마침표는 결국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옷에 TPO(Time, Place, Occasion)가 있듯 말(言)에도 스타일링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핏(Fit)’이다. 우리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말이 입에서 쏟아져 나오려 할 때 그 말이 지금 눈앞의 상황과 어울리는지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옷을 수선하듯 대화도 상황과 상대의 감정에 맞춰 재단해야 한다. 실수를 저질러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상대에게 “도대체 일을 왜 이렇게 한 거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더라도, 잠깐 숨을 고르고 “나도 종종 하는 실수야. 다음엔 요렇게 해보면 어떨까?”라고 말의 품을 넉넉하게 늘려주는 것. 물론 매번 이러다간 몸에 사리가 층층이 쌓이겠지만 적어도 하루 한 번쯤은 내 말의 ‘핏’이 상대를 조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다.

소재, 즉 ‘텍스처(Texture)’도 중요하다. 같은 디자인의 니트라도 소재가 까슬거리면 손이 가지 않는 법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솔직함’이나 ‘팩트’라는 이름으로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기 쉽다. 하지만 이는 거친 마직 원단을 맨살에 입히는 것과 같다. 까슬거리는 소재에 피부가 예민하게 반응하듯 날 선 말에는 마음이 쉽게 다친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 쿠션어(‘미안하지만’, ‘혹시 시간 되면’, ‘덕분에’)를 레이어링(Layering)해 보면 어떨까. 부드러운 캐시미어가 닿을 때 기분이 좋아지듯 따뜻한 질감의 말투는 관계의 온도를 훈훈하게 높인다.

마지막으로 룩을 완성하는 건 디테일, 바로 ‘액세서리’다. 심플한 옷차림에 스카프나 브로치 하나만 더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밥 먹었어?”, “잘 자” 같은 밋밋한 일상 대화가 ‘베이직룩(Basic Look)’이라면 여기에 곁들이는 칭찬 한마디는 관계를 빛나게 하는 포인트 액세서리가 된다. “오늘 머리 스타일 참 잘 어울린다”, “네가 끓여준 커피가 제일 맛있어” 같은 사소한 칭찬은 상대방의 하루를 반짝이게 만든다. 작은 차이가 오래 사랑받는 옷을 만들듯 작은 칭찬과 감사의 인사가 우리를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스테디셀러’로 만든다

매년 팬톤이 선정하는 ‘올해의 컬러’가 변하듯 소통의 트렌드도 변한다. 개인적인 게 쿨해 보이던 각자도생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서로를 보듬는 ‘공감’과 ‘다정함’이 그 어떤 화려함보다 더 세련되고 멋스럽게 느껴진다.

새해에는 옷장뿐만 아니라 우리의 언어 습관도 한번 점검해 보면 좋겠다.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올 한 해 주위 사람들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최고의 스타일링이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6년 1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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