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정화 | 마혼코리아 대표 "윤리의 수익화 : 어떻게 윤리를 숫자로 바꾸는가?"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
25.12.05
Copy Link

[칼럼] 이정화 | 마혼코리아 대표


꽤 오랫동안 패션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산업이었다. 다른 산업이 필요와 생존, 효율의 논리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 왔다면 패션은 존재를 해석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영역이었다. ‘창의성, 자기표현, 개성, 아름다움’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붙고 인간의 감각과 욕망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곳, 그게 바로 패션이었다. 나는 늘 패션이 경제의 논리와 감성의 논리 사이, 그 미묘한 경계 위에 서 있는 산업이라고 여겨왔다.


5~6년 전부터 ‘멋있는 게 중요했던 패션’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기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에 대한 책임을 함께 묻는 산업으로 바뀐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무엇을 입느냐’에서 ‘그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로 옮겨갔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향수, 공정무역 원단, 재활용 섬유, 윤리적 생산망. 이런 단어들이 ‘새로운 멋’을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멋은 더 이상 나만 돋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덜 해하면서도 나다움을 지키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소비자의 인식뿐만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들의 인식도 변했다. 브랜드의 대표 색상보다 공급망의 투명성, 모델의 얼굴보다 노동자의 안전, 마케팅 캠페인보다 탄소 발자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사회적 흐름이 아니다. 회계적으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가치 평가 공식 속으로 편입되는 명확한 ‘수학적 사건’이다. 윤리가 감성에서 재무로, 정체성에서 숫자로 옮겨간 것이다. 


경영 컨설팅을 하다 보면, 여전히 많은 기업이 ESG를 ‘사회적 선행’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우를 종종 만난다. 투자자의 시각에서 ESG는 명확히 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다. E(환경)에 해당하는 탄소 배출, 폐수, 패키징 재활용 등은 규제 위반 시 벌금이나 수출 제한으로 직결된다. ESG 관리가 곧 법적 · 재정 리스크 방어 장치가 되는 것이다. S(사회)의 영역은 협력업체 근로 환경, 여성 임원 비율, 지역사회 공헌도 등으로 브랜드의 평판 리스크를 줄이고 고객 이탈률 감소로 이어진다. G(지배구조)는 투명한 지배구조와 내부회계 시스템 등으로 상장 실사나 외부감사 과정에서 기업가치 할인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최근 상장 준비에 본격 돌입한 국내 최대 패션 버티컬 플랫폼인 무신사의 경우 친환경 원단 협업과 입점 브랜드 대상 가이드를 통해 ESG 실행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행보가 아니라 상장 심사 시 ‘지속가능한 성장성’을 증명하는 회계적 장치로 기능한다. 패션 · 뷰티 업계의 한 상장사는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외부 검증 절차를 도입해 ESG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투명성은 해외 기관투자가 등의 신뢰를 확보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된다. 결국 ESG는 윤리의 언어로 쓰인 재무전략이 된 것이다. 


ESG는 유행이 아니다.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이자 회계 시스템의 문법이다. 투자자들은 숫자를 보지만 그 숫자 뒤의 신뢰와 일관성을 함께 찾는다. 패션기업이 앞으로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얼마나 성장했는가’와 함께 ‘어떻게 성장했는가’도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에 ESG는 새롭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성의 산업이 재무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순간, 비로소 브랜드는 ‘윤리의 수익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
Comment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
댓글 0
로그인 시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Related News
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