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어느 인문학자의 패션 오디세이 35'
‘도선생님’과 나
그리고 ‘우공이산’
낮에는 패션 회사 CEO, 새벽에는 인문학자로 살아온 지 17년이 됐다. 낮에는 시즌오더를 마감하고 매장을 운영하고 백화점 바이어들과 씨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지만, 이른 새벽만은 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을 붙잡고 읽고 쓰며 사색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도 선생님’이라 부른다. 단순히 이름 앞 글자를 딴 애칭이 아니라, 내 사유와 삶을 지탱해 준 영혼의 호칭이자 내면의 대화 상대를 부르는 애틋한 이름이다. ‘도 선생님’ 한마디에 나의 경외와 친밀, 고통과 사랑, 믿음과 감사가 모두 녹아 있다.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은 내게 단순한 대문호의 이름이 아니다. 한 인간의 고뇌와 연민, 추락과 구원을 증명해 낸 생생한 목소리다. 내게 도스토옙스키는 언제나 곁에 있는 ‘선생님’이었다. 내 무지를 꾸짖고 때론 조용히 어루만지며, 날마다 나를 다시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진정한 ‘존재의 스승’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우연히 집어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책을 펼치자 인간 심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숨이 막혀 왔다. 찢어질 듯한 가난과 선뜻 연민하기 힘든 군상들. 그럼에도 그들 속에 깃든 구원의 가능성이라니!
<죄와 벌>의 마르멜라도프는 무능한 알코올 중독자로 딸 소냐를 거리로 내모는 나약한 인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조차 함부로 단죄하지 않았고, 가장 비참한 인간 속에서도 연민의 시선을 잃지 않았다. 소냐가 가족을 향해 보이는 동정과 연민은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
세월이 흘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번역하다가 마주친 조시마 장로의 한마디가 그 연민의 근원을 일깨워 줬다. “모든 피조물에 대해 사랑을 지니도록 하라. 들의 풀 한 포기에도, 새 한 마리에도. 네가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을 지니게 될 때, 만물의 신비가 너에게 드러날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비참해 보여도 인간이 들풀보다 못한 존재일 리 없다는 것을. 도스토옙스키에게 연민은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유일한 감각이자 구원의 좁은 문이었다.
<백치>에서 미시킨 공작이 말한 “미(美)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유명한 구절도 있다. 물론 여기서 ‘미’는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연민으로 빛나는 내면의 사랑을 뜻한다. 나는 도 선생님에게서 그 사랑의 본질을 배웠고, 인간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그의 문장에서 익혔다. 그 사랑에는 언제나 연민이 함께했다. 어쩌면 도 선생님을 알게 된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삶은 분명 도 선생님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내 귀에는 이런 물음이 울려왔다. ‘비인간적인 짐승의 우리 같은 조건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나는 그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을 봤다. 편안한 삶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심연을 그의 고통을 통해 느꼈다. 도스토옙스키는 고통을 그저 묘사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 그 지옥을 건너 인간성을 잃은 영혼을 다시 우리에게 데려온 사람이었다. 그의 글은 내 안에 없던 것을 비춰 주는 거울이자, 나를 인간 존재의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가 안정된 삶에서는 떠올릴 수도 없었던 질문들 앞에 세웠다. 나는 변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나를 돌이킬 수 없게 바꿔 놓았다.
도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상아탑 속 좁은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을 것이다. 패션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마치 소설 속 인물들이 튀어나온 듯한 사람들이 눈앞에 나타나 내가 믿던 상식을 뒤흔들었다.
패션계의 ‘사회인 김정아’로 지내는 일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하지만 그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바로 매일 새벽, ‘인문학자 김정아’로 돌아가 도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오직 그때 숨이 트이고 마음이 살아났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사랑 하나로 시작한 4대 장편 완역 작업이라는 10년은 심신을 갉아먹는 고된 길이었다. 번역 막바지에는 손가락 마디가 욱신거리고 허리와 어깨 통증이 심해져 지지대와 보호대까지 동원해야 했다. <죄와 벌>에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옮기던 나는 벌떡 일어나 “우라!(‘만세!’라는 러시아어)”를 외쳤다. 악이 사라진 것도, 정의가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날 괴롭히던 난해한 말을 많이 하는 인물이 퇴장해 이제 잠시 숨 돌릴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였다(실로 형이하학적인 기쁨이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매일 새벽 폭풍 같은 감정 속을 걸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제자리에 놓을 때마다 가슴속 혼돈은 물속 앙금처럼 가라앉았다. 고요한 여정은 내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시 세상으로 나설 용기를 줬다.
인문학의 눈으로 보니 패션계에서도 가면 뒤의 진짜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글 같은 명품 업계에서 17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일과 가정, 번역을 병행했는지 놀라지만 매일 새벽 도 선생님과 마주 앉은 시간이 없었다면 진즉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인문학자다운 접근 덕분에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는 세계 판권을 내게 맡겼다. 나는 처음부터 디자이너를 사업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 대했고, 그들과 진심으로 교감했다. 숫자에만 매달리지 않았기에 성과는 더뎠을지 몰라도 대신 깊고 오래가는 신뢰를 얻었다. 도스토옙스키 덕분에 나는 숫자와 유행 속에서도 ‘사람’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더 좋은 CEO이기 전에 더 나은 인간이고 싶어진다. 이런 다짐은 내 브랜드 철학으로 이어졌다.
10년 전,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산을 옮기겠다고 결심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삽도 중장비도 없이, 그저 새벽 두 시에 일어나 맨손으로 흙 대신 단어를 하나씩 나르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 눈에는 패션 회사 CEO였지만, 내 안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제 도 선생님 뵈러 갈 시간이야.’
매일 새벽 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이반과 알료샤 사이를 오가며 울고 웃었고, 아침이면 다시 현실 비즈니스 세계로 돌아왔다. 그렇게 두 세계를 오가며 조금씩 내 앞의 ‘산’을 깎아 나갔다. 4대 장편을 번역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일지 알지 못했다.
외로운 작업은 길잡이 없이 사막을 건너는 기분이었다. 때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문장 하나를 붙들고 밤을 지새우고, 단어 하나를 풀이하려고 그가 쓴 편지와 일기뿐만 아니라 논문까지 뒤졌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5장-이반 장을 번역할 때는 감정이 북받쳐 지나치게 울어 눈 흰자위가 계란 흰자위처럼 옮겨 다녀 이러다 눈이 머는 거 아닌가 싶었다.
2025년 5월, 마침내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화려한 피날레 없이 그저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반응이 찾아왔다. 기자간담회에 많은 기자들이 모여 패션 업계 사람이 10년간 도스토옙스키를 번역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여러 신문에 따뜻한 기사가 실렸고 방송과 라디오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잇따랐다.
그 울림은 러시아로 이어졌다. 타스통신과 리아노보스티에서 “한국의 한 여인이 10년간 도스토옙스키를 번역했다”라는 뉴스를 보도했다. 러시아 매체들도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울림이 됐다는 사실에 지난 세월의 고생이 모두 보상받는 듯했다.
AI가 시를 쓰고 뉴스를 요약하는, 짧고 가벼운 것이 대세인 시대다. 무겁고 느린 도스토옙스키의 글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줄은 몰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사람들 가슴속에 ‘진짜’와 ‘클래식’에 대한 갈망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도스토옙스키는 내게 연민과 사랑을 가르쳐준 스승이다. <악령>이 세상의 절망을 말할 때 <백치>는 그 절망을 끌어안는 사랑을 보여줬다. 그 균형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나는 감히 꿈꾼다. 쇼펜하우어의 냉소가 유행한다면, 도스토옙스키의 따뜻한 사랑으로 그 흐름을 바꿔보고 싶다.
요즘 사람들은 나를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을 완역한 패션 CEO”라고 부른다. 감사하지만 나는 그저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산을 옮긴 자리에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진심으로 흙을 옮기고 씨앗을 심었을 뿐이다. 이제 물을 주며 기다리려 한다. 내일도 새벽 두 시에 책상 앞에 앉아 도 선생님이 남긴 문장 한 줄을 만날 것이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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