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멀티숍 이야기(2) 왜 적자일까?'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5.05.30 ∙ 조회수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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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멀티숍 이야기(2) 왜 적자일까?' 27-Image


패션의 최전선, 트렌드의 교차로—멀티숍은 그 존재만으로도 패션계를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재무제표 앞에서는 늘 빈곤하다. 왜 이토록 아름다운 포맷이 존재의 당위가 분명한데도 이윤을 내지 못할까?

 

첫째, 고객은 소수 정예다.


멀티숍의 고객은 대중이 아니다. ‘먼저 입어보고 나중에 판단하는’ 패션 리더, 혹은 ‘에이, 이게 뭐야?’보다 ‘오, 이게 뭐지?’라고 묻는 얼리어답터들이다. 충성도는 높지만, 수가 적다. 특히 ‘튀면 틀린 것’으로 여기는 한국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무난함을 모르는 멀티숍은 경기 변동에 민감하고, 대중 소비의 흐름과도 거리가 멀다. 콜레트, 오프닝 세리머니, 헨리 벤델…. 패션계의 전설이자 성지였던 멀티숍조차 폐점을 면하지 못했다. 하물며 국내는 어떻겠는가.


둘째, 비용 구조가 다르다. 아주!


모노 브랜드는 시즌당 수입 통관을 2~3회 하면 되지만, 멀티숍은 수십 개 브랜드를 반복해서 딜리버리하기 때문에 통관, 서류, 시차 등 모든 부담을 수십 배로 감당해야 한다. 또 여러 브랜드에서 소량 구매하다 보니 할인이 없어 홀세일가가 높기 때문에 대량 구매하는 모노 브랜드보다 불리한 구조다.


셋째, 상품은 많고 히트는 적다.


멀티숍은 ‘소수 취향과 다수 품종이 기본 전략이지만, 히트 상품 하나로 전체 수익을 메우기 어렵고 대부분 리오더도 불가능하다. 완판이라 해도 수량이 고작 10개 미만인 경우가 많다.


넷째, 커지면 빼앗긴다.


중소 멀티숍이 눈 밝게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고 키우면, 대기업은 이를 미니멈 조건으로 ‘독점’해 간다. 에르노와 알렉산더 왕 등은 대부분 멀티숍이 국내에 처음 소개했지만, 지금은 대기업 품에 있다. 브랜드가 자라고 인지도가 올라가면 대기업의 눈에 띄어 대기업 품에서 모노 브랜드로 뻗어나가고, 중소기업의 멀티숍은 고스란히 매출을 잃는다. 이 얼마나 슬픈 ‘패션의 업사이클링’인가.


오죽하면 ‘염라대왕보다 무섭다’는 백화점 수수료조차 멀티숍에는 관대할까. 백화점의 수수료율은 입점 브랜드의 마진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데, 수입 브랜드는 내수 브랜드보다 마진이 적어 평균 3~5% 정도 낮게 책정된다. 참고로 상품군별 수수료율은 다음과 같다.


백화점이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모셔 가려는 ‘에루샤’는 가장 낮은 9~12%(정확히는 에르메스 12%, 루이비통 11%, 샤넬 9.5%), 명품 시계는 12~15%(단 롤렉스는 이례적으로 6%. 17년간 백화점 영업을 해 왔지만 한 자리대 수수료는 처음이다). 컨템 모노 브랜드는 28~35%(수입 멀티숍은 마진이 거의 안 난다는 것을 감안해 25%)다. 식품관의 식당은 마진이 적어 대략 25%, 영캐주얼로 분류되는 국내 일반 브랜드가 32~36%, 모자·스카프·선글라스 등 높은 마진 구조를 갖는 액세서리류가 제일 높은 36~40% 정도다.


명품 매장을 제외하면 수입 멀티숍이 백화점 수수료 대비 마진이 가장 낮다. 매출 규모는 웬만한 내수 브랜드 못지않아도, 잔고를 보면 눈물이 고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획일화되는 세상 속에서, 알면 더 알고 싶은 ‘취향의 밀도’는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멀티숍이 필요하다.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이 구조적 한계를 마주해야 한다. 생존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누가, 왜 이윤도 안 나는 멀티숍을 해야만 할까?


요즘 같은 시대에 ‘돈 안 되는 비즈니스’라면 대부분 고개부터 절레절레 젓는다. 그런데도 굳이, 아니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멀티숍이어야만 하는 곳이 있다.


이윤은커녕 적자를 감수하면서 왜 이 고된 길을 걸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멀티숍은 신생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브랜드 인큐베이터이자 시장 반응을 예측해 보는 ‘마켓 테스트’의 핵심 채널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세계인터내셔날(SI)의 ‘분더샵’이다. 뜻밖의 행운을 뜻하는 영어 ‘boon’과 ‘화장할 분(扮)’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담은 이 편집숍은 단순한 유통 공간을 넘어 수많은 브랜드의 요람이자 실험장이었다. 유망 브랜드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종의 ‘브랜드 사관학교’였던 셈이다. 단순히 매장을 내는 것 이상의 전략이었다.


이 경우 멀티숍의 진짜 힘은 이윤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어떤 브랜드가 시장에서 통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 바로 시장 인지도 축적과 고정 고객 확보, 리스크 최소화 전략에 있다. 브랜드를 단독 론칭하기 전, 멀티숍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소비자 반응을 미리 살피고, 테스트를 거쳐 이후 안정적인 브랜드로 독립할 수 있다. 수요 예측도 가능해지고, 적정 바잉 물량도 파악된다. 쉽게 말해, 비즈니스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되는 셈이다.


분더샵이 키워낸 브랜드를 보면 이 전략이 얼마나 유효했는지 알 수 있다. 마르니, 드리스 반 노텐, 스텔라 매카트니, 디스퀘어드2, 메종 마르지엘라, 몽클레르 등은 분더샵이라는 무대에서 첫발을 내디뎌 지금은 당당히 모노 브랜드로 우뚝 선 브랜드들이다.


특히 눈에 띄는 전략 중 하나는 멀티숍 내 숍인숍 방식의 팝업 운영이다. 브랜드 독립 직전, 멀티숍의 고정 고객을 대상으로 해당 브랜드를 집중 노출해 시장 반응을 살피는 동시에 향후 모노 브랜드 매장의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케팅과 브랜딩, 모두를 아우르는 일석이조 전략이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은 아니다. 약 10년 전 신세계의 편집숍 운영 주체가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백화점으로 이관되면서 분더샵의 본래 역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브랜드를 ‘키우는’ 쪽과 ‘받아 가는’ 쪽이 나뉘자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이 느슨해졌고, 인큐베이팅은 점점 줄어들었다. 브랜드와 유통의 유기적 연결이 깨지며 신규 브랜드 론칭도 줄어든 셈이다. 멀티숍과 브랜드 사업이 한 지붕 아래 있을 때, 인큐베이팅은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


분더샵의 다른 버전으로는 ‘분더샵 앤 컴퍼니’와 ‘마이분’이 있었다. 전자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컨템퍼러리 중심의 편집숍으로 여기서 3.1 필립 림, 알렉산더 왕, 카르뱅, 맥큐 등이 성장했다. 이후 스트리트와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콘셉트로 리브랜딩한 것이 마이분이며, 여기서는 반려동물 패션까지 품은 독특한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블루핏’도 있었는데 이는 마이분보다 더 캐주얼하고 젊은 감성으로 전개됐다.


이제는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엑시츠(XYTS)’라는 새 편집숍이 등장했다. MZ세대를 겨냥해 스트리트와 뉴 럭셔리를 섞은 형태다. 분명 시대 흐름에 맞춘 트렌디한 변화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멀티숍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콘셉트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브랜드 이름을 굳이 바꾸지 않고, 콘셉트만 변주해도 충분히 새로움을 줄 수 있었다. ‘분더샵 앤 컴퍼니’나 ‘마이분’이라는 이름을 유지했더라면 지금쯤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삼성의 비이커와 한섬의 톰 그레이하운드처럼 말이다.


브랜드화된 편집숍은 확장성에서도 강점을 갖기에 다른 백화점 입점도 가능하고, 자체 제조 상품(MD)의 판매도 확대할 수 있어 수익 구조가 훨씬 안정적이다. 판매 채널이 넓어지고, 바잉 볼륨이 커지면 수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브랜드보다 ‘브랜드 경험’을 중시하는 요즘 시대에 강력한 정체성을 가진 멀티숍은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


물론 지금도 늦지 않았다. 신세계의 차세대 편집숍이 부디 마이분의 계보를 잇는 이름으로 다시 탄생하길 바란다. 레트로는 현 MZ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콘셉트이기에 그때 그 시절의 감성과 지금의 감각을 결합한 편집숍이라면, 분명 다시 한번 ‘뜻밖의 행운(boon)’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6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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