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폭싹 삭았수다" 그린워싱!'
어느 순간부터 ‘ESG’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패션인들에게도 맨 앞 글자 E의 ‘친환경’은 이제 옵션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요즘 장안의 화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만큼의 감동은 없다. 오히려 폭싹 속아 버려서 폭삭 속상하다. 차라리 가만히 있지.
그 어느 산업보다 패션산업은 제조-판매-폐기 과정에서 환경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2000년대 패스트패션 시대가 열린 이후 패션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탄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환경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패션은 이 땅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래서 패션 시장에서 너도 나도 환경을 논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린워싱’은 친환경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을 틈타 친환경의 대척점에서 등장한다. 친환경을 허위로 또는 과장하는 기망행위를 뜻하는 ‘그린워싱’이라는 단어가 1983년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벨트에 의해 도입된 이후 소비자들은 매의 눈으로 친환경 캠페인을 바라보고 있다. 갈수록 친환경으로 가는 길은 점점 더 멀고도 험해지고 있다. 오늘날 달콤한 거짓말은 훗날 더 씁쓸한 결과를 낳는다.
친환경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미국 신발 업체 올버즈(Allbirds)는 ESG와 지속가능성을 주무기로 삼아 2021년 11월 나스닥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하지만 당초의 ESG 공약은 허공에 뜨고, 탄소 배출량 방식마저 신뢰성을 잃자 그린워싱의 그림자에 휩싸이게 됐다. 고가품 패딩 ‘캐나다구스‘는 동물보호 관련 그린워싱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지난 2020년, 후드에 사용한 ‘코요테 털’ 설명에 ‘인증된 포획 업체에서만 구매한다’라는 내용을 넣어 모피의 친환경성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다. 하지만 일부 천연 모피를 인증받지 않은 포획 업자로부터 거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반발과 함께 법원으로부터 동물 털 사용에 관한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동물 털 사용의 전면중단 조치를 당하게 됐다.
나이키도 ‘지속가능 컬렉션’ 상품 중 실제로 재활용 소재로 만든 제품은 10%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당하며 그린워싱 의혹을 받았다. 2024년 승소해 명예를 회복했지만, 그린워싱의 올가미가 언제 어떻게 씌워질지 두렵기만 하다. 나이키의 라이벌 아디다스도 그린워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50% 이상 재활용 소재가 사용됐다는 ‘스탠스미스’ 제품의 광고를 살펴보면, 그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고 검증도 어려웠다. 2021년 프랑스 광고윤리위원회는 ‘친환경 스탠스미스’에 그린워싱의 철퇴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친환경 컨설팅사 테라초이스가 분류한 그린워싱 7가지 유형은 범위 조작, 근거 없음, 애매모호, 가짜 레벨, 침소봉대, 허위 날조, 견강부회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그린워싱의 판단 기준이나 처벌 가이드라인은 아직 모호하다. 국내 현행법에 따르면, 제품 광고에 친환경·비건 등의 용어가 쓰였을 경우 표시광고법 위반이 가능하지만, 용어 활용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에 단속 · 제재가 어렵다. 이렇듯 그린워싱의 경적과 추적 속에 우리의 지구는 점점 더 아프고 병들어 간다.
오늘도 소비자들은 그린워싱 기업에 분노하며 외친다. “폭싹 속아버렸수다!!” 지구는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하소연한다. “폭싹 삭았수다.” 이러다가 다같이 “폭싹 망할 수 있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5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