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파리가 패션 최고 성좌 유지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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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월 말이면 나는 가슴이 설렌다. 나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패션 바이어들의 심장박동이 뉴욕과 밀라노를 거쳐 마침내 패션의 절정, 파리패션위크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바이어들은 샤넬과 디올 같은 대형 브랜드의 패션쇼와 크고 작은 트레이드 쇼가 넘쳐나는 파리 전역에서부터 쇼룸이 밀집한 B2B 세계 패션의 성지인 마레 지구까지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처럼 구석구석을 헤매며 숨은 보석 같은 브랜드와의 우연한 만남을 꿈꾼다. 그러나 이번 시즌, 나는 아직 비행기 티켓 예약 사이트에 들어갈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패션계에 몸담은 지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냉담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 이후 점점 쇠락해 가는 파리패션위크 현장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디지털 쇼룸의 급부상이다. 2015년 최초의 패션 버추얼 쇼룸 ‘Ordre’를 창립한 사이몬 피 락은 “바이어들이 매 시즌 수백만 원짜리 비행기 티켓과 비싼 숙박료를 내며 시차로 고생하면서까지 옷을 사러 가는 건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라며, 이를 개선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오프라인의 바잉 프로세스를 모방해 효율적이면서도 획기적인 가상현실 쇼룸 ‘Virtual showroom Ordre’를 론칭했다.
‘Ordre’의 론칭을 도왔던 지인의 초대로 나는 파리에서 그들의 쇼룸에 간 적이 있는데, 커다란 고글을 쓰자마자 신세계라고 할 만한 버추얼 쇼룸이 눈앞에 펼쳐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여행이 어렵게 되자 이런 유의 가상현실 쇼룸들이 여럿 생겨나더니 전 세계 바이어들이 ‘Ordre’ ‘Joor’ ‘Nuorder’ ‘Hyperoom’ ‘Brandlab’ 등과 같은 가상현실 쇼룸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디지털 쇼룸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우선 ‘핏’이다. 이 브랜드의 사이즈가 작은지 큰지, 아이템별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까 재킷이나 톱은 넉넉한 편인데 하의는 작다거나(대부분의 유럽 브랜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원피스는 타이트한데 니트류는 크다거나 하는 그 브랜드만의 특징을 알 수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천의 재질(혹은 촉감)이다. 오래 바잉한 브랜드는 각 아이템의 소재 구성 요소만 봐도 어떤 느낌의 천일지 대충 감이 온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는 실제 촉감을 확인할 수 없으니 바이어의 구매 욕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어를 많이 가진 유명한 브랜드도 오더 물량이 줄어드는 마당에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코로나19는 큰 치명타였다. 결국 신진 브랜드들은 발돋움조차 하지 못한 채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이 끝나자 바이어들은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다리던 어린이처럼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시즌을 거듭할수록 파리패션위크의 꽃이라 불리는 가장 큰 트레이드 쇼인 트라노이를 비롯해 패션위크의 규모는 점점 축소되고 내용은 부실해졌다. 원래 루브르와 브루스 광장 두 곳에서 진행됐는데 화려한 루브르 로케이션은 취소되고, 브루스 광장에서만 진행됐다. ‘Herno’ ‘Linda Farrow’ 등 쇼를 빛내주던 글로벌 브랜드들은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아프리카 브랜드와 K-브랜드들이 채웠다. 물론 우리나라 브랜드에는 좋은 기회였지만 익숙한 해외 브랜드의 명성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 같은 해외 브랜드 바이어들은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흥미 역시 덜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 패션 바이어들에게 파리는 이제 더 이상 환상적이지 않은, 그저그런 쇼핑몰이 돼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패션위크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나는 파리의 쇠락이 패션위크가 아닌 파리라는 도시 자체에 있다고 본다. 그 큰 이유 중 하나는 ‘위생’이다. 과거에도 파리는 로맨틱한 향기보다는 배설물 냄새가 더 친숙한 도시였다. 오물이 넘쳐나는 도시였기에 그 오물로부터 옷을 보호하기 위해 하이힐이 발명됐고,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가 발명됐다고 지난 2022년 연재물 ‘파리 출장기(2): 이질적인 파리의 두 모습’에서 서술한 바 있다. 파리에서 거리를 걸을 때면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 된다.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건물들과 그 역사에 숙연해져서가 아니다.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개들이 산책하며 만들어 놓은 ‘예술적 오브제’들을 피하려는 자연스러운 몸짓이다.
“파리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 냄새는 아름답지 않다”라고 했던 작가 헨리 밀러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파리는 아름답지만 정말 비위생적이다. 센강 변을 산책하다보면 거리의 낭만을 느끼던 도중 코끝을 스치는 냄새는 ‘샤넬 넘버5’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노숙자의 ‘배설 넘버1과 넘버2’의 냄새다. 방치된 개의 응가 또한 여기저기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다. “파리 시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은 걷기가 아니라 피하기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입에 오르내리는데, 파리에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2024년 3월 파리가 기적적으로 깨끗해졌다! 센강이 맑아졌고 노숙자들도 사라졌으며, 파리지앵들은 신호등 빨간불 앞에서 얌전히 멈추는 기적을 연출했다. 2024 파리 올림픽의 영향이었다. 센강에서 수상 종목 경기를 하려면 최소한 하수 냄새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망명 신청자들과 노숙자들은 파리 북쪽의 외곽 소도시로 강제 이주돼 숙박시설에 임시 격리됐고, 신호등을 무시하던 시민들은 벌금의 위력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 파리는 마치 잔뜩 차려입고 맞선에 나가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파리는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니, 본연보다 더 지독해졌다. 노숙자 수가 폭증했는데, 그중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성 노숙자 수도 크게 늘었다. 센강과 지하철역은 올림픽 전보다 더 심한 악취를 풍겼고, 공항 테러 위협까지 더해져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악몽의 도시’가 돼 가고 있다.
2024년 10월 초에 샤를 드골 공항에서 실제로 겪은 사건이다. 붐비는 출국장 한쪽에서 거대한 총을 든 군인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소동 속에서 중동계 여행객들은 무작위로 신분증 확인을 받으며 특히 불안에 떨었다. 그 와중에 총성 같은 소리와 비명이 이어졌다. 가까스로 탑승 게이트에 도착한 나는 그 순간 ‘한 시즌의 바잉을 마쳤다는 뿌듯함보다도 드디어 이 도시를 떠나게 됐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무엇보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이곳을 다시 와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과연 이런 도시가 계속해서 세계 패션의 최고 성좌로 남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회의적이다. 패션은 본디 아름다움과 여유로움 속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우아함은 거리를 걷는 여성의 걸음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제 파리의 거리를 걷는 여성들의 발걸음은 우아함은커녕 발밑을 살피느라 분주하다. 그렇다면 파리는 이대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될까? 단언하기엔 성급하다. 파리는 여전히 빛나는 역사와 감각을 지녔으며, 파리지앵들은 언제나 변화의 선두에 있다. 이곳이 패션의 중심이 된 건 옷이나 디자이너뿐 아니라 도시가 주는 분위기 때문인 만큼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도시 자체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다시 패션의 성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말이다.
패션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 중에 “패션은 변하지만(혹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라는 이브 생로랑의 명언이 있다. 지금 파리에 필요한 건 유행이 아니라 스타일, 즉 품격 있는 회복이다. 버추얼 쇼룸이 아무리 편리해도 바이어들은 결국 옷을 직접 만지고 입어 봐야 안심하고 주문할 수 있다. 또한 파리 자체가 갖는 로맨틱한 매력, 그 정서적 만족감을 제공하지 못하면 바이어들은 굳이 파리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패션은 환상을 파는 산업이다. 환상이 없다면 패션도 없다. 파리가 계속해서 이 환상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 성좌를 뉴욕이나 밀라노, 어쩌면 서울로 넘겨주게 될지도 모른다. 오물로 얼룩진 거리와 불안정한 치안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환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패션이란 옷을 입는 사람과 도시가 함께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교향곡이다. 다시 한번 파리가 그 멋진 곡을 세상에 들려주려면 시장과 정부, 시민 모두 하나가 돼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우리가 사랑한 파리의 우아한 ‘오디세이’는 그때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4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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