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팀랩 플래닛'과 미래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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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에 나는 다시금 나 자신이 얼마나 아날로그적인 인간인가를 떠올린다. 아침이면 신성한 의식처럼 종이 신문을 펼치고, 그 사각거림을 성스럽게 음미하고, 책은 반드시 손끝에서 감촉이 느껴지는 종이책이어야 하며, 전시회에서도 디지털 미디어보다는 작가의 붓결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캔버스 위의 회화를 선호한다. 기술이 감각을 매개하는 순간, 그 속에서 인간성은 옅어지는 듯 보였다. 마치 ‘손의 기억’과 ‘인간의 체온’이 사라지는 것처럼.
AI가 그린 그림에서는 화가의 숨결을 느낄 수 없었고, 디지털 전시에서는 작가의 온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창작자의 존재를 완전히 체감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세계가 극찬하는 한국이 나은 비디오아트 예술가 백남준의 작품조차 나의 무지 때문인지, 나의 아날로그적 고지식함 때문인지 쉽게 감동하는 내 가슴에 일말의 파동조차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확신을 완전히 뒤흔든 경험이 있었다. 바로 ‘팀랩 플래닛 도쿄(TeamLab Planets TOKYO)’에서였다.
빛과 물, 몸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
팀랩 플래닛은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작품을 본다’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작품과 관람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물리적 신체마저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빛과 물이 만든 공간에서 나라는 존재는 흐름 속으로 흩어지고, 시각을 비롯해 촉각과 청각까지 모든 감각이 열린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경험이 패션과 만난다면 어떨까? 미래의 패션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옷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술과 감각이 맞닿는 순간
코로나19 이후 첫 도쿄 출장이었다. 새로 생긴 아자부다이힐즈부터 원래 좋아하던 긴자와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과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새로운 브랜드들까지 탐험할 것들은 많았지만, 이번 출장 중 가장 기대했던 일정은 단연 팀랩 플래닛 방문이었다. ‘온몸으로 빠져들고, 인식하고, 작품과 하나가 된다’라는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다.
팀랩 플래닛의 공간은 정적인 전시가 아니라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 자체가 변주되고 변화하는 살아 있는 세계라고 했다. 제주도와 파리에서 본 3D 전시 <고흐의 빛의 벙커 전>과 <훈데르트 바서 전시회>는 사실 살짝 실망했던 경험을 갖고 있었기에 ‘4D 전시라고 뭐가 그리 다르려나’ 하는 아날로그적인 삐딱한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그래도 경험자들의 조언에 따라 흰옷을 입었다. 이곳에서는 나의 몸도 캔버스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었다. 입구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좁고 검은 통로로 들어서자 미지근하고 기분 좋은 물의 촉감이 발끝에 닿았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어둡고 따스하고 좁은 통로를 지나자 온갖 빛깔의 코이피시가 유영하는 바다와 같은 커다란 연못이 나왔다. 여유롭게 헤엄치는 코이피시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그들은 내 손을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내 손에 와 입을 맞추기도 한다.
공간을 가득 채운 빛이 움직이고, 코이피시의 바닷속에서 나는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빛과 물이 반응하며 새로운 형태 새로운 색채의 물고기들이 내 주변을 헤엄쳐 다녔다. 마치 샤갈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몸이 사라지고, 감각이 확장되는 공간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시 룸은〈Floating in the Falling Universe of Flowers〉였다. 꽃과 꽃 내음으로 가득한 공간. 둥그런 돔 모양의 천장으로 된 우주를 떠다니는 꽃잎 속에서 나 역시 하나의 꽃잎이 됐다. 존재의 경계가 사라지며 나는 흐름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순환 안에서 나는 꽃으로 봉오리 맺고 피고 지고 다시 태어난다.
한순간 모든 감각이 열리고, 순간은 영원이 되고, 내가 누워 있는 작은 공간은 무한으로 확장된다. 그 무한함 속에서 나는 소멸했다가 다시 태어나며 몸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명상의 극치에서나 느낄 수 있는 무아의 경지였다. 시간이 허락됐더라면 언제까지라도 머물고 싶었다.
이 경험은 단순한 몰입이 아니었다. 처음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었다. 물에 몸을 담그고,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 걷고, 꽃 내음 진동하는 공기 중을 유영하는 듯한 감각 속에서 나는 ‘작품을 본다’라는 수동적인 태도를 버려야만 했다.
빛의 무한한 변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관람자’가 아닌 하나의 ‘요소’로서 작품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나는 ‘보는’ 것을 넘어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기술이 단순히 시각적 자극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감각 자체를 확장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원리가 패션에 적용된다면?
패션, 감각의 확장을 꿈꾸다
패션은 더 이상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패션은 우리의 신체와 감각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영역이 됐다. 이제 우리는 옷을 단순히 ‘입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경험’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1. 감각을 증폭하는 패션
미래의 패션은 특정한 감각을 활성화하고 증폭할 것이다. 바닷속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나 입는 순간 피부에 따뜻한 햇살이 닿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옷이 개발될 것이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신체의 리듬에 따라 변화하는 패브릭이 등장할 것이다.
2. 정서적 영향을 주는 패션
패션은 감정을 반영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를 감지하면 부드러운 압박을 통해 안정감을 주거나 감정 상태에 따라 색과 패턴이 변하는 스마트 텍스타일이 일상화될 것이다.
3. 신체 기능을 확장하는 패션
특정 근육을 보완해 부상을 방지하거나 신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옷이 개발될 것이다. 하루 동안 소비하는 칼로리를 증가시키는 웨어러블 패션도 가능해질 것이다(이미 이런 옷이 있어 입어 봤지만, 실제적인 효력은 아직은 의문이다).
4.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패션
옷이 공기 중 유해 물질을 흡수하고 정화하는 기능을 하거나 빛 공해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디자인이 등장할 것이다. 태양광을 흡수해 에너지를 저장하는 패브릭도 일상이 될 것이다.
패션, 감각을 디자인하다
이러한 기술이 접목된 패션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환경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탐험가 김영미 대장이 남극을 탐험할 때 착용한 방한복은 단순한 의류가 아니었다. 극한의 환경에서 체온을 유지하고, 신체 활동성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
이제 AI시대의 패션은 더 이상 개인의 개성, 개인의 스타일의 발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 경험을 디자인하는 시대가 왔다. 팀랩 플래닛에서 경험한 ‘몸의 경계를 허무는 감각’은 미래의 패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듯했다.
패션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인간과 환경이 교감하는 인터페이스가 된다. 옷을 입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신체 보호를 넘어 감각을 확장하고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 우리는 옷을 통해 특정한 공간을 경험하고, 감각을 확장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패션은 우리 몸의 일부이자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그 자체가 될 것이다.
팀랩 플래닛에서 내가 꽃잎이 된 것처럼 미래의 패션은 우리를 감각의 세계로 인도하는 ‘게이트웨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옷을 입는 순간 새로운 차원의 경험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미래의 패션은 우리의 감각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패션의 소비자가 아니라 패션과 하나가 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옷을 입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감각적 차원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3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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