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팝업스토어 창시자 '팀 버튼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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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예술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 사카이, 엔 폴드, 데바스테(패션)
- 도스토옙스키, 앙드레 지드, 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욘 포세, 한강(문학)
-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아메데오 클레멘테 모딜리아니, 르네 마그리트(회화)
- 안토니 가우디,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건축)
- 웨스 앤더슨, 쿠엔틴 타란티노, 팀 버튼(영화)
패션 · 문학 · 회화 · 건축 · 영화 등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을 줄줄이 늘어놓다 보니, 이제껏 나도 모르고 있던 하나의 공통점이 보였다. 모두 자기 색깔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몹시 분명하다는 거다. 모태 모범생답게 무색무취로 살아온 스스로에 대한 무의식적인 보상 심리인지, 나는 하나같이 독특하고 뚜렷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만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그들과 그들의 작품을 아우르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내면에 ‘어린아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가우디, 훈데르트바서, 팀 버튼은 그것이 그대로 시각화된 경우다. 피카소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고.
철학자 니체도 정신의 3단계를 낙타-사자-어린아이로 보지 않았는가. 인고의 낙타 시절, 포효하고 반항하는 사자의 시절을 지나 정신이 가질 수 있는 궁극의 단계로서 어린아이와 같아져야 한다고 말이다. 예수님도 그랬다. 어린아이와 같아져야만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 안의 어린아이다움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것이 예술이 되고, 그것이 천재의 가능성이 되고, 그것이 내 가슴 한편에 잠자고 있는 어린 나를 깨우고, 그렇게 내 가슴을 팔딱팔딱 뛰게 하고, 나를 그 대상 앞에 그대로 엎어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한번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들의 A to Z를 다 알아야 한다. 패션이면, 매 시즌 그들의 컬렉션을 보고, 찜하고 사 입는다. 문학이면, 그들의 모든 작품을 다 읽고, 작가와 작품 세계에 관한 것도 가능한 한 많이 찾아보고 읽는다. 그림도, 건축도 가서 직접 봐야 하고, 뒷이야기까지도 다 공부해서 알아야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작품이 재미있건 없건 평이 좋건 나쁘건 죄다 찾아본다. 내가 좋아하는 건 누구보다 많이 알아야 하니까.
2010년 1월 말경이었다. 2010 F/W 패션위크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나는 뉴욕에 있었다. 패션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에 패션에 관한 모든 것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는 물론 도쿄 컬렉션까지 다 참여했다. 그때마다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것은 패션만이 아니었다. 각 도시의 주요 뮤지엄에서 때맞춰 열리는 특별 전시는 나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어쩌면 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는지도 모른다.
2010년 1월 말, 뉴욕의 모마(MoMA) 미술관에서 아무런 설명 하나 없이 그저〈Tim Burton〉이라는 제목하에 그야말로 특별한 전시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 신부> <비틀주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팀 버튼의 영화를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싶을 정도로 기이하고도 독창적인 상상력에 입이 안 다물어지는데 또 그 상상력을 어떻게 저런 비주얼로 현실화했는지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런 감독의 전시를 볼 수 있다니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팀 버튼의 전시에는 그가 그린 영화 콘티, 스케치, 모형, 일러스트, 영화에 사용된 여러 가지 미술 작업뿐 아니라 아웃사이더(외톨이)였던 유년기에 그린 지극히 개인적인 드로잉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근무할 당시의 작품 등 700여 점이 전시돼 있었다. 이 전시는 스스로를 “행복한 미치광이 우울증 환자”라고 지칭하는 한 예술가가 자기 상상력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었는지, 또 그런 상상력이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 전시였다.
이렇게 7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작업을 하나하나 꼼꼼히 보고 나오는 길에, 보통은 뮤지엄숍이 있어야 할 곳에 내 키를 훌쩍 뛰어넘는 커다란 흰 선반이 있었다. 그 선반은 큰 하드커버 책의 한가운데가 활짝 열려 있는 듯한 모습으로, 닫으면 큰 책이 되고, 열면 안에 달린 여러 단의 선반이 장식장처럼 보이는 형태였다. 거기에는 팀 버튼의 작품들로 된 엽서, 노트, 에코백 등 일반적인 뮤지엄 숍에서 파는 아이템들이 진열돼 있었다.
열려 있는 책의 가운데 상단에는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하얀색 작은 판 위에 삐뚤삐뚤한 ‘팀 버튼’ 글씨체로 ‘POP-UP STORE’라고 쓰여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콘셉트였다. 궁금한 건 반드시 알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라, 나는 거기서 일하는 직원에게 팝업스토어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왜 뮤지엄스토어나 서브니어스토어가 아니고, 팝업스토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팝업북(POP-UP BOOK)’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팝업북이 뭔지 알고 있었다. 주로 아동 책에서 페이지를 넘기면 공룡이 튀어나오고, 자동차가 튀어나오고, 집이 튀어나오는 3D 책이다. 페이지를 닫으면 다시 들어가고, 열면 다시 튀어나오는 그런 책.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카드에 많이 응용하는데, 카드를 펼치면 크리스마스트리가 튀어나오거나 산타가 탄 썰매가 튀어나오곤 한다. 그렇게 튀어나오는 것을 영어로는 ‘POP-UP’이라고 한다. 팀 버튼은 자신의 뮤지엄숍을 단순한 뮤지엄숍이 아닌, 책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POP-UP’ 스토어로 만든 것이었다. 전시의 마무리인 뮤지엄숍조차 팀 버튼스러웠다.
뭐든 얼리어답터인 내가 팝업스토어라는 이 콘셉트를 그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이건 팀 버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분명해 보였다. 매우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라 감탄하며, 나는 그 팝업스토어의 콘셉트를 규정하고 있는 커다란 책 모양 선반의 사진을 찍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나는 업체에 사진을 보내 그 선반과 똑같은 장의 제작을 의뢰했다. 그리고 코엑스 현대백화점 3층 담당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팝업스토어’를 제안했다.
당시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주변은 매출 활성화를 위해 행사(즉 할인 행사) 위주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행사가 아닌 팝업스토어를 제안한 것이다. 팝업스토어는 할인 행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새로운 브랜드를 독특한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형태의 스토어라며 콘셉트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당시 내가 바이어이자 오너로 관리하고 있던 편집숍 ‘스페이스 눌’에는 MM6, 데바스테, 스티브 J&요니 P 등 20여 개의 브랜드가 있었다. 나는 MM6를 위시로, 그다음은 스티브 J&요니 P(당시 이들은 영국에서 론칭하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영국 브랜드였다) 등의 팝업을 이어나갔다. 현대백화점에서의 팝업은 이미지에서도, 콘셉트에서도, 또 매출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현대백화점에서 시작한 최초의 팝업스토어가 이제는 세 살배기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성행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팝업스토어라는 개념의 창시자는 팀 버튼이고 내가 처음 본 팝업스토어는 2010 년 모마에서 열린 팀 버튼 전시의 기념품 숍인 ‘팝업스토어’다. 우리나라 최초의 팝업스토어는 팝업북의 모형을 그대로 본떠 내가 코엑스 현대백화점 3층에서 열었던 MM6 팝업스토어다. 재미있지 않은가. 지금은 모두가 알 만한 팝업스토어의 창시자가 팀 버튼이라니.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2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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