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우연이 아닌 운명 <모칠라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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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9월 9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콜롬비아 대사관저에서 아름다운 파티가 열렸다. 콜롬비아에 대해 쓴 나의 두 번째 책 <라틴아메리카의 보석, 콜롬비아>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이자, 콜롬비아 문화를 알리고 콜롬비아와 한국 간의 비즈니스 관계를 위해 10여 년간 노력한 데 대한 공로상 시상식이 있는 자리였다.
어른이 돼 처음 받는 상이었고, 나의 대학원 때의 은사이자 지금은 둘도 없는 절친인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님이 축하 연설을 해 주셔서 더욱 뜻깊었다. 콜롬비아 대사관에서 초대한 남미 대사 부부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꿈결같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자리였다.
공로를 인정받은 10여 년을 되돌아보면, 콜롬비아와 나는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연결해 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 우연을 가장해 나에게 준 최고의 보물 중 하나가 아닐까? 이제부터 콜롬비아 와유족과의 운명 같은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한다.
2016년 여름이었다. 화려한 색상의 알록달록한 손뜨개 가방이 할리우드 패셔니스타들의 어깨에 걸쳐 있는 사진들이 당시 인스타그램에 넘쳐났다. 그 가방은 바로 콜롬비아 원주민 와유족이 만든다는 ‘모칠라’였다. 당시 스페이스눌의 다른 브랜드와는 색상이 어울리지 않아 바잉을 하지 않았는데, 얼리어답터인 고객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그제야 부랴부랴 주문을 넣으려 했다.
그런데 오더 시트에는 사진과 100% 똑같은 아이템이 배송된다고 보장할 수 없으며, 수작업이라 최소 6주는 기다려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바이어로서 어떤 물건이 올지도 모르면서 6주나 되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 길로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30시간이 넘는 여정에 올랐다. 한 번도 발 디뎌 본 적 없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콜롬비아, 그것도 모칠라를 만드는 와유족이 사는 과히라사막과 가장 가까운 작은 시골 마을 리오아차까지 간 것이다.
리오아차는 콜롬비아의 북동쪽 끝에 있는데, 알고 보니 콜롬비아인들조차 잘 안 가는 외진 곳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거의 본 적이 없는지, 이상한 외계인 보듯 모두가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그곳에서 손짓발짓을 하며 바잉하는 과정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섭씨 34~35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직접 손뜨개를 하는 와유족 여인들을 만난 뒤 내 인문학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들이 사는 곳에 가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의 삶을 사는 부족이기에, 마치 디오니소스적인 삶의 폭발적인 힘을 지닌 듯한 이토록 밝고 아름다운 생명력으로 색채의 향연이 넘치는 물건을 손으로 자아내는지 보고 싶었다.
리오아차도 충분히 오지였지만, 그곳에서 차로 1시간을 더 가야 하는 과히라사막까지 달려간 것은 마치 운명의 커다란 자석에 이끌리듯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문명사회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근원적이고 원시적인 힘을 그들에게서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도착해서 본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이른 새벽, 등이 굽은 노인부터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까지 모든 식구가 어머니나 누이가 만든 모칠라를 등에 지고 리오아차까지 걸어가는 모습, 여기저기서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염소와 소나 당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들, 위험천만하게 트럭 뒤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사람들…. 문명사회에서 태어나 뼛속까지 문명화된 내게 이 모든 것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선인장이나 커다란 나무들이 드문드문 있는 무채색의 과히라사막 속 모칠라가 뿜어내는 미칠 듯이 정열적이고 강렬한 색채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와유족의 핏속에 흐르는 고집스럽고 야성적인 본능에서 오는 것임이 분명하다.
함께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떠나는 나를 따듯하게 안아 주던 아이들,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내게 안겼던 젖먹이의 부드러운 살결을 잊을 수 없다. 이 아름다운 아이들에게 먹고사는 것, 물을 길으러 가 목욕하는 것(이것은 하루 중 그들에게 있어 가장 즐거운 놀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 외에도 삶은 아름다운 것투성이며,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생겼다.
그 바람은 나의 의무가 됐다. 처음에는 바이어이자 패션회사의 CEO로서 ‘모칠라’라는 시즌 잇 패션 아이템을 사러 콜롬비아에 간 것이었지만, 돌아올 때 나는 모칠라뿐 아니라 와유족에 대한 열정과 연민을 가슴 한가득 안은 ‘와유 광팬’이 돼 있었다. 모칠라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것은 와유족의 전통과 모칠라를 뜨는 개인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하나의 고결한 상징이자 우리가 보호해야 할 원주민들의 문화와 전통, 삶의 방식이었다.
귀국 후 나는 와유족을 위해 두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하나는 패션회사 CEO로서 모칠라를 가능한 한 많이 파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문학자로서 모칠라의 의미와 상징을 연구해서 모칠라를 사는 고객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니까.
현대백화점 본점과 코엑스점에 입점해 있던 스페이스눌을 통해 모칠라를 소개하고, 더 나아가 여러 유명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전개했다. 예를 들어 현재 잠실 월드타워 에비뉴엘 1층, 보테카 베네타 매장 앞에서도 모칠라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 이탈리아 명품인 보테가 베네타와 과히라사막 원주민의 손뜨개 가방을 같은 공간에서 선보인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좋은 소식이 들렸다. 코엑스점 스페이스눌에서 어떤 외국인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하며 모칠라가 비치된 매장 사진을 찍으며,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는 와유족이 만든 모칠라는 100m 밖에서도 알아보는데, 1층에서 어떤 사람이 모칠라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믿을 수가 없어 달려가 물었고, 단숨에 이 매장까지 뛰어 올라왔다고 흥분하며 말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주한 콜롬비아 대사관의 상무관인 세르히오(Sergio)였다. 그를 통해 나는 당시 주한 콜롬비아 대사였던 티토 사울 피니야(Tito Saul Pinilla P.)를 만나게 됐다. 나는 티토 전 대사에게 모칠라가 한 시즌의 ‘핫’ 패션 아이템으로만 기억되지 않게, 모칠라에 대해 공부를 해서 그들의 아름다운 정신과 풍부한 전통을 더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나의 <모칠라 스토리> 프로젝트를 들은 그는 대사관 직원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길로 나는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일리노이대학교(미국에서도 도서관이 좋기로 손에 꼽힌다) 온라인 도서관에 들어가 온갖 자료를 모았다. 영국에 있는 작가와 콜롬비아 사진작가에게도 연락해서 모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모아 공부했다. 나는 전통을 고수하던 와유족이 3년간의 가뭄으로 인해 모칠라를 사 달라고 외부에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 이에 할리우드 셀럽들이 너도나도 동참해 모칠라를 들게 된 경위를 알게 됐다. 어떻게 와유족이 모칠라 뜨개 전통을 갖게 됐는지에 관련된 모칠라 기원 신화, 모칠라 패턴의 역사적·상징적 의미 등을 알게 됐다.
콜롬비아에 마음이 갔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리오아차에서 돌아오던 길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카르타헤나’라는 도시에 들렀는데, 거기서 커다란 거북선 동상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읽어 보니, 콜롬비아는 우리가 6·25전쟁을 겪을 때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우리나라에 파병한 유일한 국가였다.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우리나라 국가보훈처에서 거북선 동상을 선물한 것이다. 당시 콜롬비아 병사들이 출발했던 곳이 바로 카르타헤나 항구여서 그곳에 거북선이 그토록 크고 당당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콜롬비아가 알고 보니 피를 나눈 형제 국가였다니 반가웠다.
모칠라와 나의 관계는 이런 작은 사건과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되고, 또 그 인연이 운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 모칠라의 장인인 와유족은 나에게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이고, <모칠라 스토리>는 내가 그들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우정의 표시다. 이 책의 인세가 와유족의 물이 되고, 일용할 음식이 되고, 또 미래를 위한 교육이 됐으면 좋겠다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 전해지길 바란다.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 스토리(RHK)
· 패션MD : Intro(RHK)
· 패션MD1 : 바잉편(21세기 북스)
· 패션MD2 : 브랜드편(21세기 북스)
· 패션MD3 : 쇼룸편(21세기 북스)
· 콜롬비아, 라틴아메리카의 보석(다크호스)
경력
· 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칼럼제목 :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 본 21세기)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11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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