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한화 갤러리아백화점 어제와 오늘'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10.11 ∙ 조회수 5,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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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한화 갤러리아백화점 어제와 오늘' 27-Image


지난 8월 고(故) 서영민 여사 서거 2주기를 맞이해 쓰기 시작한 ‘한화 갤러리아’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쓰는 마지막 글이다. 이번 호에서는 브랜드 매니저의 부재, 코로나19, 수원 광교점 오픈 등으로 갤러리아가 어떻게 위기에 맞닥뜨렸는지를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갤러리아에 대한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먼저 브랜딩에 대한 내용이다. 갤러리아는 다양한 직영 편집숍을 운영했으며, 여러 나라의 다양한 브랜드 바잉 경험이 풍부한 훌륭한 바이어를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랜딩을 해야겠다는 브랜드 매니저로서의 안목과 역량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친한 갤러리아 바이어들과 임원들을 만나면 입이 아프도록 했던 조언이 있었다. 갤러리아는 훌륭한 바이어, 훌륭한 로케이션, 훌륭한 얼리어답터 고객을 둔, 브랜드 테스트와 브랜드 인큐베이팅에 최적화된 백화점이니까 브랜드 사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내가 들은 대답은 “갤러리아는 점포 수가 많지 않아 브랜드 사업을 할 수 없다”였다. 그건 브랜드를 ‘Galleria only’ 브랜드, 즉 PB로 삼겠다는 백화점 중심의 사고지, 브랜드 중심의 사고가 아니다. 그 대답만 보더라도 브랜드 사업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거나, 아예 그런 개념이 머릿속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갤러리아 임원이나 결정권이 있는 사람 중에 브랜딩에 대한 안목과 신념을 가진 소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아마 지금쯤 갤러리아의 편집숍 ‘G494(G.STREET 494)’를 통해 가장 먼저 핫하게 떠오른 ‘가니(GANNI)’ ‘넘버 21(N°21, 넘버투애니원)’ ‘MSGM’ 등은 아마도 갤러리아가 독점권을 갖고 전개하는 브랜드가 됐을 것이다. 게다가 갤러리아라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브랜드를 갖고, 지금쯤은 한섬이나 SI보다 더 많은 브랜드를 보유한 패션 대기업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한창 갤러리아에 얼리어답터 고객들이 넘쳐날 때, 나는 슈퍼 MD로서, 치프 바이어로서, 또 편집숍을 경영하는 회사 대표로서 부러움을 그렁그렁 단 눈으로 G494를 봤었다. ‘내가 갤러리아 오너이고 의사결정권자라면, GI(Galleria International)이라는 브랜딩 회사를 세워서 브랜드 사업을 크게 키울 수 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었다. 만약 오너가 생각과 의지만 있었더라면 충분히 가능했으리라고 확신한다.


다음은 코로나19가 초래한 기현상으로 갤러리아가 겪은 매출 착시 현상에 관한 이야기다. 갤러리아의 여성 RTW(ready-to-wear)와 다른 부문들이 무너진 사실을 갤러리아 관계자들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명품 매출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다른 부문들의 매출 하락이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명품을 살 수가 없자 국내 백화점의 가방과 시계 등의 명품 매출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명품이 강한 갤러리아백화점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유통과 패션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비정상적인 매출임을 깨닫고 코로나19가 끝난 후의 매출 하락에 대비해 더 긴장해서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갤러리아 바이어들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정말로 그저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만 했다. 코로나19 종식 후, 즐거운 비명이 경악의 비명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명품 매출이 고점 대비 많이 빠지며 거의 원래대로 돌아오니, 그때야 여성 RTW를 위시로 다른 부문에서 부서진 MD와 매출 부진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안타까운 결과다.


이어서 광교점과 면세점 오픈으로 치명타를 입은 압구정 갤러리아 MD에 관한 이야기다. 2020년 3월 2일 한화 갤러리아는 광교에 신규 점포를 오픈했다. 갤러리아 광교점은 한화 갤러리아가 운영하는 5개 점포 중 가장 큰 규모이자 10년 만에 오픈하는 신규 점포였기 때문에 건축 단계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다. 연면적 15만㎡에 영업 면적 7만3000㎡(약 2만2000평)로 지하층에서 지상 12층의 거대한 규모로 만들어졌으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와 그가 이끄는 ‘OMA’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당시 점장 초대로 광교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거대한 암석과 빛이 관통하는 유리 루프로 된 갤러리아 광교는 정말이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희디흰 내부 공간이 아름다운 갤러리아 천안점 역시 아직도 눈에 선할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천안점이 잠시 잊힐 정도였다. 무엇보다 당시 다른 백화점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디자인이라 기억에 남는다.


문제는 이 광교점 오픈을 위해(면세도 마찬가지), 즉 광교점에 좋은 MD를 유치하기 위해 압구정 명품관 MD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는 백화점들이 주요 점포가 아닌 다른 곳에 좋은 브랜드를 유치하고자 할 때, 주요 점포 입점을 제안하는 동시에 안 좋은 점포 한두 곳을 함께 제안하는 패키지 방식이다. 솔직히 광교점 오픈 후에 입점한 브랜드들을 보면, 특히 여성 컨템퍼러리 RTW는 굳이 이런 식의 딜을 하지 않아도 입점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교점 오픈으로(또 면세점 오픈으로) 갤러리아 명품관 MD는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한화 갤러리아의 이미지와 위상은 광교점이나 천안점이나 그 외의 점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어느 점포를 위해서도 압구정점의 MD를 희생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압구정점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점포로 봐야 한다. 압구정점이 무너지면 갤러리아 전체가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현재 갤러리아는 어떤지 살펴보겠다. 현재 한화 갤러리아는 김 회장과 서 여사의 3남인 김동선 전략본부장 부사장 중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의 행보를 보면 백화점보다는 요식업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그와 관련된 기사는 백화점보다는 미국 수제 햄버거 브랜드인 ‘파이브가이즈’를 훨씬 더 많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의 입지가 더 강화돼서 유통·건설에 이어 그룹 내 AI·보안·반도체 장비 사업과 한화 로보틱스 로봇 사업도 담당하고 있다. 또 한화 건설 부문 해외사업본부장을 맡는 동시에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부문장도 겸하고 있다.


백화점을 사랑하는 패셔니스타의 관점에서 봤을 때 걱정스러운 행보다. 이 말은 그가 본업인 백화점 부문에 더 많은 신경을 쏟기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한화그룹에서 백화점 부문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많이 떨어지고, 그 매출 규모도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현재 갤러리아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할 때마다 한화는 ‘무기’로 크게 돈을 벌고 있기에 백화점은 그저 소일거리에 불과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말이 나온다. 갤러리아가 이전의 생기와 매력을 다 잃어가고 있어도 한화에는 ‘별일’도 아니고, 어쨌거나 남의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도 한다.


필자가 오지랖이 넓어 그런지, 아니면 패션을 사랑하는 패셔니스타라서 그런지, 그저 이 모든 게 안타깝다. 모든 해외 브랜드가 그토록 우러러보던, 하늘의 별같이 높은 위상을 갖던 갤러리아의 부침이라니….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지금이라도 유통 및 패션 전문가가 힘을 내서 신경 써 준다면 백화점의 크기가 작고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옛 영광으로의 회귀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때의 키(key)는 균형 잡힌 인성을 가진 유통과 패션 전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한화의 김승현 회장과 고(故) 서영민 여사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화가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와 마르스(Venus and Mars)’가 떠오르곤 한다.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그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된 채 아이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전쟁의 신 마르스를 그린 그림 말이다. 미와 전쟁, 꽃과 미사일, 백화점과 무기 산업. 왠지 이 부부와 닮지 않았는가?


다 타고 남은 재에서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아름답게 부활하는 불사조처럼 갤러리아가 현재의 바닥을 찍고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서 더 높이 부상하기를 기대해 본다. 서 여사가 하늘에서 마음 편히 미소 지을 수 있도록.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 스토리(RHK)

· 패션MD : Intro(RHK)

· 패션MD1 : 바잉편(21세기 북스)

· 패션MD2 : 브랜드편(21세기 북스)

· 패션MD3 : 쇼룸편(21세기 북스)

· 콜롬비아, 라틴아메리카의 보석(다크호스)


경력

· 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칼럼제목 :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 본 21세기)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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