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정·정예지·김지영, '덕업일치' 이룬 패션 인플루언서 3

곽선미 기자 (kwak@fashionbiz.co.kr)|24.08.12 ∙ 조회수 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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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덕業一致)’. ‘덕질과 직업이 하나로 통한다’라는 뜻처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관심사나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 직장인 궁극의 경지를 말한다. 심지어 취향이나 취미를 통해 직업을 갖고, 그것을 기반으로 브랜드나 소비자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된다? 끈기나 열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낸 3명의 패션 기업 직장인이 있다. 16년 차 가방 디자이너이자 ‘취향 부자’들의 가방 속을 들여다보는 유튜브 채널 ‘또삼언니’의 운영자 문혜정 전 LF 헤지스CC 디자인팀 수석, 국가대표 산악스키 선수이자 트레일러닝·클라이밍 인플루언서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정예지 넬슨스포츠 스카르파 매니저, 산과 브랜드에 대한 애정·열정으로 커리어와 유튜브를 동시에 성장시키고 있는 ‘할수있또영’ 채널 운영자 김지영 비와이엔블랙야크 블랙야크 의류기획팀 과장이 그 주인공이다. 


일이 먼저인지 취미가 먼저인지 이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쁜 패션 기업 직장인으로서 성실하게 일하고 커리어를 쌓으면서도 취미나 취향을 놓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쌓은 커리어와 영향력이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브랜드를 보여주는 진정성 있는 활동으로 다가가, 개인과 기업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통해 진정한 덕업일치의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01 문혜정 l 전 LF 헤지스ACC 디자인팀 수석

‘가방’을 매개로, 커리어 · 콘텐츠 한 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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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소속된 채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한 터닝 포인트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 문혜정 디자이너는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유튜브에서 찾았다. LF(대표 오규식․김상균)는 패션 기업 중 유독 이름 있는 유튜버가 많은 회사 중 하나다. 다루는 브랜드가 많은 만큼 패션 정보를 나누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직원이 많고, 그것을 막지 않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중 최근 두각을 드러내던 인물이 문 디자이너다. 작년 7월 시작해 갓 1년을 넘긴 그녀의 채널 ‘또삼언니’는 구독자 2만7800명(7월 중순 기준)을 기록하며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가방과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16년 경력을 가진 그는 쇼핑을 즐기는 자신의 취미와 취향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한다.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사람의 취향을 소개하고, 그 사람의 취향이 드러날 수 있는 상품을 보여주는 것. 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이라는 포인트를 잡아 자신의 업과 취미를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했다. 반응은 꽤 빨리 나타났다. 구독자가 가장 빠르게 많이 늘어난 달에는 8000명이 증가했고, 가장 인기 있는 쇼츠는 이틀 만에 50만 조회수를 돌파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업무 중 점심시간 1시간을 활용해 주변 가방 디자이너와 마케터 등의 가방을 들여다보는 ‘왓츠인마이백’ 콘텐츠를 하다 보니 종종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도 있었다. 그들이 직접 사용하는 지갑이나 미니백, 새로 기획한 가방 등 매장에서는 알기 힘든 상품의 진면목을 설명하는 콘텐츠로 실제 구매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자주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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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헤지스ACC' 상품으로, 영상에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영상에 등장했던 ‘질스튜어트ACC’의 가방은 200개가 완판됐고, ‘닥스ACC’는 구독자들로부터 ‘닥스에도 이런 디자인이 있다고?’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며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를 거뒀다. 7월 중순에 또 다른 성장을 위해 퇴사를 결정한 그녀에게 LF 액세서리 부문 브랜드 담당자들이 ‘앞으로는 광고를 요청하겠다’라며 채널과 연관성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견도 내비쳤다고 한다.


매주 1개씩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는데, 업무량이 만만치 않은 패션 기업 가방 디자인팀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열 살과 여덟 살 된 두 아이의 엄마인 문 디자이너는 도대체 시간 활용을 어떻게 한 것일까. 심지어 자택도 회사와 멀어 출퇴근 편도로만 1시간 반이 걸리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일정일 것으로 예상했다.


“평소엔 P이지만, 일과 유튜브를 할 때는 파워 J가 된다”라는 그녀는 기획과 섭외,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한다. 촬영 및 편집이 힘겹지만 작은 성취가 모여 조금씩 전문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기쁨으로 힘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독자 2만명이 넘어가고 퇴사를 결정하면서 본격 ‘유튜버’로 전향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문 디자이너는 이것 역시 자신을 표현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도전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의외로 다양한 기회가 열리는 경험을 해서 오히려 조심조심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도 한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문 디자이너는 “친구에게 늘 듣던 ’그거 또 샀어?’라는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한 채널인데, 이 채널을 통해 새로운 분을 많이 만나고 구독자들에게 큰 응원을 받으며 늘 힘을 얻고 있어요. 당분간은 크리에이터로서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패션이 어려운 분들이 유쾌하게 접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조금씩 알고 공유하게 되는 따뜻한 채널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디자이너 문혜정으로서 저만의 취향을 담은 따뜻하고 위트 있는 브랜드도 만들고 싶어요”라며 포부를 전했다. 



02 정예지 l 넬슨스포츠 스카르파 마케팅 선임

소비자 - 브랜드 잇는 ‘찐’ 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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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테릭스’ 마케터이자 ‘살로몬’ 앰배서더로 유명했던 인물, 현재는 ‘스카르파’의 마케팅 선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예지 매니저다. 정 선임은 특별한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현역 산악스키 시니어 국가대표 선수이자 트레일러너이면서, 클라이머와 브랜드 커뮤니티 매니저를 겸하고 있는 아웃도어 신(scene)의 리얼 인플루언서로 유명하다.


아웃도어 브랜드에 근무하는 인물 중에는 일상에서 캠핑, 등산, 등반, 트레일러닝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모두 브랜드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정 선임은 아크테릭스의 마케터로 일하면서 직접 브랜드 옷과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 기능을 경험하고, 그것을 소비자와 나누는 일을 담당했다. 워낙 아웃도어 마니아들이 많은 넬슨스포츠 내에서도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정 선임 뿐이라 대표성이 있기도 하다.(어디서도 흔치는 않다)


실제 아웃도어 제품을 착용하고 퍼포먼스 활동을 하기 때문에 상품에 대한 지식도 충분하고, 소재나 디테일에 대한 피드백도 공유한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넬슨스포츠의 아크테릭스와 스카르파는 물론 ‘고어텍스’ 등 소재 기업과의 협업에도 적극 의견을 내며 참여하고 있다. 넬슨에서 전개하지 않는 아이템에 대해서는 타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신발까지 전 카테고리를 갖춘 후로는 따로 앰배서더를 하지 않고 있다.


사실 넬슨스포츠는 대표인 정호진 사장부터 등산 마니아로 이름이 높다. 아크테릭스의 글로벌 본사에서도 그의 활동에 ‘리스펙트’를 표현하며, 올 초 글로벌 캠페인에 그의 모습을 담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도 실제 아웃도어 활동가들이 많은 편인데, 지난 5월에는 정 선임과 함께 스카르파팀 김광수 책임, 오세선 책임, 이재봉 주임이 ‘옥스팜트레일워커’ 25㎞ 부문에 도전해 완주하며 100만원 기부금 모금에 성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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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선임은 올해 초 산악스키 국가대표로 참여한 전일본선수권(좌)에서 여성부 5위,

한국 산악스키 챔피언십(우)에서는 여성부 1위 성적을 거뒀다.


정 선임은 어릴 때부터 체력이 좋고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체육 시간을 기다리는 어린이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키를 접하고 2010년 대학 스키부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마니아의 길’에 접어들었다. 온갖 스키 대회는 다 나갔고, 스키 지도자 자격증까지 딸 만큼 몰입했다. 그러다 동계 올림픽 알파인 스키 종목 경기 진행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정 선임은 “트레일런은 21~22세 때쯤 시작했어요. 산과 자연을 좋아하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트레일런만큼 잘 맞는 운동이 없을 거예요. 물론 지금은 클라이밍을 더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요. 저는 산을 정말 좋아하다보니 여기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데서 느낀 것을 많은 사람도 경험해 봤으면 해서, 일반 소비자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포인트를 업무에 접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자비와 연차를 써서 해외에서 진행하는 아크테릭스 아카데미에도 참여하며 스스로 전문성을 높이는데도 투자하고 있다. 올해도 클라이밍 아카데미에 직접 다녀왔다. 전 세계 마니아들이 모이는 자리이다보니 아크테릭스 본사 사람은 물론 본인이 담당하는 스카르파 본사 인물들도 방문해, 어쩌다보니 좋아하는 일로 쓴 시간에 일적인 면으로도 득을 볼 수 있었다고.


정 선임은 작년 두 차례 열린 아시안컵 산악스키대회에서 스프린트 시니어 여자부 1위를 모두 차지할 정도로 현역으로서도 건재하다. 트레일런과 등산도 여전히 즐기고 있고, 아웃도어 슈즈 브랜드인 스카르파를 새롭게 맡아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아직도 꿈을 좇는 그의 바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좋아하는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아웃도어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다. 



03 김지영 l 비와이엔블랙야크 블랙야크 의류기획팀 과장

유튜버로 커리어도 전환한 ‘열정 야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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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희 옷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 동료들이 이 옷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잖아요. 그래서 제 왼쪽 가슴이 늘 뜨겁게 느껴지고 저를 통해 우리 브랜드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도 너무 좋아요.” 영상에서도 인터뷰 중에도 진심을 말하다보면 덜컥 울컥해버리는, 이 사람은 찐이다. ‘덕업일치’란 이런 것이라는 진정성을 그려놓은 것 같은 인물이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해서 신혼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모두 ‘자전거’와 함께하는 ‘자덕(자전거 덕후)’이었던 김지영 과장은 CRM · CS 관련 직종으로 일을 하다 잠시 쉴 때 등산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회사로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 이커머스팀을 선택해 입사했다. 그런데 1990년생 올해 12년 차 과장인 그의 현재 소속은 의류기획팀의 불과 3년 차 의류기획 MD다.


김 과장이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건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하며 주변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 재미있어서였다. 스스로 영상을 찍고 편집하면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영상을 통해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것이 좋았다고. 지금의 덕업일치를 이루게 된 것은 강태선 비와이엔블랙야크 회장이 관악산에 오르다 지인들의 제보(?)로 ‘할수있또영’이라는 김 과장의 유튜브 채널을 접하게 된 이후부터다.


블랙야크에 입사한 지 1년, 지금도 그렇지만 애사심이 들끓던 당시 스스로 블랙야크 옷을 입고 산에 오른 영상에서 회사에 대한 사랑을 외치던 그를 강 회장의 지인들이 먼저 발견해 알렸다고 한다. 그게 벌써 6년 전이다. 강 회장은 당시 구독자가 불과 400명뿐이던 김 과장의 유튜브 채널을 모두 살펴보고, 그에게 좋은 등산 코스나 산행 정보를 직접 알려줬다. “여기(유튜브)에 우리 소비자들이 다 있다”라며 채널에 관심을 가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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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과장은 지난 7월, 연차를 내 몽블랑에 직접 올랐다.

블랙야크 글로벌의 새로운 상품을 착용하고 산에 오르면서 느낀 다양한 풍경과 감정을 기록했다.


그렇게 점차 회사에서 ‘할수있또영’ 채널이 알려지던 때, 3년 전 김 과장의 영상을 통해 산에 대한 경험과 애정을 접한 현재 의류기획팀 오세욱 팀장이 그를 지목했다.


“여성 중에 이 정도로 아웃도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이런 사람이 만드는 아웃도어웨어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 블랙야크의 진정성을 만들어 줄 것이다”라며 이제 막 10년 차 대리였던 김 과장을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MD 경력이 아예 없는 김 과장을 기획팀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한 오 팀장은 본부장과 강준석 사장, 강태선 회장까지 직접 설득했다.


고민 끝에 ‘내가 만든 옷을,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입을 수 있다’라는 생각에 팀을 옮긴 김 과장은 전문가들 속에서 비전문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상품 관련 피드백과 정보 공유 등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업무를 익히는 데도 열정을 다했다. 


현재 구독자 수 6340명(7월 중순 기준). 5년 차 취미 유튜버치고 많은 구독자 수는 아니지만 김 과장은 자신의 취미를 기록하고, 자신이 만든 옷을 보여주며, 추억 공유라는 목적을 기반으로 꾸준히 채널을 운영 중이다. 블랙야크 의류기획자로서 자아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아직 광고나 협찬을 받지는 않고 있다. 타 브랜드 옷을 입는 자신으로 인해 브랜드에 피해가 갈까 봐 우려도 되지만, 자신과 동료들이 만드는 블랙야크 의류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파워 사측’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등산을 정말 좋아하는 김 과장은 7월 초에 열흘 휴가를 내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에도 다녀왔다. 그는 “자전거에서 등산, 백패킹으로 취미가 확장되면서 산의 매력을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뛰어나지 못한 사람이라 늘 남들의 속도에 맞춰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등산은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하기만 하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에요. 제 채널을 접하는 분들이 자신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고, 저를 통해 블랙야크의 옷이 참 좋다는 것을 알게 됐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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