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하쉬 이야기 4탄, 하쉬(Hache) 뒷이야기와 AVN'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05.10 ∙ 조회수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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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하쉬 이야기 4탄,  하쉬(Hache) 뒷이야기와 AVN' 27-Image


이탈리아 브랜드의 비즈니스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하쉬(Hache)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지난 호에서 하쉬의 몰락 후 국내 독점권자였던 G사가 하룻밤 사이에 백화점 매장을 접은 사건을 다뤘다. 이번 호에서는 하쉬를 운영하던 본국 대표와 디자이너의 이후 행보와 관련한 브랜드 이야기를 비롯해 패션업계 종사자라면 알아야 할 주의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하쉬의 CEO 데이비드, 그의 부인이자 디자이너인 마뉴엘라, 해외영업사원 세 명이 동시에 거대 펀드 회사인 ‘오페라 에퀴티’에서 해임됐다는 이야기를 지난 호에서 한 바 있다. 한 마디로, 하쉬와 테레반티네(Ter et bantine)는 더 이상 마뉴엘라와 데이비드의 브랜드가 될 수 없었다. 


그러자 CEO 데이비드는 컬렉션 프리베(collection PRIVĒE)를 운영하던 친구를 찾아가 RTW(ready-to-wear)를 론칭하자고 제안했다. 심지어 하쉬와 테레반티네 고객을 다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으니, 컬렉션 프리베 입장에서 고객층을 늘리고 브랜드 위상도 높일 수 있는 괜찮은 거래였을 것이다.


하쉬가 없는 두 시즌 동안 국내 백화점 모노 브랜드 스토어에는 네 개의 브랜드가 함께 멀티숍처럼 운영됐다. 새 디자이너로 영입된 무르쿠디스의 ‘하쉬 같지 않은 하쉬’, 원래 하쉬 디자이너 마뉴엘라가 디자인한 ‘컬렉션 프리베’, 빨간색 라벨의 ‘버지니아 비지(VIRGINIA BIZZI)’, 초기 하쉬와 비슷한 ‘AVN’이라는 브랜드였다. 


그중 버지니아 비지는 컬렉션 프리베 CEO의 딸이 자신의 이름을 달고 론칭한 브랜드다.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컬렉션 프리베 사장에게 충성심을 보이고자 이 브랜드도 밀었을 테고, 이에 하쉬의 독점권자였던 G사가 함께 바잉한 것이다. 그런데 바잉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국내 유수의 백화점에 컬렉션 프리베의 모노 매장까지 오픈했다. 그야말로 ‘놀랄 노 자’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컬렉션 프리베 매장이 국내에 생기다니, 다시 한번 그들의 영업력에 경의를 표한다. 


한편 AVN은 오래전에 내가 반한 하쉬의 아카이브 라인과 콘셉트와 핏이 매우 닮았다. 데이비드와 마뉴엘라가 하쉬와 테레반티네를 오페라 에퀴티에 빼앗긴 후 새로 론칭한 독자적인 브랜드인데, 명목상으로는 마뉴엘라의 아들이 디자인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나는 마뉴엘라의 DNA를 안다. 디자인은 따라 할 수 있어도 옷 핏은 거짓말을 못 한다. 마뉴엘라의 손길이 흠뻑 묻은 컬렉션임이 틀림없다. 아들이 디자인했다고 홍보한 이유는 오페라 에퀴티와의 계약상, 마뉴엘라 이름으로는 브랜드를 론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 컬렉션 프리베 사장은 그들이 AVN을 따로 론칭했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데이비드의 오랜 친구라면 그가 어떤 사람일지 알았을 텐데 동업을 시작하다니, 시한폭탄을 안은 것 아닌가! 그 시한폭탄이 일찍 터진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데이비드가 진정으로 친구의 브랜드를 키워주고 싶었다면 굳이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두 시즌 만에 데이비드와 마뉴엘라는 하쉬와 테레반티네를 되찾았고, 이제 AVN까지 총 세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게 됐다. 작은 가족 경영의 회사가 브랜드를 세 개나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들은 브랜드를 되사오기 위해 있는 돈을 싹싹 긁어모았다고 했다. 그러니 다른 브랜드를 키울 필요도, 다른 브랜드 이름하에 디자인해서 자기 고객을 연결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의 말만 믿고 ‘대대적’으로 RTW를 론칭한 컬렉션 프리베는 어떻게 됐을까? 한마디로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브랜드 하나를 론칭하려면 어마어마한 자금과 준비시간, 팀워크가 필요하다. 웬만한 한국 브랜드 하나를 론칭하려면 100억~200억은 필요하고, 실패하면 200억~300억은 날아간다는 말을 들었다. RTW를 생산하지 않던 브랜드가 RTW를 론칭하려면 품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컬렉션 프리베는 큰 회사도 아닌 작은 가족 회사다. 딱하기 그지없는 그의 사정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하쉬를 되사온 그다음 시즌에 컬렉션 프리베 사장이 한국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그는 당시 데이비드가 RTW 라인을 론칭하자면서 어떤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야말로 ‘감언이설’이었다. 또한 데이비드의 아버지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배우인데(이 사실은 나도 그때 처음 알았다!), 자기 아버지보다 연기를 더 잘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꽤 억울했던 모양인지 구구절절 토로했다. 


컬렉션 프리베 사장은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고 거액을 빌려 컬렉션 프리베의 RTW 라인을 론칭했지만, 데이비드는 두 시즌 만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컬렉션 프리베를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한다. 컬렉션 프리베는 지금도 파리의 프리미에클래스 등에 참가할 때 신발과 가방 등 가죽 라인에 겨우 10~20점의 RTW 컬렉션을 들고 나온다. ‘2024 F/W 파리 컬렉션위크’ 때 그들의 부스를 봤는데, 초라해서 딱한 마음이 들었다.


그맘때 나는 데이비드에게 장문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지난 일에 반성도 많이 했고, 이제는 ‘new born baby’처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할 테니 자신의 브랜드를 한국에 전개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 메일이었다. 나는 가족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하쉬가 궁금해서 아주 작게 바잉을 했지만, 지난 호에서 말한 것처럼 규모도 줄어들고 퀄리티도 낮아서 이제는 실망스러운 브랜드가 됐다. 하쉬를 내가 처음 국내에 소개한 만큼 첫사랑이기는 하나,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모습에 미련은 두지 않기로 했다. 


브랜드가 한번 무너지면 더 힘이 센 회사나 펀드가 밀어주거나 유명인이 띄워 주지 않는 한 다시 잘되기 힘들다. 데이비드와 마뉴엘라는 현재 하쉬와 테레반티네보다는 새로운 브랜드인 AVN에 집중해서 이탈리아의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팝업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키워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편집숍에서도 AVN은 왕왕 눈에 띈다. 그때마다 나는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산드로(SANDRO)나 마쥬(MAJE) 같은 큰 기업형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을 때에도 CEO의 세계관이나 기업문화는 어느 정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쉬나 AVN처럼 디자이너가 핵심인 브랜드와의 파트너십에서는 결정권자의 세계관과 신뢰가 컬렉션만큼이나 결정적이다’라는 점을 배웠다. 또한 파트너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브랜드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역시 결정권자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데이비드 덕분에 나는 ‘이탈리아 비즈니스 전문가’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수준이 됐다. 그를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이탈리아 문화 역사 사람을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낀다. 나는 과연 어떤 비즈니스 파트너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사업도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산드로(SANDRO)나 마쥬(MAJE) 같은 큰 기업형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을 때에도 CEO의 세계관이나 기업문화는 어느 정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쉬나 AVN처럼 디자이너가 핵심인 브랜드와의 파트너십에서는 결정권자의 세계관과 신뢰가 컬렉션만큼이나 결정적이다’라는 점을 배웠다. 또한 파트너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브랜드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역시 결정권자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 스토리(RHK)

· 패션MD : Intro(RHK)

· 패션MD1 : 바잉편(21세기 북스)

· 패션MD2 : 브랜드편(21세기 북스)

· 패션MD3 : 쇼룸편(21세기 북스)


경력

· 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칼럼제목 :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 본 21세기)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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