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하쉬 이야기 3탄, 이탈리아에 가족 경영 회사가 많은 이유'
이탈리아는 가족이 경영하는 브랜드가 많다. 물론 일본에도 3~4대째 이어진 기업이 많은데, 이는 ‘코다와리(こだわり)’라고 불리는 전통과 장인정신의 계승이 목적이다. 반면 이탈리아 브랜드의 가족 중심 경영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지난 호에 이어 소개하고 있는 ‘하쉬(Hache)’ 브랜드가 대표적인 예다. ‘하쉬’와 ‘테레반티네(Ter et bantine)’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GFM’은 ‘불가리’를 소유한 거대 펀드 회사 ‘오페라 에퀴티’ 소속이었지만, 하루아침에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가 되고 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앞서 두 차례 연재했던 내용을 요약하자면, 2012년 내가 처음 국내에 소개한 하쉬가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GFM의 대표 데이비드 에이거스(David Agus)는 욕심에 눈이 멀어 불공정한 계약 조건으로 국내 독점권을 G사에 넘겼다. 이번 호에서는 신뢰를 얻지 못한 대표의 무모한 결정이 파트너인 G사와 자신의 브랜드를 어떻게 몰락시켰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013년 하쉬의 독점권을 얻은 G사가 한국에 하쉬 모노 브랜드 스토어를 오픈한 뒤 두 시즌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데이비드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받았다. 요지는 GFM의 지분을 80%를 갖고 있는 오페라 에퀴티가 자신과 마뉴엘라(Manuela)를 전격 해임했다는 것이다. 마뉴엘라는 데이비드의 부인이자 하쉬의 핵심 디자이너다. 자신들은 이제 더 이상 하쉬와 테레반티네와 연관이 없고, ‘컬렉션 프리베(collection PRIVĒE)’라는 브랜드와 일하고 있으니 이쪽으로 바잉을 와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데이비드를 해임한 오페라 에퀴티의 결정이 충분히 이해됐다. 수년간 데이비드라는 사람의 특성을 봐 왔기 때문이다. 마뉴엘라는 하쉬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유능한 디자이너인 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잃는 모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들을 잘라낼 만큼 데이비드가 신뢰를 잃었다는 증거였다.
2014년, 새 디자이너와 컬렉션을 연 하쉬와 테레반티네의 변화가 궁금해서 나는 가장 먼저 쇼룸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컬렉션이 산으로 가고 있었다. 하쉬가 지켜오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온데간데없었다. 마뉴엘라를 해고한 오페라 에퀴티는 헬무트 랭(HELMUT LANG)에서 오래 일한 그리스 디자이너 코스타스 무르쿠디스(Kostas Murkudis)를 영입했지만, 그는 하쉬의 브랜드 DNA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결국 하쉬의 새 컬렉션은 대실패로 끝났다. 전 세계 바이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하쉬 쇼룸은 그야말로 텅 비어 있었다.
반면 2014년 시즌의 컬렉션 프리베는 사실상 브랜드명만 달라진 하쉬 디자인이었다. 컬렉션 프리베는 원래 신발과 가방 등을 만드는 가죽 전문 브랜드였으나 데이비드와 마뉴엘라가 참여하며 RTW(ready-to-wear)를 론칭했다. 하쉬의 실패 원인은 이전보다 수준이 떨어진 컬렉션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는 나뿐만 아니라, 하쉬를 바잉하는 모든 어카운트에게 똑같은 이메일을 보내 마뉴엘라의 디자인을 보려면 하쉬 쇼룸이 아니라 컬렉션 프리베 쇼룸으로 오라며 초대했다.
착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하쉬 쇼룸에서 나온 나는, 100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자리한 데이비드의 쇼룸으로 발길을 돌렸다. 쇼룸 유리창에는 “전 하쉬와 테레반티네 디자이너 마뉴엘라의 ‘컬렉션 프리베’ 쇼룸”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애매했다.
컬렉션 프리베 쇼룸에 들른 나는 데이비드와 친한 해외영업사원 세 명도 함께 해고당한 사실을 알았다. 휴가를 다녀왔더니 사무실 키가 인식되지 않았고 이메일 엑세스도 안 되더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자른다니 충격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예고 없는 이런 해고는 이탈리아에서 흔한 일이었다. 브랜드에서 지위가 높거나 핵심 인물일수록 더욱 그렇다고 하는데, 에르노를 포함한 동종의 다른 이탈리아 브랜드 사람들이 확인해 준 내용이니 사실임이 틀림없다.
기존 고객이 전부 없어진 하쉬와 테레반티네의 매출은 처참했다. 한국의 하쉬 독점권자인 G사는 이미 독점계약을 맺은 터라 하쉬와 테레반티네(전혀 하쉬나 테레반티네 같지 않은 두 브랜드)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바잉해야 했다. 게다가 하쉬 디자인을 좋아하던 고객들을 위해 컬렉션 프리베도 무리하게 바잉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페라 에퀴티는 디자이너 무르쿠디스와 계약을 해지하고, 두 시즌 동안이나 컬렉션을 열지 않았다. 그 기간에도 우리나라 백화점에는 여전히 하쉬 매장이 여럿 있었다. G사의 영업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G사는 결국 2016년 하룻밤 사이에 매장을 접고야 말았다. 중간관리로 운영되는 백화점 매니저들의 수수료를 서너 달 주지 못해 계좌 압류와 소송이 들어오자 사업을 포기한 것이다. 이 일을 지켜보며, 내가 하쉬의 국내 파트너가 되지 못한 것이 오히려 ‘하늘이 보우하사’였음을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7년, 데이비드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자신이 하쉬의 새 주인이 됐으니 다시 바잉하러 와 달라는 것이었다! 이번 일로 자신은 새로 태어났고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 테니 한국 시장의 독점도 맡아 달라는 일종의 초대장이었다. 다음 시즌이 된 후 나는 그의 쇼룸으로 가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하게 듣게 됐다. 2014년 하쉬 컬렉션에 대 실패한 오페라 에퀴티가 결국 하쉬를 데이비드에게 낮은 가격으로 팔았고, 하쉬는 데이비드와 부인 마뉴엘라(디자이너), 자식 2명을 포함해 네 명이 주식을 100% 소유한 가족 회사가 됐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주식을 팔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이렇게 옛 주인을 다시 만난 하쉬가 이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문제는 컬렉션의 퀄리티였다. 오페라 에퀴티라는 거대 펀드 회사 소속이었을 때 하쉬는 한 아이템마다 패브릭 종류가 다양하고 패브릭마다 색상도 다양해 어떻게 골라서 바잉하느냐에 따라 콘셉트를 다르게 구성할 수 있었고, 모노 브랜드숍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대형 컬렉션이 가능했다. 그런데 가족이 경영하는 작은 회사가 된 뒤 컬렉션의 규모가 현저히 작아졌다. 기존 고객을 많이 잃은 탓에 생산 물량이 줄어서인지 불량률도 높고 품질도 떨어졌다. 이전보다 가격은 올랐어도 패브릭이나 색상 등의 선택지는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결국 하쉬의 입지는 점점 작아져 한국뿐 아니라 해외 패션 시장에서도 거의 사라져 가는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 허쉬 이야기 1탄에 실린 칼럼 내용 중 막스코(Maxkor)를 코리막스(Cori Max)로 정정합니다.
하쉬는 패션계에서 만난 나의 첫사랑이었다. 2012년 파리 트레이드쇼에서 하쉬를 처음 발견하자마자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뛰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시즌 만에 직접 바잉해 온 상품이 다 판매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브랜드의 가능성을 봤는데, 이렇게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디자인이 훌륭해도 한 치 앞의 나무에 눈이 멀어 큰 숲을 보지 못하고 내린 CEO의 결정은 자기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신뢰를 저버리고 욕심을 부리면 그 화살은 자신에게로 향한다는 말은 역시 진리인 것 같다.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 스토리(RHK)
· 패션MD : Intro(RHK)
· 패션MD1 : 바잉편(21세기 북스)
· 패션MD2 : 브랜드편(21세기 북스)
· 패션MD3 : 쇼룸편(21세기 북스)
경력
· 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칼럼제목 :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 본 21세기)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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