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패잡] 조병하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설거지를 안 하면 그릇을 깰 이유도 없다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03.11 ∙ 조회수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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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패잡] 조병하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br> 설거지를 안 하면 그릇을 깰 이유도 없다 3-Image



뉴욕의 야경을 실컷 볼 수 있는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 2002)를 우연히 다시 봤다. 사랑의 모든 것은 운명에 달려 있다고 믿는 여주인공 사라(케이트 베킨세일)가 신봉하는 세렌디피티는 사전적 의미로 “뜻밖의 발견, 의도하지 않은 발견, 운 좋은 발견”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는 운명적인 만남을 뜻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 운명으로 이미 결정돼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영화의 남자 주인공 조나단(존 쿠삭)처럼 모든 것은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모든 사랑 영화에서 보듯이 인간은 대개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일 때가 연애를 하는 그 순간이다. 이별을 하든 결혼을 하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소는 키워야 하니까.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그릇을 깰 이유도 없다. 아내의 수고를 덜겠다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면, 물론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조금 억울한 마음은 들지만 안 도와준 것만 못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그릇 한 번 깼다고 그것이 두려워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일도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운명적인 만남만 기대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인생의 모든 것이 운명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지금은 잊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매번 어떤 선택이나 갈림길에서 우리는 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것이다. 편식하지 말고 이것저것 많이 먹어봐야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음식을 찾을 수 있다. 연애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아니면, 누구라도 한 사람과 깊이 사귀어 보든가. 어차피 인간은 모두 같은 종(Species)이니까.

특히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이라면 더더욱 객관적일 수 없다. 하지만 나쁜 인간만 아니라면 어차피 성격은 살면서 맞춰가면 되니까. 이별이 두려워, 또는 상처를 받을까 봐 새로운 만남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상처받을 일도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적으로 준 적도, 전적으로 받은 적도 없는 삶이 뭐 그리 자랑스럽겠는가.

“더 많이 사랑하지도 말고, 그래서 다치지도 않고, 그래서 무사하고 그래서 현명한 건 좋은데… 그래서 그렇게 해서 너의 삶은 행복하고 싱싱하며 희망에 차 있는가 하고… 그래서 다치지도 않고 더 많이 사랑하지도 않아서 남는 시간에 너는 과연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 읽었던 소설책 〈<봉순이 언니>(공지영, 해냄출판) 속의 한 구절이다.

누구든 그 연애의 순간만은 열심히 사랑하면 된다. 아니면 말고,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흘러가는 인연은 그냥 흘러가게 놔두면 된다. 그렇다고 그 영화의 내용처럼 만나게 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할 테니까. 단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그 빈자리를 메꾸려고 쓸데없는 조급함에 헛것을 채우는 일이다.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특별히 더 공부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연애란 상대방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니까. 내가 누구를 한 번도 제대로 채워준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나를 가득 채워주지 않는다. 결국 연애도 운명도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profile
- 1987년 삼성그룹 공채 입사
- 1996년 신세계인터내셔날 입사
- 2005년 해외사업부 상무
- 2010년 국내 패션본부 본부장
- 2012년 신세계톰보이 대표이사 겸직
- 2016년 신세계사이먼 대표이사
- 2020년 브런치 작가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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