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패잡] 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아리송한 호칭의 세계, 이제 바꿀 때!'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02.16 ∙ 조회수 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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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패잡] 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br> '아리송한 호칭의 세계, 이제 바꿀 때!' 3-Image



멕시코에서 일할 때다. 조직에 합류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멕시코인 동료가 내게 물었다. “너 요즘 사장님 아내와 식사를 자주 하던데, 성함이 어찌 되셔?” 아뿔싸. 여쭤본 적이 없다.

한국인 대표이사가 1대 주주였던 합작 법인이었는데 한국에 사는 사모님이 멕시코에 오셔서 몇 개월 머무르실 때였다. 회사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스페인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모님을 모시고 종종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멕시코인 동료는 별 의도 없이 사모님의 성함을 물어본 거였는데 나는 알지 못했다.

“성함을 몰라.” “엥? 몇 달을 같이 다니면서 이름을 모른다고? 그러면 뭐라고 불러?” “사모님.” 이 사모님이라는 단어를 스페인어로 풀어서 표현을 하자면 ‘사장의 아내님’인데, 한국어로는 익숙한 이 단어가 스페인어로 바꾸고 나니 요상한 호칭이 됐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모님의 성함을 궁금해 본 적이 없었다.

OOO 사모님보다는 그냥 ‘사모님’이지 않은가. 10년이 지난 지금 멕시코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들과 소소한 모임 자리를 가질 때면 이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에서는 사장님의 아내를 ‘사장의 아내님’이라고 부른다고. 구글 번역기의 아주 초창기 시절, 일본에 있는 거래처 담당자가 내 옆자리의 엄 차장님에게 보낸 이메일 서두에 ‘엄 씨’라는 호칭에 부서 전체가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도 있다.

우리나라의 호칭 세계는 참 아리송하다. 동갑내기 친구나 나이 어린 가까운 지인을 제외하고는 이름을 부르는 일이 거의 없으며 친족 호칭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낯선 이를 부르는 호칭은 태양계에서 가장 흥미롭다.

외가와 친가를 나눠서 부르는 외할머니·외삼촌·외숙모, 나의 배우자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따져서 부르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처남·매부·동서·아주버님 등. 여기에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당에서 쓰는 언니·이모·사장님, 물건을 사러 들어간 가게에서 종종 듣게 되는 사모님·선생님·사장님.

단어 자체 의미보다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며 써야 하는 우리나라의 호칭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왜 이름은 동갑내기 친구들끼리만 부를 수 있는 걸까? 왜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게 무례하게 들릴까? 직업을 전혀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 쓰는 사장님, 언니, 선생님 호칭도 어색하기만 하다.

표면적으로는 평등 사회를 지향한 지 꽤 오래된 우리 사회가 친족 호칭으로 아가씨와 서방님을 아직도 쓰고 있고 홍길동도 아닌 우리 모두가 아무개를 아무개라 부르지 못하는 2024년을 살고 있다는 것이 때로는 희한하고 우습기까지 하다.

신분과 지위의 차이, 성별의 차이가 담겨 있지 않은 보편적 호칭을 써 보자는 목소리가 꽤 오래전부터 나오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언어생활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이와 성별을 기반으로 한 호칭을 하루아침에 수평적이고 보편적으로 ‘휘리릭’ 바꾼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사소한 방식이 문화를 만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친근하고 익숙한 여러 호칭이,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아리송하고 차별과 불평등의 맥락이 담겨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조금씩 바꿔 보는 건 어떨까? 한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제안한 ‘님’과 같은 ‘두루 높임 호칭’을 나부터 써 보는 것도 좋겠다.

■ 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Profile

- 현 Mahon Korea 대표
- 현 Golden Egg Enterprise 대표
- 동원그룹, LG전자, 한솔섬유 근무
- 스페인 IE Business School 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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