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아ㅣ스페이스눌 대표
데바스테~스페이스눌, 수입 컨템퍼러리 대모
hyohyo|22.03.04 ∙ 조회수 17,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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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롯데백화점 본점에 1호 매장을 연 프랑스 컨템퍼러리 ‘데바스테’. 당초 목표 매출의 2배 이상을 초과 달성하는 등 좋은 성과를 얻은 이 브랜드는 갤러리아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등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현재 백화점 컨템퍼러리 조닝의 뉴페이스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이 브랜드의 글로벌 총판이자 컨템퍼러리(코워크) 라인의 CD가 김정아 스페이스눌 대표라는 사실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새로 오픈한 데바스테의 쇼룸 겸 사무실은 ‘스페이스눌’의 미래 비전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17년간 수입 컨템 멀티숍 스페이스눌을 운영하며 ‘에르노’ ‘알렉산더왕’ ‘마누슈’ 등 굵직한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해 온 김 대표는 이제 멀티숍 비즈니스를 넘어 파트너십을 통해 모노 브랜드로 인큐베이팅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제가 갖고 있는 좋은 브랜드가 정말 많은데, 저의 캐파(capacity)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특히 디자이너와 비즈니스 파트너 이상의 신뢰와 우정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책임감이 들기도 했고, 백화점 관계자가 MD 구성에 애를 먹는 경우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어요. 제가 다리 역할을 해서 양쪽이 윈윈하면 좋은 거죠.”
이에 롯데백화점 월드타워 에비뉴엘에 있는 스페이스눌 매장을 시작으로 데바스테 모노 스토어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미 스페이스눌에서 마켓 테스트가 완료된 ‘메릴링’과 ‘보라악수’ 역시 일부 프리미엄 상권에 단독 매장으로 들어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확대해 나간다. 스페이스눌은 아울렛과 온라인, 일부 백화점에 안테나숍 개념으로 남겨둔다.
멀티숍 ‘스페이스눌’ → 모노 브랜드 전개 집중
김 대표는 ‘스테판슈나이더’ ‘제라르다렐’ ‘데이드림네이션’ ‘데바스테’ 등 브랜드의 국내 파트너를 모색한다. 벨기에 디자이너 브랜드 스테판슈나이더는 남성복과 여성복의 국내 판권을 갖고 있으며 핏이 포인트인 ‘르메르’나 ‘구호’와 비슷한 포지셔닝으로 풀어내면 충분히 볼륨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제라르다렐은 세계적인 편집숍 ‘메르시(Merci)’와 같은 오너가 소유하고 있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또 데이드림네이션은 해외판 럭키슈에트 버전으로 볼 수 있다.
각 브랜드 캐릭터에 맞는 파트너를 찾기 위해 그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일까? “옷을 만들고 팔아서 돈을 번다고 패션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역시 사업을 해보니 오너십이 정말 중요하더군요. 오너가 애정과 철학을 갖고 꾸준히 세계관을 가꾸어 가지 않은 채 단기간 수익만을 저울에 올려놓는다면 장기적으로 결코 성공한 패션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는 그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해당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와의 정보 비대칭성에서 수익을 내던 과거와 달리 지금과 같은 글로벌 유통 환경에서 일반적인 수입 패션 비즈니스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예요. 재고를 갖고 가지 않거나 라이선싱이 가능한 조건으로 계약을 해야 하죠. 그런데 과연 좋은 브랜드일수록 이런 계약을 맺으려고 할까요?”
위탁 · 라이선싱이 핵심, 파격적 계약 조건 가능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밝히기 힘들지만 김 대표는 낮은 미니멈, 판권 · 홀세일권뿐 아니라 라이선싱권, 재고를 떠안지 않는 위탁 개념 등 상상하기 어려운 조건을 조율할 수 있는 것이 김 대표만의 파워다. 적합한 파트너를 만날 경우 김 대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개념으로 전체 컬렉션을 총괄하며 브랜드 세계관을 지켜갈 예정이다.
영어와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고 러시아어 문학박사 출신답게 러시아어를 읽고 쓰는 것이 완벽하며 중국어도 능숙해 한국어 포함 5개 국어 구사자인 김 대표는 각 브랜드의 디자이너나 대표 등 의사결정자와 직접 신뢰 관계를 구축하며 아시아 시장의 조력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일례로 벨기에 디자이너 스테판 슈나이더는 김 대표의 제안에 따라 입고 벗기 편한 지퍼가 긴 원피스와 아시아인 평균 키에 맞는 핏으로 중국 시장에 준비할 수 있었다. 또 스웨터에 주머니를 개발해 ‘아냐의 주머니(Annya’s Pocket, 아냐는 김정아 대표의 영어 이름)’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또 국내의 가장 큰 홀세일러인 대기업도 김 대표의 쇼룸에서 상품을 바잉하게 할 정도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글로벌 인맥, 비즈니스 파트너 너머 우정으로
또 이제는 국내 대기업으로 판권을 넘기긴 했으나 이탈리아 프리미엄 패딩 에르노의 시그니처인 후면 목덜미 골드바 역시 김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에르노의 경량 패딩은 라인과 핏이 강점이지만 일본발 SPA인 ‘유니클로’의 그것과 겉보기에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국내 소비자가 하이엔드 패딩을 입는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제작한 것.
데바스테 역시 일본의 패션 대기업 온워드카시야마에서 글로벌 판권을 갖고 생산과 판매를 모두 하며 130억 매출을 기록했지만 김 대표에게 글로벌 총판을 맡겼다.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컬렉션 라인 이외의 컨템퍼러리 라인을 신설했다. 이번 S/S 시즌 국내에서 인기 있는 바람막이, 리버서블 스웻셔츠 등 실용적인 아이템을 제안해 백화점 MD에서 명품 조닝과 컨템퍼러리 조닝을 아우를 수 있도록 했다.
김 대표가 이렇게 글로벌 인맥을 탄탄하게 구축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인문학자의 마인드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자타공인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다.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의 번역을 계약해 틈틈이 작업에 임하기도 한 학자다. 그는 “세계적으로 도스토옙스키 장편 전집은 많지만, 그 전집을 한 사람이 다 번역한 경우가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을 굉장히 잘 알아야 하고 시간과 노력이 아주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명품 - 컨템 아우르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비즈니스 이야기보다 인문학적 교류를 통해 인간적인 유대를 먼저 쌓는다는 그는 “일반적인 바이어 출장을 보면 쇼룸에서 한 시즌 상품을 보고 잘 팔릴 만한 것을 데이터 위주로 바잉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바잉하지 않더라도 관심이 있다면 꾸준히 방문해요. 패션이라는 건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요.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이후 애정 어린 조언을 바탕으로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사고방식과 캐릭터를 파악한다. 김 대표는 “저는 디자이너의 인성도 중요하게 봅니다. 구매도 하지 않는 바이어가 지속적으로 와서 훈수를 둘 때 무시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귀담아듣고 수정할 정도로 유연한 이들도 있죠. 이런 사람들과는 신기하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잘 맞아요”라고 덧붙인다.
명품과 고가 수입 시장에만 돈이 쏠리는 현상에 컨템퍼러리의 호황은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해 묻자 “2년 동안 여행을 못 한 ‘보상심리’가 명품으로 쏠렸다고 하는데 여기서 명품이라 함은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보테가베네타’ 정도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는 원래 컨템퍼러리에 대한 니즈입니다. 안목이 높아진 소비자가 쉽사리 그 밑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거라 봅니다”라고 전한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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