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열 | 뱅뱅어패럴 회장
5만 시간 아웃라이어*로 성공
10.05.06 ∙ 조회수 1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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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을 투자하면 넘어서는 성공을 할 수 있다.’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맬컴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메시지다. 성공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한 분야에서의 지속적인 노력, 최소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은 거의 10년의 시간이다. 권종열 뱅뱅어패럴 회장은 50년이라는 세월, 즉 5만 시간을 투자한 청바지의 아웃라이어다.
한국의 수많은 거리 이름 가운데 서울 강남구 양재동의 뱅뱅사거리는 패션 브랜드 이름을 딴 유일한 지명이다. 거리의 랜드마크는 수시로 변화가 따름에도 지난 1982년 설립 이후 수십년 동안 변하지 않는 양재동 소재 뱅뱅 사옥과 직영점 뱅뱅플라자가 있는 신뢰성으로 거리 이름이 명명된 것이다. 「뱅뱅」은 이처럼 한국 패션, 특히 캐주얼 역사에 랜드마크 위치로 우뚝 서 있다.
청바지를 중심으로 한 캐주얼만으로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 국내 캐주얼 브랜드로서 가장 많은 전국 214개의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 「뱅뱅」 파워의 주인공 권종열 회장이다. 태창에서 수출하다가 남은 청바지 원단 1000여 필로 시작한 국내 최초의 청바지 사업이 지금의 「뱅뱅」이다. 한때 국내 청바지 시장의 70% 이상을 독차지하면서 지금의 진 전문 브랜드들의 진입 열기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40주년 맞은 토종 브랜드 「뱅뱅」 주역
1961년 평화시장에서 재봉틀 3대와 원단 16필로 출발한 권종열 회장이 런칭한 「뱅뱅」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50년을 한결같이 캐주얼 브랜드에 집중하면서 「뱅뱅」을 지켜 온 권회장에게 패션산업은 어떤 의미일까.
“50년 외길 인생이라고 주변에서 평가하듯이 정말 한 눈 팔지 않고 ‘옷’만을 바라보고 살아오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품질을 경제적인 가격에 판매할까를 고민해 왔다. 물론 위기는 항상 있었다. 지속적으로 번창하던 사업은 1980년대 해외 브랜드가 도입되면서 첫 번째 성장의 한계에 부닥치기도 했다. 「뱅뱅」은 당시 최고 인기 가수인 전영록을 내세워 과감하게 TV CF를 진행,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침으로써 대중적인 지지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지금의 글로벌 브랜드와의 경쟁은 당시와 또 다른 수준이다. 당시에는 지명도 확보의 경쟁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더 빠르게 좋은 디자인과 제품을 더 값싸게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느냐, 브랜드 이미지는 얼마나 신선하게 가져갈 수 있느냐 등 총체적인 경쟁이다. 이러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권회장은 강조한다.
선양 쯔보 청두 단둥 등 중국 40개 지사
뱅뱅은 이미 지난 1992년 동일한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을 최대 강점으로 어필하기 위해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겼다. 현재는 베이징 칭다오 등 10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각지의 우수한 생산 라인을 개발해 제품 기술을 끌어올리고 있다. 자체 생산 라인으로 스톤 워싱 기법을 선보인 곳도 「뱅뱅」이 최초일 것이다. 그 결과 「뱅뱅」은 10년 전 가격을 아직도 고수하며 청바지만은 노세일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은 정통 역사보다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무한경쟁 시대에서 건강하고 신뢰 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도전 혁신 열정 신뢰의 마음가짐으로 재정비해 고객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도록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딜 것이다. 창업 이래 소명의식이자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고객을 위한 가치 창출이었다. 합리적인 가격의 최고 품질로 고객을 만족시키겠다는 유일한 목적으로 패션 기술을 개발해 왔다”고 강조했다.
“큰 화재로 공장 문을 닫으려고 방황하는 순간을 극복한 뒤 노력과 열정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뱅뱅」에는 오랫동안 함께해 온 직원들이 있고 전국에는 수많은 점주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뱅뱅」 점주들은 각 지역의 유지 소리를 들을 만큼 대부분 성공했다. 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향후 10년 후에도 영원히 젊은 브랜드로
그에게는 물론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많다. 20~50대 고객층을 대상으로 타깃이 넓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브랜드 신선도의 문제나 가두점 대형마트 홈쇼핑 등 다양해진 유통 채널별로의 효율성 등이 그것이다. 분명한 것은 ‘뱅뱅=젊음’이라는 이미지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해 왔다고 해도 미래 시간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브랜드는 영원히 젊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근 「뱅뱅」에 대한 구입률과 구입경험률을 볼 때 경쟁 브랜드 대비 시장 경쟁력이 가장 높았다. 구입경험률과 최근 구입률에서 물론 30~40대가 가장 높지만 20대 후반도 많이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젊은 이미지에 대한 노력을 더욱 강화한다. 패션 시장은 변화의 다양성만큼 수많은 브랜드가 태어나고 사라진다. 분명한 것은 소비자들에게 대표성, 친숙성으로 인식되는 소수의 브랜드만이 장기적인 스테디셀링 브랜드로 정착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40년을 한국의 토종 캐주얼 브랜드로 정착한 「뱅뱅」의 도전과 열정이 식지 않는 한 소비자들은 꾸준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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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열 | 뱅뱅어패럴 회장
profile
1935년 평양 출생
1961년 평화시장서 제일피복으로 출발
1970년 「뱅뱅」 브랜드 출시
1972년 인디고 청바지, 15만장 출시
1980년대 국내 청바지 시장의 70% 이상 잠식
1982년 뱅뱅사옥 설립(현재의 뱅뱅사거리)
1983년 9억원 투자 「뱅뱅」 TV CF
1985년 1989년 1990년 공업진흥청 품질평가 전체 A 획득
1992년 중국 생산기지 세팅
2010년 현재 「뱅뱅」 214개 유통망 운영
*아웃라이어(OUTLIERS)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인 맬컴 글래드웰이 지칭. ‘아웃라이어’의 원래 뜻은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또는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를 의미하지만 사람을 표현하는 ‘아웃라이어’는 보통 사람들의 범주를 뛰어넘은 특별한 사람, 환경과 노력으로 습득한 21세기 성공과 부의 새로운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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