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뉴웨이브 ‘패션은 죽었다?!’

이영지 객원기자 (yj270513@gmail.com)|16.04.27 ∙ 조회수 1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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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리업계에서는 지난해 말에 이어 올해도 연초부터 아티스틱 디렉터들이 잇달아 그만두는 등 새로운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그 회오리는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한편 파워풀하면서도 결정적이다. 또한 지난 몇 년간 패션계에 연이어 불어닥친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 헤어짐(?)과도 거리가 멀다.

2000년대 초반 「발망」을 당대 가장 핫한 브랜드로 만든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데카르닌에게 번개처럼 몰아닥쳐 그를 재기불능으로 만든 번아웃(burn out)이나 우울증, 위험 수위의 약물 복용, 음주로 소비되고 한번의 실수로 버려진 「디오르」의 존 갈리아노 같은 케이스도 아니다. 케링그룹에 속했던 자신의 브랜드 「알렉산더매퀸」이 영광의 최고조를 달릴 때 스스로 목숨을 끊
는 어두운 단면을 보인 그런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새로운 파도는 아티스틱 디렉터들이 자기 고유의 템포를 중요하게 여기며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어찌 보면 일종의 조용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 말 그동안 회사와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 오던 라프 시몬스와 알버 엘바즈가 갑작스럽게 사퇴하면서 여성복 쪽에서 먼저 이러한 흐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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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시몬스 등 아트 디렉터들, “이대로는 싫다!”?
이제 「디오르」의 라프 시몬스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마치 페인트 롤러로 찍어 내는 듯한 컬렉션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됐다. 알버 엘바즈는 인더스트리의 고질적인 관행과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입바른 면으로 패션계의 반항아로 각인됐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의 행보는 지난 2007년 「디오르옴므」에 있던 에디 슬리먼이 회사와 자신이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가 더 이상 같은 방향이 아니라며 브랜드를 떠난 그때 그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셈이다. 그 논쟁의 당사자 에디 슬리먼은 현재 자신이 아티스틱 디렉터로 있는 「생로랑」에서 다시 한 번 그때와 같이 사고(?)를 칠(사임할)것이라는 소문이다.

패션 정보사 ‘리에델쿠르트’의 예언이 적중한 것일까?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이들은 ‘패션은 죽었다(이제 패션으로는 이익을 볼 수 없다)’며 현재의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구닥다리가 돼 버렸다고 그 의미를 전한 바 있다.

넘쳐나는 컬렉션 등 현재 시스템은 구닥다리!
넘쳐나는 컬렉션, 넘쳐나는 모든 것, 그 광란이 패션의 자연스러움을 삼켜 버려 이제는 사람들이 크리에이티브와 니즈 사이를 오가며 또 다른 밸류를 찾아 나서게 했다.

지난 몇 년간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예측이 맞는것 같다. 패션과 텍스타일의 인기가 수그러들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수치가 명확하게 말해 준다. 소비자들이 점점 리빙 아트(데코, 레저, 음식 등)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들이 패션에 소비하던 예산을 옮겨 사용 한다는 사실이다.

라프 시몬스는 「디오르」를 떠나면서 컬렉션을 진행할 때 시간과 공을 들이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제대로 된 디자인의(그 크리에이티브한 요소가 대중을 자극하고 공감할 만한) 제품을 상상했을 때 적어도 2년이라는 개발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리 크리에이티브하고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루쯤 현대 미술관에서 영감을 얻을 여유도 없이 통제 불가의 컬렉션 수를 맞춰야 한다면, 과연 그 크리에이티브가 유지될 수 있을까. 단지 시간만을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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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루티」 「브리오니」도 아티스틱 디렉터 사임
칼 라거펠트는 현재 시스템을 정당화하기 위해 “요즘 패션은 뛰어다녀야 한다”고 전했다. 83세의 노장으로 아직도 현장 깊숙이까지 들어가 일하는 것(최근에 선보인 오트쿠튀르 컬렉션은 그가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한다)을 즐기는 그이지만 지금 패션계의 흐름은 히스테리(hysteria)가 젠(zen)에 한 방 먹은 듯하다.

한편 남성복에도 이어 여성복과 같은 지진(?)이 휩쓸고 지나갔다. 한 브랜드의 디자인팀 수장의 사임에도 떠들썩하지 않은, 어찌 보면 고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놀랍기까지 하다. 이렇게 조용히, 심지어는 잡음 없이 친절하게 떠난 이들은 다름 아닌 브렌던 뮬랜과 알레산드로 사르토리다. 전자는 케링그룹에 속한 이탈리아 브랜드 「브리오니」의, 후자는 LVMH그룹의 「벨루티」 아티스틱 디렉터로 이들의 사임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발표됐다.

알레산드로 사르토리는 슈즈 메이킹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벨루티」를 성장궤도에 올리는 태스크를 짊어진, 이 브랜드의 제너럴 디렉터 앙트완 아르노(아르노 LVMH그룹 회장의 장남)가 영입한 인물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테일러로 명성을 날린 그는 이 럭셔리 슈즈 브랜드를 위해 2011년부터 최초로 남성복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진행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스테파노 필라티도 「에르메네질도제냐」 굿바이
하지만 전통적인 성향의 「벨루티」 고객들을 그다지 감동시키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는 마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은 듯(「에르메네질도제냐」로 옮긴다는 루머가 현실이 됐다) 그렇게 순순히 럭셔리 메종을 떠났다. 그 몇 시간 전에는 영국 출신의 브렌던 뮬랜이 지난 3년간 몸담아 온 「브리오니」를 떠난다는 소식이 이탈리아 럭셔리 메종을 통해 전해졌다. 「브리오니」가 밀라노의 캣워크로 돌아온 지 불과 1년 만에 전해진 소식이다.

그동안 남성복 럭셔리 업계에 돌던 또 다른 루머 하나도 현실이 됐다. 「에르메네질도제냐」의 아티스틱 디렉터 스테파노 필라티다. 그가 레디투웨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던 「이브생로랑」을 떠나 지난 2013년 영입된 후 지금까지 이끌어 온 브랜드를 떠난다는 소식이다.

그의 화려한 이력(「체루티」 「아르마니」 「미우미우」에서 일했고 톰 포드에 이어 2004년부터 2012년 3월까지 「이브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은 향후 그의 행보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오게 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가 알버 엘바즈의 뒤를 이어 「랑방」을 이을 후보자 1순위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들, 더 이상 대중 인기에 감동 없다?
지금 우리는 리에델쿠르트가 예견한 새로운 사이클을 목격하고 있거나 아니면 또 하나의 의자 빼앗기 게임의 시작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업계의 상황을 보면 오히려 전자에 더 가까운 듯 싶다. 명성과 재능을 가진 이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대중에게 떠받들어지는 인기나 럭셔리 기업의 한 자리(?)에도 감동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면 태스크를 기꺼이 짊어지지만 더 이상 상황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이를 과감히 던져 버리고 나오기도 한다. 박탈감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지난 20여년간 메이저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으로 디자이너들의 지위는 그때그때 투입되는 전략에 또는 변수에 맞춰 전환돼야 했다.

이들은 디자이너도 됐다가 아티스틱 디렉터로 때로는 인스타그램의 ‘라이크(like) 제너레이터’도 됐다. 이제 그들은 깨달았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됐을 때, 자신의 가치 그리고 자신이 고용된 회사에 매달려 충성을 다하는 것이 아닌 자유만이 그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크리에이티브의 개런티라는 것을…. 패션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은 굿 사인일지도 모른다!(?)



**패션비즈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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