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지기 돔 & 톰의 「톰포드」
grooveash|15.04.13 ∙ 조회수 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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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마켓이 주춤한 가운데 「톰포드」의 급성장이 돋보인다. 「톰포드」는 브랜드 론칭 10년 만에 연매출 10억달러(약 1조800억원)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2005년 안경과 향수 라이선스로 시작해 지금은 남성복과 여성복 레디투웨어와 액세서리, 남녀 코스메틱 라인에 주얼리까지 갖춘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글로벌 5대 럭셔리 브랜드를 목표로 고속질주 중이다.
플래그십 스토어 23개를 포함해 세계 20여 개국의 100여개 스토어에 입점해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뉴욕을 시작으로 파리, 밀라노, 비버리힐스, 라스베이거스, 뮌헨, 베이징, 뉴델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 이어 2013년 가을 런던에도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톰포드」가 집중하고 있는 한·중·일 마켓을 보면, 중국에는 플래그십 스토어 외에도 베이징에 2개, 상하이·선양·청두에 각각 1개 스토어에 입점해 있다. 서울에는 갤러리아, 신세계, 현대 백화점과 분더샵 등 총 6개 스토어에 입점해 있고, 일본 역시 이세탄 백화점을 비롯한 도쿄 4개, 오사카 2개 백화점에 입점해 있다.
10년 만에 연매출 10억달러 달성 ‘히트’ 기록
「톰포드」의 비즈니스 성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톰포드」 아이웨어는 1년에 100만개 이상 팔려 나간다. 1년에 이 안경 라이선스가 벌어들이는 매출만 약 3억5000만달러(약 380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전체 매출의 3분의1 이상을 도맡아 줄 뿐만 아니라 패션에서 생소해하던 고객들에게도 「톰포드」라는 이름을 알리는 효자 노릇까지 톡톡히 했다.
안경 브랜드로 알고 「톰포드」의 세계에 첫발을 들인 고객들에게 코스메틱, 액세서리, 레디투웨어 등 「톰포드」 브랜드를 더욱 노출하는 것. 코스메틱과 더불어 ‘럭셔리 브랜드 「톰포드」’를 비교적 쉽게 처음으로 경험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에스티로더(Estee Lauder)와의 라이선스로 시작된 향수 비즈니스는 2006년 11월 ‘블랙 오키드(Black Orchid)’를 시작으로 2007년 첫 번째 남자 향수 ‘「톰포드」 포 맨(Tom Ford for Men)’, 2008년 두 번째 여성 향수 ‘화이트 패출리(Tom Ford White Patchouli)’, 2009년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Tom Ford Grey Vetiver)’를 연이어 출시했다.
글로벌 5대 럭셔리 브랜드 진입 향해 급성장
이후 2010년 립스틱 컬렉션을 출시하며 향수를 넘어 색조 코스메틱으로 라인을 확장했으며 이듬해에는 메이크업 라인을, 2013년에는 남성 그루밍 컬렉션을, 2014년 말에는 50개 미니어처 립스틱 컬렉션 ‘립스 & 보이스(The Lips & Boys)’를 소개하며 화제가 됐다.
에스티로더 코스메틱 그룹 대표 존 뎀시(John Demsey)는 「톰포드」 코스메틱의 매출이 매년 약 35%씩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2013년에는 2억7500만달러(약 2970억원), 2014년에는 3억7000만달러(약 4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달성했다. 「톰포드」는 「맥(MAC)」 등 경쟁사에 발맞추어 30억달러(약 3조24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코스메틱 제품들은 「톰포드」 웹사이트와 세계 유명 스토어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남성복 레디투웨어와 액세서리는 2007년 첫 「톰포드」 플래그십 스토어를 뉴욕에 열며 시작됐다. 한벌에 5000달러를 호가하는 「톰포드」 남성 슈트는 「에르메네질도제냐」 「브리오니」 「키톤」 「브루넬로쿠치넬리」 등과 경쟁하며 고급 슈트의 반열에 올랐다. 톰 포드 자신이 평소 추구해 온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해 넓은 라펠에 허리가 잘록한 실루엣, 부드럽게 떨어지는 어깨 라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이웨어, 코스메틱 등 든든한 매출 성장 견인
다소 보수적인 다른 고급 슈트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이 섹시한 남성 슈트는 2012년 ‘007 스카이폴(Skyfall)’에서 제임스 본드 역의 대니얼 크레이그가 입으며 하이 퀄리티와 스타일을 확실히 인정받았다. 007의 오랜 역사 동안 제임스 본드들이 입어 온 고급 슈트의 대명사 「브리오니」를 밀어낸 것이다.
2013년에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Jay-Z가 함께 부른 ‘Suit & Tie’의 가사에서 「톰포드」 슈트가 소개되며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지게 되고 셀러브리티를 비롯, 뉴욕 부자들이 즐겨 찾는 성공한 남자의 슈트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에 드디어 애태우며 기다려 온 여성복 레디투웨어가 론칭됐다. 뉴욕 스토어에서 극소수의 프레스, 바이어, 고객들만 초대된 ‘프라이빗 프레젠테이션’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글래머(Glamour)’를 상징하는 「톰포드」 드레스는 톰 포드가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셀러브리티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주요 충성 고객 리스트에는 줄리안 무어, 비욘세, 귀네스 팰트로, 샤를리즈 테론, 제니퍼 로페즈 등이 있다.
성공남 섹시한 슈트 & 셀러브리티 글래머 드레스
「톰포드」가 글로벌 5대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로 보인다. 「에르메스」 「루이뷔통」 「구치」 그리고 나머지 한 자리에 어떤 브랜드를 끼워 넣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이 회사가 10년간 달려온 길은 분명히 다른 럭셔리 브랜드가 성장해 온 전통적인 전략과는 달랐다. 빠르고, 현실적이고, 스마트했다. 그게 통했다.
이 같은 급성장 뒤에는 도메니코 데 솔레(Domenico De Sole)와 톰 포드의 환상 조합이 있다. 바로 패션계 최고의 콤비로 통하는 ‘Dom & Tom’ 듀오다. 둘의 인연은 20년 전 「구치」에서 시작됐다. 톰 포드가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날리던 1994년부터 2004년까지, 「구치」의 CEO가 도메니코 데 솔레였다.
「구치」 디자인팀의 작업방식에 답답해하며 그만두려던 톰 포드를 붙잡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 것도 도메니코 데 솔레다. 결국 이 둘의 리더십은 1990년대 초 계속되는 적자와 살인 사건, 탈세 등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가죽제품회사 「구치」를 10년 만에 연매출 30억달러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로 부활시켰다.
Dom & Tom, 「구치」 부활시킨 패션계 환상 콤비
둘은 패션 하우스들을 사들이기 시작하며 구치그룹을 결성했다. 2000년, 2001년에 걸쳐 「이브생로랑」 「발렌시아가」 「보테가베네타」 「부쉐론」 「세르지오로시」 등을 인수하고, 「알렉산더매퀸」과 「스텔라매카트니」를 론칭하는 데 총 93억달러(약 10조440억원)를 썼다.
그리고 이 구치그룹을 PPR(현재 케링)이 인수하면서 LVMH와 함께 오늘날 럭셔리 마켓의 공룡그룹 경쟁구도가 형성됐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은 2004년 3월, 모기업 PPR의 리더십과 갈등을 빚으며 둘이 함께 「구치」를 떠나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다이내믹 듀오의 찰떡궁합은 이듬해 톰포드인터내셔널을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자기 자신과도 같던 「구치」를 떠난 후 톰 포드는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도메니코 데 솔레는 자신처럼 후유증으로 힘들어할 것이 뻔하다며 톰 포드를 위로하러 갔고, 함께 골프를 치며 새로운 비즈니스 이야기가 싹텄다.
다이내믹 듀오, 톰포드인터내셔널로 컴백하다
일단 결정에 이르자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됐다. 둘은 머지않은 2005년 4월 향수와 아이웨어 라이선스 계약을 발표하며 패션계로 컴백했다. 이에 업계는 흥분했다. 패션계로 돌아오지 않겠다던 톰 포드가 돌아온 것에 놀랐고, 어패럴이 아닌 향수와 아이웨어로 시작하는 것에 더 놀랐다. 향수는 에스티로더와, 아이웨어는 마르콜린과 함께했다.
에스티로더는 「도나카란」 「타미힐피거」 등 디자이너 향수와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어 향후 메이크업과 스킨케어까지 포함한 풀 코스메틱 라인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마르콜린은 룩소티카, 사피로(Safiro)와 함께 3대 럭셔리 아이웨어 컴퍼니로 불리며 「토즈」 「에르메네질도제냐」 「로베르토카발리」 「스와로브스키」 「디젤」 등의 아이웨어 라이선스를 소유한 파트너다.
사실 돔 & 톰이 쉬는 동안에도 솔깃한 비즈니스를 계속 제안하며 패션계로 돌아오게 한 것도 이 파트너들이다. 패션계 최고의 콤비가 패션을 떠나는 것을 순순히 내버려 두지 않은 것. 듀오 입장에서도 이들은 믿을 수 있는 기업들이었고, 「톰포드」 비즈니스의 핵심인 광고 캠페인도 이 회사들의 예산으로 집행하기 때문에 초기 투입자금 부담도 적었다.
「제냐」 「에스티로더」 등 파트너사들 다시 조인
협력사와의 파트너십은 2007년 맨즈웨어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도 다시 한 번 빛났다. 구치그룹 시절 「구치」와 「이브생로랑리브고시」의 제품을 제작하던 「제냐」가 「톰포드」 맨즈웨어를 생산하기로 한 것. 이렇게 협력사와의 파트너십은 돔 & 톰이 비교적 쉽게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디딤돌 역할을 했다.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럭셔리 브랜드 「톰포드」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톰포드인터내셔널은 외부 투자 없이 톰 포드와 도메니코 데 솔레 자신들의 자금만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재정적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접근과 비즈니스 감각이 매우 중요했다. 유명 래퍼이자 사업가인 Jay-Z가 비즈니스를 학교가 아닌 거리에서 배웠다고 한 것처럼 톰 포드의 비즈니스 감각 역시 현장에서 비롯했다.
파슨스 졸업 후 커리어 초기에 톰 포드는 뉴욕 「페리엘리스」에서 수시로 해고되는 디자이너들을 보며 직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잘 팔리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훈련을 거쳤다. 이는 훗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부도 위기의 「구치」를 살려 내는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비즈니스 감각 탁월한 톰 포드, 현장 진두지휘
15년간 「발렌시아가」 하우스를 부활시킨 뒤 자리를 옮겨 「루이뷔통」의 아트 디렉터로 활약 중인 니콜라 제스키에르 역시 톰 포드의 이런 비즈니스 감각을 높이 샀다. “패션 비즈니스는 톰 포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톰 포드는 패션 하우스 디렉터의 역할을 정의했다.” 크리에이티브와 비즈니스를 모두 만족시킨 톰 포드 이후, 패션 디자이너가 비즈니스와 생존을 말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됐다.
패션 하우스 아트 디렉터의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브랜딩, 광고 캠페인, 마케팅, 리테일 전략까지 진두지휘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톰 포드의 이런 활약은 도메니코 데 솔레의 든든한 서포트가 있기에 가능했다. 도메니코 데 솔레는 크리에이티브가 기업 비즈니스 전반에 흐르게 하는 인물로 통한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브랜드를 이끌고자 하는 방향대로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모든 디자이너가 원하는 이상적인 경영자다.
패션 하우스는 크리에이티브를 중심으로 세워져야 하며 디자이너들이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경영자로서 그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뛰어나고 디자이너들과 아주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한다.
크리에이티브 살려 주는 경영인 도메니코 데 솔레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발렌시아가」가 구치그룹에 인수된 후 도메니코 데 솔레와 함께 일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도메니코 데 솔레는 크리에이티브를 북돋아 주며 ‘그렇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해 주는 경영자다. 돔 & 톰과의 미팅은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렌시아가」를 이끌 수 있도록 기꺼이 묻고 수용했다.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라고 그들이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또한 “(구치그룹이 소유한) 하우스들은 각자의 비전에 충실할 수 있었다. 이는 프라다그룹이 「헬무트랭」이나 「질샌더」를 소유했을 때 그들을 통제하려던 방식과는 달랐다”라고도 했다. 2001년 당시 자신이나 스텔라 매카트니가 구치그룹으로 모이는 데 동의한 것도 바로 이 둘 때문이었다며 돔 & 톰을 디자이너와 경영자의 이상적인 파트너십 모델로 꼽았다.
도메니코 데 솔레는 1944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로마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의 로스쿨을 졸업했다. 1983년 「구치」를 창업한 구치오 구치의 아들 알도 구치가 미국에서 탈세 문제로 구속됐을 때 그를 구출한 것이 당시 40대의 변호사 도메니코 데 솔레다. 이것을 인연으로 「구치」 가문의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구치」 미국 법인의 경영을 맡게 됐다. 1995년 「구치」를 경영하던 마우리치오 구치가 죽은 뒤로는 「구치」 하우스 전체의 경영을 이어받았다.
로스쿨 출신 도메니코, 「구치」 변호사에서 CEO로
톰 포드는 도메니코 데 솔레를 ‘삶을 걸고 신뢰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둘은 서로 신뢰하고 직업 윤리를 지켜 주며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서로 잘 알기에 자신들이 오래 지속되는 ‘넘버 원 커플’이라며 자부심을 가진다. 전설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에게 경영인 피에르 베르제가 있었던 것처럼.
발렌티노 가라바니에게는 지안카를로 지아메티가 있었고, 오늘날의 「프라다」를 만든 것은 뮤치아 프라다와 남편이자 파트너인 파트리지오 베르텔리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함께해 온 도메니코 데 솔레와 톰 포드는 「톰포드」를 탄생, 성장시켰다. 20년 넘도록 이어진 둘의 꾸준한 파트너십처럼, 디자이너 톰 포드는 지난 20년간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해 왔다. 톰 포드의 「구치」 10년 그리고 톰포드인터내셔널의 10년은 ‘럭셔리’와 ‘글래머’로 요약된다.
20년은 긴 시간이다. 변화가 빠른 패션에서는 더욱 그렇다. 엄청나게 많은 트렌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수많은 스타일이 돌고 돌았다. 업계에서는 톰 포드의 「구치」, 마크 제이콥스의 「루이뷔통」이 끝났다고 한다. 로고의 다양화로 승부하던 전략은 수명을 다했고 사람들이 럭셔리를 소비하는 수준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루이뷔통」은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를, 「디오르」는 라프 시몬스의 건축적 디자인과 예술성을 택했다.
20년 한결같은 ‘럭셔리 & 글래머’ 라이프 스타일
톰 포드는 한결같이 자신의 방식을 고수해 왔다. 계속해서 ‘럭셔리 & 글래머’ 라이프스타일을 팔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통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해도 ‘값비싼 섹스 어필’은 소비자의 지갑을 열었다. 액세서리와 코스메틱은 다양한 소비자층에 럭셔리를 경험하게 했고, 「톰포드」 드레스는 셀러브리티를 비롯한 상류층 고객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이다. 남자들에게는 톰 포드 자신이 입고 싶은 섹시한 슈트를 디자인해서 팔았다.
「톰포드」가 급성장한 지난 2년은 럭셔리 마켓이 고전한 시기였기에 이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지칠 줄 모르던 「루이뷔통」 「구치」 등 전통 럭셔리 컴퍼니의 성장세가 주춤했고 새로운 콘텐츠와 성장동력을 찾기에 몰두했다. 반면 「톰포드」는 오히려 이 시기에 더욱 급격하게 성장했다. 여전히 판타지를 제공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해 생존하는 것이 돔 & 톰의 장기임을 다시 보여 줬다.
이들의 행보는 패션의 다음 세대들에게도 희망이다. 그룹사에 인수되는 것만이 패션의 슈퍼스타가 되고 럭셔리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 거대 그룹에 속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럭셔리 비즈니스를 한 걸음씩, 그러나 분명하게 잘 꾸려 온 것은 분명한 울림을 준다.
톰 포드, 이 시대 이브 생 로랑이자 디오르(?)
현재 브랜드로서 「톰포드」의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높다. 우선 디자이너로서 보여 주고자 하는 비전과 메시지가 확실하다. 4대 패션위크인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모두에서 커리어 경험이 있으며, 글로벌 마켓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감각도 뛰어나다. 디자이너와 비즈니스맨의 팀웍도 확실하고, 이를 입증하는 패션계의 신화적 인물들로서의 스토리가 있다.
레디투웨어에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위한 비전을 마음껏 펼치도록 아이웨어와 코스메틱에서 꾸준히 매출을 올려 준다. 한편 제한된 리테일을 비롯해 럭셔리의 핵심인 엄격한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고수해 왔다. 「톰포드」는 이 시대의 「이브생로랑」이고 「디오르」다. 패션은 언제나 슈퍼스타를 필요로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우스를 세워 럭셔리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어 가고 있는 당대의 디자이너 중 이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디자이너는 없다. 더욱이 채 10년도 되지 않은 하우스라니.
톰 포드 본인 역시 누구나 이렇게 비즈니스를 시작하자마자 승승장구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돔 & 톰이 「구치」에서 글로벌 마켓을 대상으로 활약한 경험이 엄청난 자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패션에서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 성공시키는 것보다 어렵다는 브랜드 부활. 「구치」를 부활시킨 패션 레전드 콤비의 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패션비즈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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