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파리 출장기(1) 파리에서의 주말 아침
2년 반 만에 파리에 왔다. 패션위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많은 것이 변했으리라 생각했지만 파리는 그저 파리였다.
개성 넘치는 화려한 도시 곳곳은 관광객으로 넘쳐났고, 센강은 여느 때처럼 낭만적이고, 높은 하늘은 파리지엔처럼 시크하다. 하지만 주말 아침 풍경은 사뭇 다르다. 7시 반이나 됐는데도 파리는 여전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질 않는다.
뜨거운 밤을 보낸 후 하얀 베개 위에 머리채를 흐트러트린 채 달콤한 피로감에 젖어 있는 연인들처럼 파리의 아침은 곤히 잠들어 있다.
잠든 파리의 아침을 만끽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가벼운 운동화를 챙겨 신고 호텔 밖으로 나선다. 아름다운 튈르리 공원을 지나 센강의 조깅 코스를 걷다 보면 어느덧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이글이글 떠오르는 태양을 온몸으로 삼키고 유리 피라미드가 있는 루브르 박물관을 한 바퀴 돌면 어느덧 파리의 아침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맛있는 빵집에 들러 갓 구운 바게트를 품에 안는다. 크게 한 입 베어 물면 진한 초콜릿이 흘러내리는 쇼콜라 크루아상 또한 빼놓지 않는다.
이것은 하루의 시작을 행복하게 해주는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와 같고, 바쁜 일정을 거뜬하게 소화할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원이다.
크런치! yummy!!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훌쩍 넘겼음에도 세상은 아직도 유혹하는 것 투성이다. 도시의 공원 또한 나를 유혹하는 것 중 하나다. 공원을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보인다.
묘하게도 공원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닮았다. 일례로 런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와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의 나무들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키를 자랑한다.
아기자기하게 가꾼 멋은 없지만 성실하고 우직해 보인다. 충실하고 오래된 벗처럼 정감이 느껴지는 공원이다.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새벽 마음이 통하는 벗과 함께 말없이 걷고 싶은 길이며, 키다리 나무 밑에 보물처럼 놓여 있는 묵직한 벤치에 앉아 상대의 눈동자를 한없이 바라보고픈 그런 곳이다.
반면 파리의 튈르리 공원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20대 여성을 닮았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나무와 화려한 꽃이 조화를 이루지만, 계속되는 손길과 관심이 없다면 언제든 토라지고 앙탈을 부릴 준비가 돼 있는 공간이다.
센 강변을 따라 있는 옆길은 오래된 연인과 닮았다. 우리네 인생과 닮은 울퉁불퉁한 그 길을 혼자가 아닌 둘이 걷고 싶다. 두 손 꼬-옥 잡고 묵묵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다 서로의 눈 속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안도의 웃음을 짓고 싶은 그런 길이다.
나는 지금 잠에 빠진 파리의 새벽을 오롯이 혼자 즐기고 있다. 센강도, 하늘도, 구름도, 시크한 파리의 맛난 태양도 가슴 속 한가득 담뿍 담아내는 중이다.
■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스토리(RHK)
- 패션MD: Intro(RHK)
- 패션MD2: 브랜드편(21세기북스)
- 패션MD3: 쇼룸편(21세기북스)
경력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11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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