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br> 어느 인문학자의 패션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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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어느 인문학자의 패션 오디세이

Tuesday, Aug. 2, 2022 | 외고,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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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문학박사다. 그것도 제일 어렵고 심오한 작가 중 하나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다. 고 3때 도스토옙스키에게 콩깍지가 쓰인 이래, 지금까지도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온 새벽을 그와 함께 보내다. 연애시절 연인을 위해 한 땀 한 땀 스웨터를 뜨던 정성을 그대로 나의 도스토옙스키에게 쏟는다. 유일하게 허락된 사적인 시간, 그의 분신인 작품을 한 글자 한 글자 귀하게 번역한다.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그의 4대 장편이 한 번역가의 손에서 탄생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그만한 부와 명성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1825일 즉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새벽 시간을 고스란히 바친 결과 <죄와 벌>과 <백치>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6년 차에 접어든 지금에야 세 번째 작품 <악령>을 번역하고 있으니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나의 영혼의 단짝, 나의 사랑을 위한 오마주를 위해 글로 짠 아름다운 스웨터를 열심히 뜨고 있는 중이다.

‘잠깐 도와 달라’는 지인의 부탁으로 우연찮게 정글 같은 패션계에 입성해 우여곡절 넘치는 14년을 보냈다. 이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을까?

이럴 때 보면 인생이 던지는 농담이 참 짓궂다 싶다. 상아탑의 가장 꼭대기에서 평생 인문학 속에 파묻혀 살 줄 알았던 내가 패션 회사 CEO이자 수퍼 엠디로 살아가게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가끔 힘이 들고 지칠 때면 혼자만의 방에 갇혀 책과 씨름하는 삶이 그립지만, 지금의 삶 덕분에 상아탑 안에서 절대 얻지 못할 값진 경험을 얻었다.

덕분에 삶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문학을 이해하는 깊이가 깊어지고 넓어졌다고 여긴다.(실제로는 우긴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성공한 사업가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지극히 인문학적인 사람이었기에 만들어낸 기적이 아닐까 싶다.  

영화 ‘shape of water’를 보면 “LIFE IS BUT THE SHIPWRECK OF OUR PLANS”라는 대사가 나온다. “인생은 우리 계획의 난파선일 뿐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삶은 ‘고통의 바다’ 즉 고해인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지금쯤 나는 조용한 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며 책을 쓰고 있어야 한다. 일 마감, 월 마감, 시즌마다 돌아오는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엠디 기간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참으로 평화롭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삶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불현듯 무시무시한 패션계에 던져진 인문학자는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낸 인간군상보다 더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 이상한 삶(패션계의 인문학자)을 예고하는 전조 장치와 상징이 인생 곳곳에 심어져 있었던 듯싶다. 섬뜩하리만큼 잘 짜여진 한 편의 각본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인생은 ‘우리 계획의 난파선’일 뿐이지, 그 어떤 소설보다도 탄탄하게 짜여진 각본인 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이 말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글의 제목에 ‘오디세이’라는 거창한 영웅의 이름을 들먹인 이유는 오디세이가 귀향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겪는 고통과 모험, 그리고 아름다운 만남을 나 역시 경험했기 때문이다. 데바스테, 헤르노, 알렉산더 왕, 스테판 쉬나이더, 하쉐, sjyp 같은 브랜드도 만났고, 또 같은 상황이라도 국가와 민족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과 피드백이 돌아오는 것을 경험했다.

이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국가별 민족적 특성을 알지 못하면 치명적 위험을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적인 위대함은 없지만 생에 대한 열정과, 생이 던져주는 과제에 임하는 성실함만은 그 어떤 영웅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철없고 숫자감각과 방향감각이 전혀 없는 한 인문학자의 눈물과 콧물, 때로는 약간의 감동, 그리고 웃음을 동반한 좌충우돌 코믹한 여정이 펼쳐질 것이다.


■ profile
- 스페이스 눌 대표
- 문학박사
- 도스토예프스키 번역가
- 패션 엠디 시리즈 저자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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