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2조5000억 유니콘 주역
무신사 유니버스 신화 쓴 조만호, 그는?
"20년 전 은평구 갈현동 반지하 빌라 좌식 책상에서 시작된 여정을 성수동 지하 두 평 사무실에서 끝마칩니다. 진심으로 제 일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께 기억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달 대표이사직 사임한 조만호 대표가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2001년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올해 1조7000억원의 거래액을 목표로 잡고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을 이뤄낸 조만호 무신사 대표.
국내 패션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일으켰던 그가 지난달 갑작스러운 사임을 발표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래도록 직원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조만호 대표의 말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하고자 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치열하게 20년을 달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사업은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만드는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2010년부터 다양한 비즈니스를 얹어서 무신사의 아카이브를 확장하는 성숙기를 거쳤다.
이어 올해 29CM와 스타일쉐어 인수를 통해 국내 패션시장을 완벽하게 마크업하는 대형 플랫폼으로 완성된 형태를 그려냈다. 조용하지만 노련하게, 뚝심 있게 이커머스 공룡을 만들어낸 조만호 대표. 그는 어떤 경영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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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 대표는 한국 패션업계의 ‘제프 베조스’로 창조의 가치를 누구보다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오롯이 ‘무신사’를 위해 살았고, 7300일(365×20년)을 사업확장에 매달렸다. 그는 마케팅, 엠디, 생산 등 전 영역을 최종적으로 세세하게 컨트롤하는 역할을 사임하기 직전까지 진행했다. ‘무신사 = 조만호’라는 견고한 아성은 직원들도 인정할 만큼 꼼꼼하고 세세한 성향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2001년 조만호 대표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처음으로 시작한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커뮤니티에서부터 나타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패션’에 대한 자신만의 이커머스 꿈은 이미 현재 진행 중이었고, 대학은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포장지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시기에 비슷하게 온라인 사업을 시작해 커버낫을 운영하고 있는 윤형석 배럴즈 대표는 20여 년간 조만호 대표와 가장 강력한 플랫폼 - 브랜드 파트너를 유지하고 있다.
윤 대표는 과거 인터뷰에서 “조만호 대표와는 2001년 초반 프리챌 커뮤니티에서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곳에서 만났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브랜드에 관심이 더 많았고, 저는 온라인 사업에 투자를 했다. 지금은 서로 자리가 바뀌어 있지만, 조 대표의 열정은 그때부터도 유명했다”라고 말했다.
무신사 기초 토대, 고등학교 3학년 때 세워
조 대표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무신사의 이커머스 안정화에 애를 썼다. 이때부터 함께 한 초창기 맴버 중 한 명은 “무신사는 초창기에는 직원들끼리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양한 제안과 프로모션을 해볼 수 있는 라이트한 플랫폼이었다.
초반에는 커뮤니티 느낌이 강했지만, 무신사스타일(스냅)을 대중화하면서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광대한 업종을 다루기 시작했다”라고 전한다. 무신사 회원은 점점 불어나 2010년 30만명 정도가 됐고, 2012년 처음으로 전략적 투자를 진행해 남성 캐주얼 ‘페이퍼리즘’을 론칭했다.
페이퍼리즘 외 커버낫처럼 무신사와 함께 커나갈 수 있는 브랜드를 키우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그는 브랜드와 이커머스 강화를 위해 2015년 사업이 팽창할 때까지 새로운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인프라 확충에 심혈을 기울였다.
2017년 말부터 무신사에 합류한 카이스트 출신 한문일 본부장은 조만호 대표가 지니고 있던 ‘무신사 왕국’을 더 광폭적으로 확장해 나가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강정구 프로덕트 부문장과 함께 무신사 신임 대표로 취임했다. 조 대표는 평소에도 ‘무신사’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 확장을 꿈꾸고 있었고 이는 무신사스튜디오, 무신사테라스, 무신사스탠다드 등 다양한 포지션으로 실현됐다.
브랜드 간 컬래버 연결고리, 브리지 역할도
조만호 대표는 다양한 사업 중에서도 입점 브랜드의 장기를 누구보다 잘 발견한 이다. 디스이즈네버댓, 오아이오아이, 로맨틱크라운 등 수많은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커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신사와 함께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이 있었다.
컬래버레이션은 향후 딱딱한 유통환경에 지쳐 있던 제도권 기업에도 도입해 온 · 오프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조 대표는 이러한 브랜드 간의 파트너십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어떤 브랜드가 어떤 콘텐츠와 만나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한 ‘감’을 잘 알았다.
이는 아마 오랜 시간 다져 온 국내 패션 사이클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신사는 스트리트 패션과 스냅샷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붐업에 성공한 플랫폼인 만큼 실생활과 직접 연관된 일반인 패션 트렌드를 잘 읽는다.
적중률이 높았던 트렌드 이해도는 조 대표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에게도 연결됐고, 이는 무신사가 유튜브 콘텐츠와 스냅 콘텐츠, 한정판 플랫폼 솔드아웃 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이러한 끝없는 창조의 가치, 가치가 가치를 낳는 비즈니스 정신은 무신사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싶다.
7년 만에 100억 → 2020년 1조2000억 찍어
조 대표는 국내 디자이너와 중소 브랜드의 온라인 판로 개척과 성장 가능성 높은 브랜드 발굴에 앞장서며 패션 생태계 활성화에 힘써 왔다. 특히 ‘브랜드 동반성장’을 경영 철학으로 마케팅, 생산 자금 대여, 조기 정산 등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입점 브랜드 성장 지원이 무신사 매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2013년 100억원에 불과했던 무신사 거래액은 7년 만에 120배로 늘어나 지난해 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조 대표는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에 남긴 족적을 뒤로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마니아들만 입던 스트리트 캐주얼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카테고리로 키우는 데 크게 일조했다.
무신사를 통해 국내 수많은 고객에게 새로운 ‘판매 활로’를 찾아줬고, 딱딱했던 유통업계에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물꼬를 트게 해줬다. 특히 중소 브랜드가 백화점이나 아울렛이 아닌 새로운 유통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여러 이종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그는 무신사와 함께 커온 브랜드와 고객, 그 아카이브에 깊은 애정을 표해 왔다. 이 때문에 최근 잡음이 됐던 브랜드 수수료 논란, 최근 이슈가 됐던 쿠폰 발행 문제 등에 대해 더욱 무거운 책임을 느꼈고 이는 조 대표가 수개월 전 회사에 사임을 표명한 결정적 이유가 됐다.
브랜드 투자자로 변신(?), 의장직 수행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지만 앞으로 무신사의 해외 진출과 다양한 브랜드 투자에 조력하며 제2막을 열어갈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조 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현재 투자 큰손으로 떠오른 대명화학 권오일 회장처럼 브랜드 투자 건에 있어서 뒤에서 조력하는 역을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조 대표는 사임 후 이사회 의장으로서 역을 수행하면서 회사의 중장기 전략 수립과 패션 브랜드 지원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조 대표는 사임 직전 29CM와 스타일쉐어를 3000억원에 인수했다.
이 중에는 현금은 물론 주식 스왑도 일부 포함돼 있으며 무신사는 그동안 수혈하기 쉽지 않았던 여성 고객을 이 두 플랫폼과 함께 공격적으로 끌어올린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
그는 “대기업들의 공세 속에서 무신사, 29CM, 스쉐라는 회사가 시너지를 잘 내는 일은 결국 진정성 있는 중소 브랜드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최우선으로 도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늘 플랫폼의 시작과 끝에 ‘브랜드’를 두고 있다. 브랜드에 대한 애착도 그 어떤 플랫폼 대표보다 강하다. 무신사와 함께 크고 새로운 신(Scene)을 창출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
그래서인지 그는 사임 직전, 예전보다 많이 위축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고객 쿠폰 등 잇따른 이슈로 무신사 전체가 뭇매를 맞자 직원들의 사기가 꺾였다는 것에 큰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 ‘무아일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던 그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링 밖의 조력자, 줄기세포 역할 끝낸다
전화위복! 그는 마인드 회복과 더불어 이제 플랫폼 속의 브랜드 투자가 아닌, 플랫폼 밖에서 브랜드 지원을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사업을 조력한다. 20년을 무신사의 줄기세포로 일해 온 조만호 대표가 이제 어느 정도 배양을 끝내고 다른 스텝으로 건너갈 시간을 맞이했다.
무신사는 조 대표의 정신을 이어 받아 더 큰 틀에서 고객을 만날 예정이다. 조만호 대표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모 온라인 브랜드 대표는 “조만호 대표는 참 순수한 사람이다. 브랜드를 정말 좋아하고 브랜드와 함께 전략적인 구상을 해 나가는 것을 즐겼다.
냉정해 보이지만, 좋아하는 브랜드 앞에서는 한없이 여리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 이전, 옷을 매우 좋아한 한 학생은 이렇게 ‘레전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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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 7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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