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블레임(Blame) or 클레임(Claim)
비난(blame)과 외모(look)를 합성한 신조어 ‘블레임룩’ 현상이 패션업체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블레임룩’은 범죄자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들이 입거나 사용한 옷과 액세서리 등을 모방하는 심리적 현상으로 패션업계는 좌불안석이다.
조두순이 입은 패딩을 전개하는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는 뉴스 매체에 브랜드 로고의 모자이크 처리를 요청했다. 로고가 큼직하게 쓰인 자주색 맨투맨 상의를 입었던 조주빈은 젊은 층의 관심과 인지도 덕분에 반짝 매출도 일으켰지만 해당 브랜드는 유감을 표명하는 자료를 돌려야만 했다.
블레임룩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9년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이 검거될 때 입은 이탈리아 명품 무지개 티셔츠가 해당 브랜드에 의문의 1승을 안긴 이후 크고 작은 블레임룩이 화제를 모았다.
2007년에는 학력 위조와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 신정아가 뉴욕 JFK 공항에 등장했을 때 입었던 명품 브랜드 티셔츠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방이 당시 많은 젊은 여성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 2016년 최순실이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수많은 취재진을 뚫고 검찰 청사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악마도 입는다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신발 한 짝이 벗어진 사진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블레임룩은 해당 인물에 대한 관심도가 큰 만큼이나 광고 효과가 명백하며, 사회적 영향력에 좌지우지되는 소비 본능 덕분에 모방 소비도 일으킨다. 브랜드 인지도 상승과 소비 감성의 교묘한 자극 덕분에 단기적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이미지에 의식적 또는 잠재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본의 아니게 블레임룩으로 주목받은 업체마다 모자이크 처리를 득달같이 요청한 사실만 보더라도, 해당 브랜드가 얼마나 염려하고 조심스러운지 금세 알 수 있다.
블레임룩의 당사자가 돼 버린 브랜드는 소비자와 미디어와의 신속한 소통으로 이미지에 대한 악영향을 차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각 브랜드의 마케팅 부서에서 주요 범죄자들을 미리 찾아다니며 제발 입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패션업체 입장에서는 블레임룩이라는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긴 셈이다. 일종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는 사전에 대비해야 하는 위험이며, 단순히 사업적 위험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다. 시각을 조금 바꿔본다면, 블레임룩은 PPL 등 ‘간접 광고’와 대척점에 서 있다.
간접 광고는 규제 대상이다. 간접 광고를 바라보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사법 당국이나 미디어의 시각을 블레임룩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즉 간접 광고를 막기 위해 ‘표시 및 광고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에서 브랜드 로고의 모자이크 의무 등 각종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것처럼 블레임룩에 대한 법률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입법적 의무 부과는 당장 힘들더라도 자정적인 보도 관행으로 패션업계의 시름을 덜어줘야 한다. 결국 미디어를 향한 블레임 아니면 클레임(claim, 소송)으로 가야 하니까.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 1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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