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신세 NB, 구제 해법은?
    빅3 신규 점포, 수입 · 명품 MD 우선

    홍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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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0.07조회수 3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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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숍 대세, 백화점 ○○으로 리뉴얼, 신규 ○○ 브랜드 론칭! 요즘 툭하면 나오는 이 ○○은 바로 ‘수입’이다. 해외 브랜드가 아니면 유통도 기업도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하는 국내 패션 시장….” 2014년 10월 본지 <패션비즈> 기사의 일부다.

    만 7년이 지난 2021년 10월 현재 패션 시장에서 국내 내셔널브랜드(National Brand: 이하 NB)의 입지는 어떨까? 국내 레거시 기업의 한 브랜드 관계자는 “그때와 여러 면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특히 주요 유통망에서는 이미 ‘찬밥’ 신세가 된 지 오래”라고 답했다.

    무엇이 국내 패션 NB를 외면케 했을까? 온라인 대세나 카피캣 등에 갇힌 크리에이티브하지 못한 아이템들, 소비 주체의 마인드 변화,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이는 MZ세대들의 약진 등등…. 뭐 하나 딱히 주범(?)은 없는 듯하다.

    어쩌다, 패션 NB는 주요 MD에서 밀렸나

    “주요 유통망에서 패션 NB 조닝을 자꾸 축소하고 있습니다. 명품과 해외 브랜드에 주는 입지와 수수료 혜택 등에 비하면 NB는 태생부터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특히 캐주얼 조닝 등을 축소하는 분위기이고 그마저도 해외 브랜드나 온라인에서 활약하는 브랜드를 묶어서 편집숍으로 꾸미고 있어 우리가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 백화점에서 아동이나 마담 조닝 등이 대폭 축소되던 모습과 비슷한 양상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국내 패션 NB 관계자의 볼멘소리다.

    그러나 한 주요 유통 바이어의 말은 좀 다르다. “과거처럼 조닝을 구분 짓고 메인 브랜드와 함께 비슷한 브랜드를 MD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온라인의 발달과 함께 정보의 홍수인 시대에 소비자는 더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공간, 브랜드 구성을 원하고 있습니다.

    국내 패션 NB들도 변해야 합니다. 천편일률적인 매장과 브랜드 구성으로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기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아마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신하지 않는다면 결국 소비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이건 유통과 브랜드 누구의 잘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소비자가 왕!’ 또는 ‘매출이 인격!’이라는 우스갯소리를 감안하면 어쩌면 유통의 말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을 듯하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상황에서 유통은 콘텐츠 구성 면에서든 매출 면에서든 명품이나 해외 수입 브랜드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유통 · 브랜드 잘잘못 따질 수는 없다

    최근 오픈하는 백화점과 쇼핑몰, 아울렛 등의 주요 유통망들은 복합쇼핑몰을 지향하면서 자연스럽게 F&B와 체험형 매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유통도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시대의 흐름과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내 패션 NB가 트렌드를 주도하는 핵심이 아니라 명품 브랜드의 서버 혹은 해외 브랜드를 따라가는 수준이라 유통의 선택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에 오픈한 현대백화점의 신규 점포 ‘더현대서울’은 ‘루이비통’ ‘샤넬’ ‘구찌’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남녀 매장을 모두 합친 최대 규모의 자체 수입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폼’을 선보이고 있다. 지하 2층 크리에이티브 라운드에 ‘라이풀’과 ‘쿠어’ 등 스트리트 캐주얼과 여성복 일부 브랜드를 담았지만 NB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세계는 8월 충청권 공략을 위해 대전시 유성구에 6000억원을 들여 백화점과 호텔, 과학시설 등을 아우른 새로운 형태의 복합 라이프스타일 공간인 ‘아트앤사이언스’를 오픈했다. 충청권 1위 점포를 목표로 하면서 이곳 역시 ‘에르메스’나 ‘샤넬’ 등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경기도 의왕시에 ‘세상에 없던 미래형 아울렛’을 테마로 그랜드 오픈한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는 자연친화적인 설계와 다양한 체험 콘텐츠로 기존에 없던 아울렛의 혁신을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오픈했다. 특히 체험 요소를 강화한 트렌디한 브랜드가 입점한 ‘글라스빌’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또 기존 교외형 아울렛보다 식품 매장 비중도 10%가량 늘렸다.




    기울어진 운동장… NB 할당제라도!

    이들처럼 최근 오픈한 주요 유통망들의 MD 1순위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체험형과 F&B, 패션은 명품이다. 국내 패션 NB는 소위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신규 오픈이나 리뉴얼하는 점포도 대부분 ‘미래 지향형’을 내세워 국내 NB들에는 많은 기회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브랜드의 관계자는 “최근 유통과 브랜드가 상생과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MD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는 있다”면서 “하지만 대형 유통들의 자율에 맡겨 NB의 입점 기회 확대를 기다리기엔 매우 요원한 일이다.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청년비례나 여성할당제처럼 NB를 일정 비율 구성하는 룰이라도 만들어졌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사회 전반과 산업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패션 업계, 특히 국내 NB들은 소위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고통에 가까운 자기 혁신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 기회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유통 또한 미래 지향형으로 변신한다면 우월적 지위를 내려놓고 브랜드와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수입과 명품 브랜드에만 기댈 수 없기 때문이다. K팝처럼 글로벌로 나아가려면 유통의 역할은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때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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