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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쓸패잡_패션과 공간 >

박진희 l SsD 대표
나만의 시그니처 룩, 시그니처 공간

Sunday, Apr. 18, 2021 | 외고,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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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조적인 작업에는 작가의 독창성이 스며들어 있기 마련이다. 작품 한구석에 휘갈긴 듯 쓰여 있는 작가의 사인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작품을 보면 누구의 작업인지 알 수 있듯이 이름과 동시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때로는 이름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패션산업은 시그니처의 개념을 가장 먼저 도입한 분야다. 디자이너가 자신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옷에 품질 보증의 의미로 본인 이름의 이니셜을 자수로 수놓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로고로 발전되고 그 로고들이 모여서 패턴이 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시그니처가 된다. 거기에 시그니처 룩이라는 스타일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건축의 시그니처는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벽, 카지요 세지마의 흰 라운드 기둥과 유리 파사드, 프랭크 게리의 티타늄 곡면 지붕 등 각 건축가들이 여러 작업을 통해 고안해 놓은 ‘건축언어’들로 나타난다.

이런 건축언어는 건물의 용도와 공간의 성격에 따라 같은 재료라도 새로운 느낌과 기능을 갖게 된다. 작가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고유의 문체를 유지하는 것이나 가수가 고유의 창법을 갖고 다양한 풍의 노래를 소화하는 것처럼 도서관 · 오피스빌딩 · 미술관 · 주택 등의 건축물들도 건축가마다 고유의 접근방식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시그니처 공간이란 무엇일까? 기하학적인 선과 황금비율을 잘 쓰는 아이엠 페이가 설계한 루브르 박물관의 글라스 피라미드는 파리의 도시 풍경에서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 고전적인 궁전의 외관만으로는 가질 수 없었던 루브르만의 독창성을 만들었다.

그 시그니처 룩은 아마 전통적인 건물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기존의 건물과 비슷하게 지었더라면 이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그니처 스페이스는 내부 공간뿐 아니라 외부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인데, 이것은 건물이나 예술작품이 주변 환경과 만들어지는 상호작용에 의해서 이뤄진다. 인도 태생의 영국 조각가 아니시 카 푸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카고의 클라우드 게이트는 그 작품 자체의 균형미나 놀랄 만큼 매끄러운 마감면이 아름답다.

그러나 이 작품의 생명은 시카고의 스카이 라인과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거울 같은 표면에 반사돼 만들어지는 풍경이다. 일상적인 풍경이 오목렌즈처럼 반사돼 독창적이고 새로운 경험으로 재탄생된다. 만약 이 작품이 허허벌판에 설치됐다면 그 임팩트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시그니처 공간은 시카고의 스카이 라인과 작품 사이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지극히 평범한 곳에서 역사적인 특별한 이벤트에 기대지 않고서도 장소성, 즉 장소의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런 시그니처 공간은 거기에 직접 가지 않으면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으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서 때로는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는 경우도 있다.



■ profile
•SsD 대표
• 콜럼비아 대학교 겸임교수
• 뉴욕시립대학 초빙석좌교수
• 시카고 공과대학 모겐스턴췌어 교수
• 서울시 공공건축가
• 뉴욕건축가협회상 심사의원장
• 하버드 건축 대학원 석사
• 서울대 미술대학 산업디자인 학사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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