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ㅣ에스에스디 대표

    hyo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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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조회수 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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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 공간에 패션을 입히는 일





    건축가이자 콜럼비아대 교수인 박진희 씨가 미국 건축가 어워드(The American Architecture Awards 2020)의 개인주택(Private homes) 부문에서 수상했다.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에 위치한 이 작품은 한 시인과 각기 독특한 유형의 가족을 소유한 세 딸 식구 등 네 가구가 한집안에 공존할 수 있도록 ‘한 지붕 네 가구’를 위해 지어졌다. 새롭고 오래된 것이 공존하고, 아늑하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마을에 자리한 것도 특징적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각자의 사생활을 지키면서도 아름다운 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건축물의 3개면은 남향으로 햇빛과 전망이 균형을 이루도록 맞춤 설계했으며, 4가구를 위해 전략적인 4개 단위로 나눠져 있다. 내부 계단과 외부 계단이 겹치며 각 가구에도 여러 계단이 있어 건물의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이다.

    건축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박 교수는 패션과의 접점을 갖는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가 선정하는 ‘25인의 가장 스타일리시한 보스턴인(25 Most Stylist Bostonian)’에 선정된 적이 있을 만큼 독보적 이력을 갖고 있다. 이런 히스토리는 그가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건축과 도시 디자인뿐 아니라 상품 디자인과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패션업계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인사이트를 제시한다.


    - 이번에 받은 상과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이번 상은 미국에 사무실이 있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 건축가를 대상으로 폭넓게 심사하기 때문에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고 들었다. 이번이 3번째였는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타기도 한 유명 건축가 노먼 포스터도 이번에 함께 상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유로 프라이즈’가 지난해 뉴욕에서 열렸는데 감사하게도 호스트 중 한 분이 게스트로 초청해서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눈여겨보고 마침 내가 뉴욕에서 활동하던 차여서 좋은 기회가 온 것 같다. 작가인 어머니와 장성해서 출가한 세 딸 등 식구를 위한 대가족 보금자리다. 어머니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커리어를 가졌음에도 세 딸 모두 가정주부라는 점과 그럼에도 마치 모계사회를 보듯 딸들이 가정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점이 재밌었다.

    세 딸과 사위들이 합심해 어머니 생의 마지막을 같은 집에서 함께 모시는 결정을 한 것이 보기 좋았다. 현대 사회에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길어 자식들이 홀아버지를 모시는 경우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어머니와 세 딸 식구가 가진 각기 다른 ‘패밀리 다이내믹(family dynamic)’에 맞는 공간 구조를 꾸미는 데 주력했다. 마치 커스텀 핏처럼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게 유닛을 꾸며 공간에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애착이 생겨야만 그 공간을 가꾸게 된다. 이게 패션과의 공통점이다. 아무리 예쁜 옷이어도 입었을 때 불편하면 잘 입지 않는 것처럼 내가 편안하고 자주 찾는 공간은 점점 더 꾸미게 된다.




    - 작은 주거 공간을 통해 도시 전체가 변할 수 있다고 피력했는데,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아파트든 건물이든 한 번 짓고 나면 가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보통은 집을 지으면 주기적으로 페인트칠도 새로 하고, 거미줄도 치우고, 철마다 꽃도 심는다. 아무리 부자여도 스스로 집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조건 때가 안 타고 견고하고 튼튼한 자재를 사용하길 바란다. 이렇게 실용적으로 지을 수 있는 공법은 한계가 있다 보니 다소 도시가 획일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또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는 해외에서 기원한 것이지만 정책과도 관계가 깊다. 주택 공급은 어느 나라에서나 숙제다.

    우리나라는 나라에서 집을 지어서 싸게 분양하는 유럽식 공공주택 모델을 채택했고 미국과 일본 등은 모기지를 활성화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편안함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캐릭터가 결합해 아파트에서 스피커로 방송이 나오는 것과 같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 편안함이 우선시되기도 한다.

    또 집이 내가 머무르는 거주의 공간이기보다는 부를 쌓는 자산의 개념으로 인식이 되다 보니 실제 나의 만족도보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이 더 중요해지는 거다. 다만 배산임수 등의 풍수지리는 일면 일리가 있다. 배산임수가 명당이라거나 현관 앞에 거울을 두지 않는 등 이것도 엄청난 원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심리적인 안정감’에서 오는 거다.


    - 가장 패셔너블한 건축인으로 손꼽히는데, 패션관은?

    개인적으로 알렉산더 매퀸을 좋아한다. 건축가의 눈으로 볼 때 의류도 어쨌든 우리 몸을 감싸는 것이니 만큼 구조적이야 한다. 디자이너 매퀸의 실험적인 폼(form)은 입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 패션의 본질을 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입은 옷은 꼼데가르송 옷인데 이 브랜드도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호불호가 강한 편이었는데 편견을 깨게 된 사례가 있다. 한참 뉴욕에서 이세이미야케의 플리츠가 인기가 있을 때 그것만큼 어글리한 옷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플리스플리츠를 입으면 조금은 구조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구매해 피팅해 봤는데 왜소한 내 몸에 그렇게 볼품없을 수가 없더라. 입었을 때 주름이 펴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축 처진 게 옷걸이에 있는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몇 년 뒤 어느 행사장에서 자하 하디드(DDP를 설계한 세계적인 중동 여성 건축가)를 봤는데 이세이미야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이 그녀를 특별히 날씬해 보이게 해 주지도, 다리가 길어 보이게 해 주지도 않았지만 그가 가진 볼륨감이 주름 사이사이에 있는 패턴까지 완벽하게 보이게 하면서 임팩트가 강했다. 이때 다시금 깨달았다. 패션은 역시 나만이 가지고 있는 밸류에이블(valueable)을 살리면 되는 것이라고!


    - 건축의 대량생산과 효율성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좀 더 설명해 달라.


    최근에 ‘마이크로 어버니즘’이란 주제로 말레이시아의 1700유닛 하우징, 거제도의 마이크로 빌리지, 독일 카셀 하우스 등 다양한 스케일의 하우스를 실험하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최소한의 물질적 요소와 최대한의 환경적 요소를 섞어 공간과 건축, 도시를 크게 개혁할 수 있다고 본다.

    송파 마이크로하우징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띠를 꼬아 건물 외부를 둘렀다. 주거 공간을 보호하는 방범창인 동시에 햇빛의 상태에 따라 건물 이미지가 달라 보이게 한다. 건물 지하 카페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면서 카페 좌석이자 공연 객석이다. 외부로 트인 1층 바닥의 삼각형 유리창을 통해 행인이 지하의 카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런 건축과 환경에 관한 디테일이 건물 곳곳에 숨어 있다.

    한국의 아파트 재건축은 심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경제적인 방향에서 지어졌다. 심미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몰개성으로 지어진 게 특성이고 그 안에서 미를 찾아내는 것이 디자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산세를 깎아내 우후죽순 들어선 아파트는 우리가 좋든 싫든 이제 서울의 상징처럼 됐다.

    튼튼하고 잘 지은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짓기보다는 특성을 살려서 새로운 주거건축물로 만드는 것이 보다 미래지향적인 도시계획이 아닐까?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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