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日 유니크로 성공비결은?

moon081|00.07.01 ∙ 조회수 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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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대형 패션기업들 사이에 일본 유통점 「유니크로(UNIQLO)」 벤치마킹 열풍이 일고 있다. 제조소매업으로 1조엔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유니크로」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사(대표 柳井正)가 전개하는 캐주얼웨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입을 수 있는 캐주얼 의류를 싸게 판다’ 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 99년 한해동안 3백38개 매장에서 1천1백10억엔의 매출을 올려 큰 화제가 됐다. 현 매장 4백30개, 2천년말까지 5백개 매장을 목표로 한다. ‘세계 제일의 기업’을 목표로 하는 유니크로의 회사 주식값도 20배나 뛰어 시가총액이 1조엔을 넘어섰다. 20개점에서 51억엔의 매출에 불과했던 지난 ‘90년 8월과 비교하면 실로 경이적인 성과다. 이는 적어도 3번 이상 변신을 거듭한 결과다. ‘전혀 다른 회사로 다시 만들지 않으면 장래는 없다’고 주창한 柳井사장의 액션이 실현된 것이다. 2만원 짜리 셔츠와 3만원 짜리 청바지를 팔아 원화로 1조원 이상을 벌어들인 유니크로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이유는 바로 ‘포커스전략’에 있다. 팔린만한 상품을 집중적으로 밀어주는 전략이다. ‘진즈 캠페인’이나 ‘플리스 캠페인’이 그것이다. ‘99년 봄 일본 진즈 마켓 표준가격 7천9백억엔의 청바지를 2천9백엔에 출시해 센세이션을 일으키더니 가을에는 플리스소재의 재킷을 1만9천엔에 선보여 8백만장이나 판매했다.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다. 올초에는 유니크로가 수트를 1만엔에 내놓을 것이라는 루머가 확산되면서 일본의 유통업계를 초긴장하게 했다. ‘99년 10월부터 유니크로 입점 고객이 급증하면서 품절 및 사이즈 부족현상이 속출하며 일본 열도를 뒤흔들고 있다. 유니크로의 가격 정책을 둘러싼 끊임없는 억측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매장에 비치된 까만색 바구니를 들고 1층부터 3층까지 오르내리는 알뜰 소비자들에게 ‘유니크로’는 거의 생활필수품처럼 대해지고 있다. 한때 ‘들고다니기 부끄러워 매장 주변에 버려져 있었다’는 유니크로 쇼핑백은 이제 동경 시내에서만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10대는 물론 50대 주부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유니크로를 욕하면 천만원을! 신사복 숙녀복 브랜드는 물론 ‘패미크로’ ‘스포크로’등 다양한 영업을 펼쳐온 패스트리테일링사가 ‘온리 유니크로 캐주얼’로 방향 선회후 가장 주력한 것은 마케팅. 최적의 퀄리티에 최저가로 판매하려한 유니크로에게 중요한 것은 기업 이미지 업그레이드였다. 회사 상장 시점에도 ‘상장의 메리트를 구체적으로 고객에게 환원하지 않으면 상장이 고객에게 무슨 상관있으랴’고 규정하고 3가지 약속을 내건다. ‘항상 청결한 매장 만들기, 광고 상품의 품절 방지, 구입후 3개월간의 이유 불문 반품 교환 접수’가 그것이다. 직원들은 ‘몇번이나 입은 것까지 무조건 반품을 받는다면 큰 일이다’며 대부분 반대했으나 柳井사장은 ‘반품 교환은 갭 등 미국 유럽의 우수한 소매업체들이 오랜 옛날부터 하고있으며 실력이 어느정도인가를 알기 위해서도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밀어부쳤다. 특히 한 아주머니가 유니크로 계산대 앞에서 옷을 벗고 속옷차림으로 반품을 요구하는 TV광고는 크게 화제가 됐다. 실제 반품률은 1% 전후에 불과했지만 귀중한 고객 니즈 데이터를 얻게 된다. 무엇보다 유니크로 성장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된 것은 ‘95년의 마케팅이었다. 고객의 진정한 불만을 알아낼 의도로 패스트리테일링사는 전국 일간지에 ‘유니크로를 욕하면 100만엔’이라는 헤드카피의 광고를 게재한다. 현상금이 걸렸기 때문에 약 1만통의 응모가 있었다. ‘1900엔짜리 트레이너복, 한번 세탁했더니 실이 풀렸다. 두번째 세탁 후에는 상의 겨드랑이에 구멍이 났다. 이제 사러 간다면 흥!’ ‘티셔츠가 한번의 세탁만으로 목부분이 늘어나버렸다’ 등등. 읽을수록 기분이 착잡한 고객들의 불만이 다양했고 직원들 모두는 즉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유니크로는 ‘이것이 우리들의 현재 도달점’이라고 냉철히 자가비판 후 싼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기 위한 상품 기획 및 생산에 대한 모색이 계속된다. ‘가격은 싸지만 디자인, 품질에는 만족 못함’이 고객들의 대부분 불만 사항이었고 무조건 반품 교환을 받는다고 해도 개선되지않을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디자인 정보 수집의 기능을 강화키위해 뉴욕에 디자인 전문 회사인 임프레스뉴욕Inc.를 100% 단독 투자로 설립했다. 또 안정된 상품공급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중국 산둥성에 니치멘 및 5개 중국회사와 합자로 山東確利綿針織 유한공사(28.75% 출자)를 설립한다. ‘95년 3월에 매장 1백50개점을, ‘96년 3월에는 매장이 2백개점으로 확대됐고 드디어 ‘97년 11월에는 직영점이 3백9개점에 이르게 된다. 유니크로의 가장 절정기는 ‘98년에 하라주꾸 직영점을 오픈하면서부터. 수도권 처음의 도심형 점포인 하라주꾸점은 3층 규모의 대형매장에 쾌적한 환경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99년 2월에는 동경 증권거래소 시장 제일부 상표로 지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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