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주얼리 대명사 「까르띠에」!
올해로 1백58년 전통을 자랑하는 「까르띠에(Cartier)」는 전세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시계와 하이 주얼리 전문 브랜드의 선두주자다. 3대에 걸쳐 가문의 전통을 이어오는 장인 정신이 있었기에 현재의 「까르띠에」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명품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성을 자랑하는 브랜드.
아무리 수 많은 하이 주얼리 브랜드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오랜 전통과 세계적으로 2백 개가 넘는 부틱에 독자적인 유통망을 지닌 프랑스 까르띠에인터내셔널(Cartier Int.) (대표 알랭 도미니끄 뻬랭)의 「까르띠에」는 시계와 하이 주얼리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보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루이-프랑소와 까르띠에(Louis- Francois Cartier 1819-1904)가 처음 ‘L’과 ‘C’로 된 그의 이니셜로 하트와 마름모꼴의 마크를 등록하면서 까르띠에 하우스의 스토리가 시작된 후 3대를 거치면서 ‘영국 황실의 보석상’으로 임명될 정도로 「까르띠에」 주얼리의 명성은 대단하다.
현재 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 전략은 ‘전통을 고수하는 한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개혁을 이루는 것’. 「까르띠에」는 근본적인 디자인을 따르면서 현대적인 새로운 요소를 적절히 가미해 완벽에 가까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오랜 전통과 제품의 품질, 정교한 디자인을 생각하면 왜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얼리 부각 재도약의 해
국내 시장에서도 「까르띠에」는 하이 주얼리 브랜드로서 소비자들에게 가장 먼저 그 진가를 인정 받은 브랜드. 백화점 명품관에서도 잡화 럭셔리 브랜드를 제외하면 시계&주얼리 브랜드로서는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국내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한 「까르띠에」는 빠른 시일에 마켓에 안착해 2002년까지는 매해 계속되는 신장세를 유지해왔으며 지난해 불황 속에서도 큰 흔들림 없이 보합세를 유지해왔다.
갤러리아 명품관에서의 매출은 지난 2002년까지 매년 10~15%씩 신장세를 보였다. 이 당시 월 평균매출은 6억원 대로 「샤넬」 「루이비통」등 잡화 브랜드를 제외한 주얼리 부분에서는 톱자리를 지켰으며 경기 탓으로 신장세는 주춤하지만 현재까지도 순위에는 변함이 없을 정도로 두터운 마니아 고객을 확보해 선두주자로서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
올해 까르띠에코리아는 국내 시장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창 노력중이다. 「까르띠에」는 국내 마켓에서는 예물 시계로 인기를 누려왔던 탓에 그 동안 매출의 절반 가까이 되는 부분을 시계가 차지할 정도로 ‘명품 시계=까르띠에’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처음 보석으로 시작했던 만큼 올해는 ‘하이주얼리’ 부문에서 1인자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기 위해 재도약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까르티에 하우스’의 탄생
우선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이번 S/S 시즌 매장 리뉴얼에 돌입하며 타 매장도 점차적으로 매장을 리뉴얼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29평 규모의 매장을 40평 정도로 확장하면서 좀 더 많은 라인의 주얼리를 구성한다. 보석상으로 시작해 시계 가방 지갑 등 모든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초기 주얼리 브랜드로서의 성격을 조금은 상실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 올해부터 「까르띠에」는 새로운 주얼리 라인을 도입하고 비중을 대폭 강화해 하이 주얼리 업계에서 정상을 향해 재도약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때문에 이 회사에서는 이미 2년 전부터 잡화 비중을 전체의 15%선으로 낮추는 작업을 추진해왔으며 올해부터 주얼리 라인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까르띠에 하우스 스토리는 1847년 루이-프랑소와 까르띠에가 그의 스승 아돌프 피카르(Adolphe Picard)의 파리 몽토르겨이(Montorgueil)가에 있는 보석 아뜰리에를 이어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1853년 개인 주문 작업을 시작했으며 나폴레옹 3세 때 연회와 무도회가 끊이지 않던 화려했던 프랑스 왕정의 영향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까르띠에는 가문의 전통을 잇기를 열망해 아들 루이 프랑소아 알프레드(Louis- Francois Alfred Cartier)를 자신의 사업에 참여시킨다. 그는 알프레드에게 기술을 가르친 후 몇 년 후에 회사경영도 인계한다. 1899년 까르띠에는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의 상징인 뤼드라빼(Rue de la Paix) 13번지로 자리를 옮기면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알프레드는 그의 세 아들에게 까르띠에 하우스의 해외 경영을 맡기면서 국제적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조제프(Joseph)는 파리를 자끄-떼오뒬(Jacques-Theodule)은 런던, 삐에르-까미으(Pierre-Camille)는 뉴욕에 각각 터를 마련한다.
영국 ‘황실의 보석상’ 임명
이렇게 3형제가 세계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서 까르띠에 보석 사업은 날로 번창한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된 웨일즈의 왕자로부터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Jewler to Kong, King Of Jewlers)’이라 불리워지고 1902년 자신의 대관식을 위해 27개 ‘띠아라’ 제작을 맡기는 등 까르띠에 가문의 보석은 디자인과 품질 모두 왕실에서도 인정받았다. 2년 후 에드워드 7세는 까르띠에를 최초로 ‘영국 황실의 보석상’으로 임명한다. 뿐만 아니라 까르띠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그리스 벨기에 루마니아 이집트 모나코 왕국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이와 비슷한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렇게 까르띠에 가문의 보석상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까르띠에 가문의 사람들이 타고난 디자인 감각과 사업 능력을 타고난 것도 작용했지만 최상의 품질인 보석을 만들기 위한 이들의 노력도 끊임없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삐에르는 최상품의 에나멜과 경도가 높은 석재를 찾기 위해 러시아로 떠나고 자끄는 최고급 진주를 찾기 위해 페르시아만으로 떠나는 등 훌륭한 보석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세계 어느 지역도 마다하지 않고 여행을 떠났으며 이때 디자인에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다.
파리에서 활동 중인 루이는 고급 보석과 함께 시계 제작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새로운 시계가 탄생됐으며 이 시계들은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까르띠에」는 특허받은 시계가 있을 정도로 디자인과 기술적인 면에서 모두 혁신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과 주위의 시계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탄생된 ‘미스터리 클락(Mystery Clock)’이 바로 그 것이다.
스테디샐러 ‘탱크’ 시계 런칭
그 후 1911년 「까르띠에」 최초의 남성용 시계 ‘산토스(Santos)’ 가 출시됐으며 그 후 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탱크 부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디자인된 ‘탱크(Tank)’ 시계는 지금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까르띠에」의 대표적인 시계가 됐다. 특히 「까르띠에」 시계는 시계 공학에 있어 독창적인 커브 라인이 돋보이며 정교함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산토스’와 ‘탱크’는 사각 프레임에 로마 문자가 사용돼 ‘전통과 현대’의 감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탱크’ 라인은 ’탱크디반’ ‘프랑세즈’ ‘아메리껜느’ ‘탱크 드 까르띠테’ 등 여러 가지 라인으로 구분되는데 어느 시계에서도 볼 수 없는 사파이어 가보숑의 팔각 크라운 장식을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플레티넘과 다이아몬드를 장식해 화려하게 디자인된 제품 등이 있다. 이 시계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이다.
올해 프랑스 까르띠에사에서는 지난 1919년 남성용 ‘산토스’ 시계 런칭을 기념하기 위해 이 제품을 소량 한정 생산해 판매에 들어갔으며 이번 시즌 국내 시장에서도 동시에 선보인다. 1904년 브라질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뒤몽(Alberto Santos-Dumont)’을 위한 선물로 만들어진 이 시계는 클래식함과 세련된 현대적인 요소가 조화된 루이 까르띠에의 천재적인 디자인 재능을 엿볼 수 있는 것이며 ‘산토스’ 시계 런칭으로 「까르띠에」 시계가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계기가 됐기에 올해 이 시계 런칭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 행사를 갖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으로 재 탄생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해 최고의 보석을 만들려는 루이 까르띠에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뛰어난 심미안과 강한 의지를 지닌 ‘쟌느 투생’이 까르띠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까르띠에」 보석은 그 진가를 발휘하며 아르데코 시기 백색의 플래티넘을 최초로 사용하고 락 크리스탈(Rock Crystal) 바케트 컷(Baquette-Cut) 다이아몬드를 디자인에 사용해 절정기를 이룬다. 이 당시 새롭게 선보인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Les Must de Cartier)’는 가격면에서 좀 더 경쟁력있고 동시에 전과 다름없이 세련되고 고급스러움을 갖춘 디자인으로 대대적인 성공을 하게 된다.
1941년 자끄가 사망하고 다음 해 루이 까르띠에가 뉴욕에서 세상을 뜬 후 까르띠에사의 경영권이 전 세계로 나눠졌지만 이 회사가 미래 럭셔리 산업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 로베르 오끄(Robert Hoeq)에 의해 인수된다. 그 후 오끄의 주도아래 숨가쁜 변혁의 시기를 겪는다.
그는 까르띠에의 전통을 존중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을 디자인에 불어넣는 것에 총력을 기울인다.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의 컨셉을 발전시키고 도금 시계와 핸드백 지갑 등 가죽 제품 및 펜 향수 등 새로운 라인이 개발됐다. 보석으로 시작해 시계를 개발해 보석과 시계 부분에서 가치를 인정받던 까르띠에사가 새로운 경영자를 만나면서 새롭게 사업 영역을 확장하긴 했지만 현재는 보석상 본질의 성격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 고수와 개혁의 조화
프랑스 본사에서는 지난 몇 년 간 잡화 비중을 낮추는 작업을 의도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으며 국내 백화점에서도 잡화의 비중은 전체의 15%선으로 낮아졌고 올해부터 주얼리 라인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심지어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핸드백 라인에도 보석 장식을 가미할 정도로 다시 본질의 성격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팔라듐 도금으로된 ‘더블 C’ 로고 스트랩 장식과 지갑과 명함지갑에 스텐인레스 소재로 만든 ‘C’ 로고 코너 마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까르띠에」 핸드백은 최상 등급의 무광택 송아지 가죽을 사용하며 안전을 생각하는 이중 잠금 장치와 「까르띠에」만의 보르도 컬러를 사용해 화려하게 눈에 띄는 디자인은 아니지만 품격있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본사의 ‘하이 주얼리’ 전문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까르띠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새로운 주얼리 라인을 출시했다. 지난해 동양적인 요소를 디자인에 반영해 중국 예술 표현 양식을 모티브로 한 ‘르 베제 뒤 드라공 컬렉션’을 선보였으며 이르데코 주얼리를 재해석한 모노뜨 라인과 행운의 의미를 담은 ‘참(charm)’ 컬렉션도 선보였다. 또 지난해 영원한 스테디셀러 아이템인 ‘탱크’ 라인을 응용한 ‘탱크 디반’ 시계도 출시했다.
‘보석상’ 본질의 성격을 찾아
이번 시즌 새롭게 선보인 참(charm)은 「까르띠에」 1930년대 출시한 이후 계속 사랑받고 있는 무당벌레와 장수를 의미하는 한자를 응용한 디자인과 하트 십자가 등의 캐릭터 등으로 사랑 열정 약속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까르띠에사의 초기 보석상의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주얼리가 계속 출시되고 있다. 「까르띠에」의 새로운 주얼리 라인 ‘레 델리스 드 고아(Les Delicec de Goa)’는 터키석과 핑크 골드 에머티스트 등의 블루 바이올렛 핑크 톤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다이아몬드로 천연석을 장식하는 기교를 부려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 세계 어느 브랜드의 주얼리에서도 만날 수 없는 「까르띠에」만의 독창성을 가장 잘 표현한 주얼리는 ‘므노뜨(Menotte)’. 이 주얼리는 개폐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으로 이 부분에 「까르띠에」 고유 문양을 사용하거나 시계의 가보숑 부분을 응용해 오닉스 오돌라이트 가닉 등 유색 보석을 사용하는 장식을 하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엿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 라인은 브레이슬릿 링 등이 주를 이루고 화이트 골드 핑크 골드 등을 사용해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여 국내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문화 사업 교육 사회적 공헌
세계적인 명품 보석상인 까르띠에사가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면 우리는 이 회사를 망설임 없이 진정한 ‘명품 회사’라고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오베르 오끄가 사망한 후 까르띠에 인터내셔날 회장으로 임명된 알랭 도미니끄 빼랭은 이 회사를 사회적으로도 예술을 후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1984년 ‘까르띠에 현대 미술 재단’을 만들었으며 이로서 현대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알랭 도미니끄 뻬랭을 예술 후원 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임명받았다.
또 뻬랭은 고급 시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제 고급 시계 위원회’를 창설했다. 이 위원회는 1991년 제1회 국제 고급시계 박람회를 개최했으며 해마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이 박람회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중요한 포럼으로 자리잡았다. 또 빼랭은 럭셔리 산업 마케팅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럭셔리 마케팅 전문학교를 창립했다. 이 학교는 지금까지 실력있는 교수진과 학생들의 높은 수준으로 이 분야에서의 권위있는 학교로 인정 받고있다.
까르띠에 현대 미술 재단은 90년대 ‘아트 오브 까르띠에 컬렉션’ 첫 번째 전시회를 파리에서 개최한 이후 도쿄 등 타 지역에도 꾸준히 열어 까르띠에의 활약과 예술에 가까운 디자인 세계를 널리 알리는데도 노력했다. 이는 오베르 오끄가 회사를 인수한 이후 계속해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까르띠에 제품을 경매를 통해 사들이는 등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계속되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시회 뿐 아니라 까르띠에의 예술 창작과 열정을 기념하기 위해 까르띠에 아트 매거진을 출간하기도 했다.
명성과 자부심을 잇는 노력
까르띠에사는 현재 「알프레드던힐」 「끌로에」 「몽블랑」 「바쉐론콘스탄틴」 「IWC」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있는 리치몬드그룹(조안 루퍼트)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다. 현재 이 브랜드들은 국내 시장에 선보여 조금씩 반응을 얻어가고 있는 브랜드로 까르띠에사는 리치몬코리아 그룹과 함께 럭셔리 브랜드를 보급과 미래 주얼리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끌어 가야하는 중대한 임무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까르띠에사는 이제 지금까지 이어온 명성과 브랜드 파워를 지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전 세계에 두텁게 형성돼 있는 마니아 고객들에게 항상 새롭지만 까르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통적인 디자인이 묻어나는 품격있는 디자인의 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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