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창업자

aura00|07.03.28 ∙ 조회수 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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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바르 캄프라드<br>이케아창업자 3-Image



17세의 나이에 「이케아」를 창업해 세계적인 17조원 규모의 가구업체로 일궈낸 잉바르 캄프라드(80) 회장. 그는 포천지가 추산하기로 2백8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세계 4위의 갑부이다. 이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천재투자가 워런 버핏, 멕시코 산업재벌 카를로스 슬림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 2004년에는 그가 세계 1위의 갑부로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스웨덴 잡지 Veckans는 그의 재산이 실제로는 5백30억원으로 빌 게이츠의 5백억달러보다 많아 세계 1위의 갑부라고 보도했었다. 그러나 캄프라드 회장은 80평생을 검약으로 일관했다. 그는 회사에 출근할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고 차를 몰 때는 15년 된 낡은 볼보 자동차를 탄다.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이용하며 슈퍼마켓은 주말에 할인행사가 있을 때 쇼핑한다. 옷도 정장 수트는 잘 입지 않는다.

그가 살고 있는 스위스 로잔 부근의 집은 그리 크지 않고 「이케아」 가구로 가득 차 있다. 그가 30여 년간 스위스에 살고 있는 이유도 복지의 나라 스웨덴의 무거운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캄프라드 회장은 평생을 알뜰함으로 살아왔고 이케아 직원들에게도 이면지 사용 등 비용절감을 역설한다. 회장과 해외 출장을 갔던 한 중역은 캄프라드 회장이 이코노미석에 꽂혀있는 잡지에서 할인쿠폰을 잘라내 나중에 사용하라면서 건네 주었다는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또 그는 연례회의에 참석한 1천여명 직원들에게 일일이 악수하며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캄프라드 회장은 태생적으로 상인의 기질을 타고 났다. 5살 때부터 집 앞마당에서 집안에서 쓸모없는 중고 잡동사니를 게라지 세일(garage sale)로 팔았고 조금 자라서는 스톡홀름에서 성냥을 대규모로 사다가 낱개로 싸게 팔며 ‘박리다매’의 노하우를 깨우쳤다. 17살 때는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자 아버지가 약간의 상금을 주셨다. 그는 이 돈으로 이케아를 창업했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1950년대에 주택 1백만 가구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건설 붐은 가구판매를 늘릴 호기였다. 그는 이를 계기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케아의 독창적인 디자인이 나온 배경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이케아가 낮은 가격의 상품으로 매출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자 경쟁업체들은 하청업체로 하여금 이케아에 가구 공급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이 때문에 이케아는 1955년에 직접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조립식 가구의 아이디어는 한 직원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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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운이 좋게도 한 직원이 책상을 나르던 중 다리를 떼어서 조립식으로 하면 운반도 쉽고 창고보관도 쉽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flat-packaging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고 여기서부터 이케아는 전세계적인 가구업체로 성장할 싹을 키웠다. 캄프라드 회장은 회사 살림에는 더 없이 절약하지만 기부할 때 만큼은 ‘큰 손’으로 알려져 있다. 각종 예술과 교육사업에 지속적으로 기부해 왔으며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의 최대 후원자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3월에는 스위스 예술학교에 50만스위스프랑(3억7천만원)을 기부해 인터뷰를 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무덤에는 단 한 푼도 갖고 가지 않을 것”이라며 전재산의 사회환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는 편이다. 그는 지난해 3월에 가진 스위스에서의 인터뷰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 죽을 시간이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그는 입지전적인 억만장자 사업가이지만 후회스런 과거가 있다. 그는 1994년 직원들에게 ‘내 인생의 최대 실수’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10대 시절 네오나치 그룹에 들어간 일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기도 했다.■

- Fashionbiz 2007.2 Special Report ''라이프스타일 전 도사 ‘IKEA’ 온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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