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리포트] 패션산업, 이제 나이를 포용하는 시대로!

정해순 해외통신원 (haesoon@styleintelligence.com)
26.06.09 ∙ 조회수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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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패션산업에서 토픽으로 떠올랐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나이 든 여성’이다. 럭셔리와 패션 브랜드들이 50대 이상의 여성에게 집중하고 있다. 패션위크의 캣워크에서는 50세 이상, 심지어 70대와 80대 모델들이 20대 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럭셔리 하우스들은 원숙미를 제공하는 70대와 80대의 모델(트위기, 카트린 드뇌브)을 광고에 내세우고 있다. 패션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50세 이상 여성은 패션산업이 주목하는 황금 에이지가 됐다.


그동안 패션산업에서는 젊음에 대한 열망을 제공하는 것이 중점이었으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노령화로 인구 구조가 변한 것은 물론 나이 든 여성들의 부의 규모와 구매력이 커지면서 50대 이상의 실버세대 여성이 슈퍼 소비자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중장년, 심지어 노년 모델들은 다수의 젊은 모델을 제치고 럭셔리와 패션 브랜드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패션산업에서는 다양성(종교, 인종, 성별, 성정체성, 장애, 사이즈 · 체형 등)과 포용성(다양한 사람들을 아우르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이가 추가되면서 10대부터 90대까지 광범위하게 아우르고 있다. 특히 실버 소비자를 포용하는 것은 재정적인 이점을 넘어서 나이 든 여성이 가진 경험과 안목, 성공적인 삶에 대한 열정을 조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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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부터 발렌시아가까지… 나이 든 모델들이 캣워크 점령


올해 국제 패션위크에서 최대 이슈는 바로 나이 든 모델의 증가다. 지난 1월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가 데뷔 컬렉션(오트쿠튀르)에서 50세 모델 스테파니 카발리가 캣워크에 선 것을 시작으로 디자이너들은 40 · 50대 이상의 모델을 캣워크에 세웠다. 지난 2월과 3월에 개최된 2026 · 2027 F/W 컬렉션에서 상위 20개 브랜드는 모두 나이 든 모델을 기용했는데, 샤넬은 모델 총 40명 중 40세 이상이 15명이나 됐고 ‘톰포드’ 9명, ‘지방시’ 8명, ‘발렌시아가’ 5명, ‘루이비통’ 4명 등이었다. 이들의 나이는 대체로 50세 내외이며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 등으로 나이가 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50~70대의 배우(Naomi Watts, Tracee Ellis Ross, Sissy Spacek 등)들이 주요 패션쇼의 프런트로를 점령하는 등 나이 든 여성들이 주목받은 패션위크였다.



물론 중년 이상의 모델과 유명인을 모델로 쓰거나 프런트로에 초대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일찍이 셀린은 당시 80세의 미국 작가 조앤 디디온(Joan Didion)을 내세운 광고로 화제가 됐으며, 미국 디자이너 뱃셰바 헤이는 40대 이상의 모델만을 채용한 패션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이점은 규모와 다양성이다. 현재 모델의 황금기는 50대라고 할 만큼 나이 든 모델에 대한 니즈가 높아졌으며, 50대부터 90대까지 광범위한 나이의 모델이 캣워크 · 광고 · 마케팅 등에 기용되고 있다. 나이 든 모델은 더 이상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브랜드들이 중장년 및 노년 소비자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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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인플루언서들과 브랜드의 협업


이러한 변화에는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50~70대 이상의 실버 인플루언서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에서 진실성에 공감하며 나이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에 도전하는 것을 지지한다. 현재 인기를 누리는 패션 부문에서의 실버 인플루언서는 그레이스 개넘(61세 · 팔로워 200만명), 메이 머스크(76세 · 팔로워 100만명), 배디 윙클(96세 · 팔로워 300만명), 아키 앤드 고이치(70대 · 팔로워 130만명), 콜린 하이드만(77세 · 팔로워 100만명) 등이 대표적이다.


패션산업은 이들과 연계한다. 그레이스 개넘은 멀버리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핸드백(Roxanne)을 론칭하기도 했고, 영국 브랜드 ‘민트벨벳’과 함께 18 피스의 캡슐 컬렉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마야 머스크는 패션 브랜드인 ‘지구(Zeagoo)’와 ‘리얼리와일드(Really Wild)’ 등과 협업했으며, 아키 앤드 고이치는 ‘디올’ ‘로에베’ ‘리바이스’ ‘세잔’ 등과 소셜미디어(인스타그램, 틱톡)에서 컬래버레이션했다. 콜린 하이드만은 뷰티 브랜드 ‘리파이’와 협업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패션과 뷰티, 럭셔리 브랜드들은 실버 인플루언서와 연계해서 전략적 조언, 콘텐츠 창작, 장기적인 브랜드 앰배서더 등으로 활용하면서 실버세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그들의 팬텀에 접근하고 있다.



50대 이상 여성 소비자는 이제 퀸에이저


나이는 이제 브랜드들이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것이 됐다.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50대 이상의 여성 소비자들에게 패션과 럭셔리에서 이처럼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가진 경제력 때문이다. 미국에서 부의 73%는 55세 이상의 인구에 집중돼 있고, 이들의 소비 규모는 미국 전체 소비자 지출의 45%를 넘는다(Federal Reserve). 이러한 실버세대의 경제적 여유는 실제로 의류 및 럭셔리 구매로 전환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패션 소비의 45%는 50세 이상에 의한 것이며, 글로벌 럭셔리 소비의 48%도 50대 이상이 차지하고 있다(McKinsey). 특히 미국의 실버세대 여성은 약 4000만명에 달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액티브한 세대로 알려진다. 실제로 이들의 패션 소비는 MZ세대보다 높고, 전체 어패럴 매출의 37%를 차지할 정도로 패션에 민감하다(Forbes).


50대 이상의 여성 소비자는 ‘퀸에이저(Queenager)’의 성향을 보인다. 영국 저널리스트인 엘레노 밀스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 퀸에이저는 45~74세 여성들의 소비 특징을 의미한다. ‘틴에이저 같은 자유+재정적 안정과 여왕의 권위’를 의미하며, 이들의 막강한 소비력을 강조한다. 이들은 가계 소비의 95%를 좌지우지하며 밀레니얼 세대 여성 대비 지출이 250%나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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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이상 여성, 투명인간에서 조명받는 소비자로


나이 든 여성은 강력한 구매력과 함께 구매 욕구 또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50대 이상 여성의 절반은 20대 때보다 지금의 스타일이 뛰어나며, 66%는 실제 나이보다 젊다고 느낀다(YouGov Profiles). 하지만 이들의 불만은 피부관리 제품이나 화장품 등에 비해서 의류는 자신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50대 여성의 54%는 패션 브랜드가 자신의 나이대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현재 제공되는 실버 대상의 의류 디자인이 보수적이라고(28%) 느낀다(YouGov Profiles). 강력한 소비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든 여성은 아직 브랜드들이 주목하는 고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50대 이상 여성 소비자가 패션과 럭셔리 브랜드들이 주목하는 인구 그룹으로 떠올랐다. 최근 60대 이상의 모델을 스카우트하는 것이 모델 업계의 트랜드일 정도로 중장년 모델의 니즈가 높아지는 것은 브랜드들이 그만큼 실버세대에게 어필하는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MZ세대는 매출 규모와 트렌드 창출 측면에서 중요하고, 나이 든 소비자는 고마진과 반복 구매의 중요한 고객 베이스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충성도가 높아서 브랜드에서 실버 고객을 유치하면 장기적인 고객으로서 지속적인 매출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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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에이징에서 프로 에이징의 시대로


샤넬 쇼에서 마티유 블라지는 나이 든 모델들을 ‘젊어 보이도록 바꿀 필요가 없었으며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원했다. 발렌시아가의 피에르파올로 피촐리(Pierpaolo Piccioli)는 “나이를 보여주는 것은 강인함과 파워의 상징이며, 이를 감추거나 가장하는 것은 현재 패션의 아이디어를 뒤집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 이제 나이는 가리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 됐다.


이는 왕년(1980~1990년대)의 화장품 모델에서 최근 소셜미디어의 스타 인플루언서로 떠오른 61세의 폴리나 포리스코바의 콘텐츠와 맥을 같이한다. 포리스코바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시술하지 않은 모습과 나이가 들어 변한 신체를 가감 없이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40만명인 포리스코바는 최근 보그와 뉴메로 등의 화보와 발망 쇼에 등장했다. 에스티로더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재기용되는 등 프로 에이징(Pro-Aging)의 아이콘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안티에이징’을 통해 젊음을 추구하는 것은 한물간 일이 됐다. 안티에이징에서는 퇴화나 위축 같은 공포를 깔고 있지만 프로에이징은 나이(노화)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자유로움으로 바꾸고 있다. 나이 드는 것은 바로잡아야 하는 부족함이 아니라 축하해야 할 특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이 이슈는 패션산업의 구조적인 변화?


그동안 허용됐던 패션에서의 연령차별은 작별을 고하고 있다. 50대 여성 모델이 광고와 캣워크에 등장하는 등 연륜의 매력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존재감 없었던 중장년과 노년 여성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브랜드들은 실버세대의 강력한 구매력에 집중하는 동시에 젊음을 지향하는 획일적 방식을 거부하는 그들의 변화에 반응한 것이다.


지금처럼 불안한 지정학적 상황과 도전적인 경제적 여건에서 하이엔드 패션과 럭셔리 부문에서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투자는 바로 고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나이 든 여성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강력한 구매력과 삶의 경험을 통해 패션과 럭셔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50대 이상의 고객을 유치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확실한 사업 모델이 됐다. 이처럼 나이 든 여성에게 중점을 두는 것이 도전에 직면한 럭셔리의 매출 증가에 기여할 수 있을지, 향후 패션산업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6년 6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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