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정민 | '두쫀쿠의 나라'에서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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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첫째 주에도 줄을 서서 먹던 ‘두쫀쿠’가 마감 시간까지 남아 있더라는 이야기가 소셜 미디어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한국 시장은 유독 유행의 호흡이 짧다. 탕후루, 요아정, 두바이 초콜릿까지 어떤 유행도 1년 이상 꾸준하게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내수 시장이 작은 탓도 있겠지만, 한국 소비자들 특유의 대세를 따르려는 성향도 한몫한다.
‘지속가능성’ 혹은 ‘ESG’도 한국 시장에서는 두쫀쿠와 크게 다른 취급을 받지 않고 있다. 요즘 어디 가서 지속가능성 이야기를 하면 “유행 끝났는데, 아직도 지속가능성이냐”라거나 “경기도 안 좋은데 속 편한 소리 한다”라는 타박을 듣기 십상이다. 한국 사회, 특히 한국 패션업계가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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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시대에서 ESG 시대로 대전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시대의 지속가능성은 기업 이미지 메이킹의 도구였다. 돈을 벌고 난 뒤 수익의 일부를 떼어 돈을 벌게 해 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거나 비용이 부담되면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예산이었다.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기업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생각하고, 여유 있을 때 하는 유행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이 CSR 시대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ESG 시대의 지속가능성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ESG 리포트를 살펴보면 좋은 일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에서 기업의 생존을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잦아지는 이상기후로 인해서 특정 작물의 작황에 따라 원료 가격을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대비하고, 국제적 분쟁에 대한 대비책으로 에너지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대체 에너지에 선제적 투자를 감행하고, 글로벌 시장 확대를 고민하면서 내부 인원의 문화적 다양성을 안배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가 착한 기업,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일 수는 있지만 결코 그들이 착해서만이 아니다. 기업의 그야말로 지속가능성, 즉 생존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결과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여러 이유로 환경 이슈를 빌미로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유럽의 ESPR(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이나 공급망 실사법은 CSR처럼 ‘권고’가 아니라 ‘규제’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유럽 시장에서 퇴출당하거나 막대한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법률이다. 해외 수출이 많지 않은 한국 기업들에는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한 이런 규제가 한국 시장에서도 곧 시행될 조짐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는 국내 패스트패션 시장의 급성장으로 인한 의류폐기물 급증을 해결하기 위해 섬유 및 의류를 EPR(Extended Product Responsibility) 대상 품목으로 포함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권고가 규제가 되는 순간 기업은 내일도, 그다음 날도 우리 회사가 물건을 팔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즉 비즈니스의 연속성과 위기 관리의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는 것이다. CSR이 ‘무엇을 팔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대의 기업 활동이라면, ESG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시대의 기업 활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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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있는 브랜드들의 지속가능한 도전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가능성은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파타고니아와 같은 매우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의 활동이 마치 모든 브랜드의 표준이라고 생각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실천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던 브랜드들조차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고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오히려 글로벌 패션 브랜드 가니(Ganni)의 행보를 보면 어쩌면 나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생긴다.
덴마크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한 가니의 지속가능성 여정은 2016년 당시 브랜드를 공동 운영하던 니콜라이 레프스트럽(Nicolaj Reffstrup)이 패션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직시하고 ‘우리가 과연 이 비즈니스를 지속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됐다. 가니는 소재를 바꾸거나 생산공장을 바꾸는 등 보통의 지속가능 패션 브랜드들이 할 법한 활동을 먼저 시작하지 않고 ‘탄소발자국’ 측정부터 시작했다.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냉철하게 판단한 결과다.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기 위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통하고, 투명하게 그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가니가 2024년 천연가죽 사용을 전면 중단하고 ‘미래의 소재(Fabrics of the Future)’를 통해 혁신 소재에 투자하고, 제품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단일 소재 사용을 늘리는 것은 순환경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단순한 친환경 행보가 아니다. 2026년 7월부터 시행되는 EU의 ESPR(미판매 재고 폐기 금지) 규제에 대응해 재고가 ‘쓰레기’가 아닌 ‘자원’으로 순환시킬 수 있는 구조를 미리 만든 것이다. 여기에 공급망 관리와 공급망 내 노동자의 노동환경 등 다양한 이슈로 점점 확대되면서 다른 패션 브랜드들이 따라 올 수 없는 격차를 만들고 있다.
가니는 스스로를 ‘친환경 브랜드’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책임감 있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브랜드라고 정의한다. 지속가능성을 완성의 영역이 아닌, 끊임없이 개선해야 할 비즈니스 위기 관리의 영역으로 본 것이다. 데이터(B Corp 90.6점)로 증명된 이들의 ‘책임감’은 규제를 기회로 바꾸는 강력한 위기 관리 전략인 셈이다.
코스피 5000시대, 지속가능성의 필요
세계 제1의 시장인 미국에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업들의 ESG 관련 활동에도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ESG 투자의 선봉에 나섰던 블랙록이 ESG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ESG 활동의 선봉에 섰던 국내 한 대기업의 ESG팀이 통폐합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정말 한때의 유행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래리핑크(Larry Fink) 블랙록 회장은 ESG가 정치적으로 무기화돼서 그 용어의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을 뿐이다. ESG를 ‘에너지 실용주의’ ‘인프라 투자’ 등의 용어로 바꾸고, 재무적 수익성이라는 프레임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ESG 의미의 선명성을 더 높이고 있다. 더욱이 ‘돈의 주인(미국에서는 연금이 가장 큰 투자 재원이기 때문에 미국 일반 소비자들의 의사가 반영된다)’인 고객을 위한 선택임을 강조하면서 기업들에 투명한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이 마케팅의 영역에서 벗어나, 가장 냉혹한 자본의 언어로 완전히 편입됐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파도 속에서도 그들이 에너지 전환 투자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착해서’가 아니라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주가지수 5000이라는 상징적 숫자는 단순한 자산 가치의 팽창을 넘어 비즈니스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수천만 명의 감시자’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지속가능성을 ‘속 편한 소리’로 치부하기엔 우리 시장의 눈높이는 높다. 과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들이 겪은 뼈아픈 매출 하락과 브랜드 가치 폭락은 시장에서 이미 심판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전조 증상이다. 오늘의 이상기후가 내일의 일상이 될 시대에 지속가능성을 외면하는 기업은 코스피 5000이라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가장 먼저 퇴출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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