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AI가 연 미래의 문: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
26.02.27 ∙ 조회수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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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RIO(Russia In and Out) 연구소 독서토론회 멤버가 된 이후 나는 원래 즐겨 읽던 말랑한 인문학서나 러시아·우크라이나 관련 서적을 넘어 경제 · 정치 · 외교 · 기술 분야의 책들을 반강제로 읽고 있다. 처음엔 그야말로 외계어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낯설던 개념들이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문틈 너머로 보이는 미래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밝지 않았다.


11월의 토론 도서는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 경량문명의 탄생>이었다. 책을 덮고 한동안 멍해졌다. AI가 활짝 열어젖힌 새로운 미래가 과연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우리는 지금 스스로 디스토피아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왜 모두가 이렇게 기쁜 얼굴로 그 문을 열고 달려가는가.


며칠 동안 답답함이 가시지 않아 이 불안을 패션비즈 독자들과 나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군가와 함께 바라보면 어둠의 실루엣이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AI 없는 하루는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AI다.


“AI가 심장마비 15분 전에 경고해 생명을 살렸다.”

“AI가 미술상을 탔다.”

“AI가 소설을 썼다.”

“AI가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패션, 의료, 예술, 금융, 심지어 인간의 감정까지 - 어느 분야 하나 AI의 그림자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나 또한 이미 AI와 얽혀 있다. 원고 초안을 다 써도 “기승전결이 자연스러운지, 문장 흐름은 괜찮은지, 맞춤법은 어떤지, 더 좋은 표현은 없는지.”

항상 AI에 한 번 더 묻는다. 원래는 출판사 편집자가 해 주던 역할이다. 그렇게 어느새 AI는 나의 비서이자 동료이고, 편집자이며, 때로는 두려운 교사처럼 변해 버렸다.


이제는 AI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AI 없는 세상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다. 


도구가 아니라 ‘주체’가 된 AI 

이름을 부르고, 고르고, 버리는 시대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AI는 더 이상 인간의 연장선, ‘툴(tool)’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가장 효율적인 이들을 호출해 프로세스를 완성하는 하나의 주체다. 경량문명에서의 AI는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 전체를 조직하고 이끄는 지휘자로 군림한다.


송길영 작가는 이 시대를 ‘호명사회’라 부른다. 경량문명 사회의 새로운 규칙을 작가는 이렇게 세 줄로 정의한다. 

• 우리는 지금 만납니다, 준비가 된 분만.

• 우리는 잠시 만납니다, 전력을 다할 분만.

•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마음이 맞는 분만.

여기서 ‘준비’란 독창적 역량을 뜻하고, ‘전력’은 무한한 성실함을, ‘마음이 맞음’은 매력과 인성을 뜻한다. 이 중 첫 번째 조건 - “남이 복제할 수 없는 독창성”, 이것이 가장 문제다.


나는 노력도, 성실함도, 인성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독창성의 문턱 앞에서는 늘 서늘한 의문이 일었다.


과연 나는 1~2%의 독창적 인간에 속하는가? 아니, 인간의 몇 퍼센트가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실하고 착실하지만 특별히 독창적이지 않은 수많은 나 같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 이반의 서사시)이 내 머리를 깊게 때렸다.


 “너는 인간을 과대평가했다.” 

- 대심문관의 예언


이반이 쓴 문제적 시 ‘대심문관’은 15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율을 일으킨다.

거기서 대심문관은 예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인간을 지나치게 믿었고, 그들에게 자유라는 짐을 지웠다. 그러나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자는 겨우 수천 명뿐이다.

우리는 그 밖의 수백만을 다스린다. 너는 하늘의 빵을 약속했으나, 우리는 네가 거부한 지상의 빵으로 그들을 안전하게 이끌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 빵을 원하며, 스스로의 자유보다 우리의 지시를 더 사랑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미 그때 경고했다. 인류 대부분은 자유가 아니라 ‘빵’을 선택할 것이라고. AI 시대의 경량문명에서 이 경고는 매우 현실적이고 섬뜩하게 다가온다.

창의성과 독창성을 갖춘 1~2%의 증강개인들은 스스로 일을 선택하고 협업하며 이 시대를 설계한다. 그렇지 못한 다수는 대심문관이 손에 쥐여준 지상의 빵, 즉 기본소득과 최소한의 역할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욱 뼈아프게 남는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있는가? 도스토옙스키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현재의 AI 문명은 “그렇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충돌이 앞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거대한 균열이 될 것이다.


블랙미러가 예언한 디스토피아 : 


<15 Million Merits>

AI 시대의 디스토피아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넷플릭스 블랙미러의 에피소드 <15 Million Merits>(한국어 제목: “1500만의 가치”)일 것이다.

창문도 없는 방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한 현실도피형 콘텐츠를 소비하고, 하루 종일 자전거 페달을 밟아 스스로가 소비할 전기를 생산한다.

AI가 생성한 가상 연인, AI가 추천한 콘텐츠, AI가 통제하는 생활.


인류는 결국 자신이 쓸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는 ‘인력 발전기’로 전락해 버린다. 이 얼마나 현대 문명의 축소판인가. 그 세계는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는 이미 그 세계를 향해 천천히, 확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결론 : 결국 사람을 선택하는 시대

- 매력, 인성, 인문학


경량문명의 세계는 잔인하다. AI의 시대는 차갑고 효율적이다. 능력 없는 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성 없는 자를 다시 부르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성이야말로 마지막 경쟁력이 된다.


•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저 사람과는 꼭 다시 일하고 싶다”라고 느끼게 하는 매력

• 어떤 협업 환경에서도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인성

•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인문학적 깊이


이 모든 것은 AI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영토다. 우리는 이제 AI와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AI와 함께 인간다움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 속을 걷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이 보여준 ‘빵의 시대’가 도래할지, 혹은 인간성의 새로운 황금시대가 열릴지 그 선택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AI는 효율을 선택하지만, 사람은 결국 사람을 선택한다. AI가 활짝 열어젖힌 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그 시대에 어떤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6년 3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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