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젠더리스·업사이클' 이재우 디자이너, 워크웨어 새 판 짠다

이유민 기자 (youmin@fashionbiz.co.kr)
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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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젠더리스·업사이클' 이재우 디자이너, 워크웨어 새 판 짠다 3-Image

사진설명=이재우 디자이너


더현대서울, 코카콜라 등 주요 기업의 워크웨어 디자인을 잇달아 맡아 온 이재우 디자이너가 올해도 굵직한 프로젝트를 통해 ‘일하는 옷’의 기준을 다시 쓰고 있다.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 서포터즈, 현대중공업, 에어제타 등의 유니폼 디자인을 총괄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지속가능성, 젠더리스 디자인을 결합한 새로운 워크웨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한국관 서포터즈 복장이다. 지난 10월 13일 막을 내린 이번 엑스포에서 한국관 서포터즈가 착용한 의상 역시 이재우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엑스포 오픈 전 각국 크루들끼리 진행한 비공식 투표에서 한국 팀 유니폼이 1위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국적인’ 정체성과 일본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라는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켰다는 점에서 현장 반응도 뜨거웠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유니폼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국제 무대인 만큼 한국을 알릴 수 있어야 했고, 또 4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행사라 고온다습한 날씨까지 고려해야 했죠”


이 고민은 곧 ‘한국을 어떻게 상징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한국을 상징하는 레퍼런스를 아무리 찾아봐도 결국 한글, 태극기에 머무르더라고요. 한국 하면 떠올리는 상징에만 갇히지 말고, 선입견을 넘어 지금 시대의 한국다움을 담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터뷰] '젠더리스·업사이클' 이재우 디자이너, 워크웨어 새 판 짠다 980-Image

사진설명=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한국관 서포터즈 유니폼


한복의 실루엣을 차용, 현 시대의 '한국다움' 담아


이 지점에서 그가 선택한 해법은 ‘한복의 실루엣’이었다. 둥근 선, 짧은 상의, 풍성한 하의라는 구조를 차용하되 남녀 구분은 최대한 줄여 젠더리스한 라인으로 재구성했다. 남녀 모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미는 방식을 동일하게 적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여기에 격자무늬가 계속 연결되는 듯한 패턴을 디자인해 재킷과 셔츠 전면에 넣어, 한국관의 테마와 ‘연결’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또한 원단 선택에서도 ‘한국성과 기능성’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잡고자 했다.


통풍이 잘 되고 피부에 닿는 감촉이 시원한 모시 계열 소재를 사용해, 부드러우면서도 고온다습한 환경에 적합한 착용감을 구현했다. 이처럼 실루엣, 소재, 그래픽을 유기적으로 엮어 ‘한국의 미래’를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승무원 유니폼에 선인장 가죽을? 에어제타 주목


이 같은 접근 방식은 항공사 유니폼에서도 이어졌다. 이재우 디자이너는 에어로케이에서 관습적인 남녀 구분을 깨는 승무원 유니폼을 선보이며 한 차례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인터뷰를 요청할 정도로 글로벌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에어인천과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부가 통합해 출범한 ‘에어제타’의 승무원복도 맡았다. 신규 항공사의 첫 이미지를 책임지는 작업인 만큼, 브랜드 방향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구성이 특징이다. 에어제타 유니폼에는 선인장 가죽 등 친환경 소재를 접목한 컬렉션이 준비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새로운 형태의 지속가능 워크웨어로 공개될 예정으로 이목이 쏠린다.


한편 현대중공업과는 기존 유니폼 작업을 넘어 굿즈 영역으로까지 협업이 확장됐다. 조선소 본사 건물 리뉴얼과 함께 사내 굿즈숍을 새로 열 계획이며, 이 공간에 들어갈 의류와 잡화 기획 역시 이재우 이사가 맡았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가 특히 집중한 키워드는 ‘유니폼의 두 번째, 세 번째 생명’이다. 2020년 현대중공업 근무복에 효성티앤씨의 리젠 소재를 적용하며 재활용 원사 기반의 친환경 유니폼을 선보였지만, 이 옷들 역시 사용을 마치면 결국 폐기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리젠 소재부터 업사이클링까지, 새 생명을 불어넣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친환경이라는 개념을 엄밀히 파고들면 단계가 끝도 없이 늘어나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어요. 한 번 자원 선순환을 시도한 옷들이 다시 버려지면 의미가 퇴색되잖아요. 그렇다면 이걸 걷어서 한 번 더, 업사이클링까지 해보자고 제안했죠”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버려지는 유니폼을 회수해 굿즈숍에서 판매할 의류와 가방으로 다시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관련 제품들은 현재 시제품 단계까지 올라온 상태이며, 굿즈숍은 12월 오픈을 목표로 준비가 한창이다. 그는 “유니폼은 중고거래나 리세일이 어려운 아이템이잖아요. 그렇다면 그냥 버리는 대신, 업사이클링을 통해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라며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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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세계태권도연맹(WT) 의류 브랜드


그의 활동 영역은 기업 유니폼을 넘어 스포츠 영역으로도 뻗어가고 있다. 최근 중국 우시에서 열린 세계태권도대회에서 세계태권도연맹(WT)은 자체 의류 브랜드 론칭을 추진했고, 이 브랜드의 콘셉트와 디자인 역시 이재우 디자이너가 맡았다. 브랜드 심볼부터 ‘WT’ 로고, 컬렉션 구성까지 전 과정을 디렉팅했으며, 10월 24일 대회 개막에 맞춰 공식 론칭을 진행했다. 출시 후 태권도의 정체성과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담아낸 시도로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의미 있는 유니폼을 향한 실험, 계속 이어질 것


그는 마지막으로 “저는 그냥 디자인을 할 때가 제일 좋아요. 디자인을 하면서 사람들의 이미지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꿔줄 수 있고, 기업의 이미지를 유니폼을 통해 새롭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꽤 성취감 있고 재밌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재우 디자이너는 앞으로도 친환경, 자원 선순환, 젠더리스 등 시대적 메시지를 입은 유니폼을 계속 선보일 계획이다. 기능과 실용성을 넘어, 브랜드 스토리와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담아내는 ‘의미 있는 유니폼’을 향한 그의 실험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유민 기자  youmin@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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