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앞으로 3년이면 끝?" K-수제화 벼랑 끝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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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수제화요? 글쎄요. 길어야 이제 3년 남지 않았을까요?” 성수동에서 만난 한 수제화 제조업체 대표의 말이다. K-뷰티와 패션 브랜드의 팝업, 플래그십스토어, 유니콘 기업의 사업단지까지 더해지며 평일에도 발 디딜 틈 없는 ‘성수동’. 그 화려함 뒤에서 50년 넘게 이어져 온 K-수제화 제조 기반은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장의 장인, 제조업자, 디자이너 모두가 “이제는 진짜 끝이 보인다”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이유는 심화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수년 전부터 공장과 매장은 중심에서 외곽으로, 외곽에서 타 지역으로 밀려나는 일이 공공연한 현실이 됐다.
성수동이 팝업 성지로 부상한 이후 임차료와 보증금이 해마다 큰 폭으로 올랐고, 기업들이 플래그십 거점을 확보하려고 건물과 부지를 매입하면서 연무장길 일대 지가는 3.3㎡(약 1평)당 3억원에 육박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여기에 공임과 부자재 가격도 함께 오르며 간신히 버텨 온 제조 업체와 상인들마저 점차적으로 폐업을 택하고 있다.
연무장길 3.3㎡당 3억? 명장들 조용히 사라져
유홍식 수제화 명장 1호는 “성수동 수제화 거리 1층에서 크게 매장을 운영했지만 월세 800만~900만원을 감당하지 못해 2년 전 2층 소형 공간으로 옮겼다”라면서 “이곳도 월세가 240만원이 넘는다”라고 말했다.
숫자가 쇠퇴를 명확히 보여준다. 2019년 약 500개에 달하던 제조업체 중 100곳 가까이 문을 닫으며 당시에도 심각성이 부각됐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소세가 이어져 현재는 전체의 30% 미만만 생존한 상황이다. 일부는 고양 등 외곽 지역으로 이전했다. 국내에서는 부자재 조달이 어려워 결국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고, 해외 공장의 원가 경쟁력에 밀려 운영이 쉽지 않다는 전언이 이어진다.
한 대표는 “이제 정말 살아남은 곳은 체감상 20%도 안 되는 것 같다”라면서 “물론 몇 년 전부터 공임비와 원부자재값 상승 등으로 많은 제조업체가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지만, 진짜 끝이 다가오는 이유는 이름 있는 제조 · 부자재 업체도 최근 문을 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큰 업체 두 곳이 폐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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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업체도 폐업 수순 “생산량 반토막, 못 버텨”
“저희 브랜드 제품을 담당하던 공장도 지난달 문을 닫았어요. 이번에는 다른 공장으로 급히 옮겼는데, 이게 벌써 두 번째예요. 심각한 수준이죠.” 업체마다 아우성이다. 기반이 흔들리자 수요도 크게 줄었다. 1~2년 전 하루 50족을 만들던 한 공장의 생산량은 최근 20~30족으로 내려앉았다.
수요가 위축된 배경에는 트렌드 변화와 낮아진 인식도 있다. 수제화는 섬세한 공정과 고객 맞춤으로 제작해 기성화보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비자 인식과 수요가 떨어지면서 가격 저항이 커졌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젊은 2세대 제조인과 디자이너들이 젊은 층을 겨냥한 디자인으로 반등을 시도했으나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성수동에서 맞춤 제작을 하면 최소 공임만으로도 켤레당 10만원이 들어가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30만원 안팎의 가격이 책정된다.
여기에 주요 온라인 플랫폼의 30% 내외 수수료와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대형 프로모션이 겹치면 브랜드 수익은 사실상 마이너스가 된다. 한 수제화 브랜드 대표는 “우리 브랜드 수제화 특성상 원가가 높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못해도 30만원대로 설정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매출을 올려야 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중국 · 베트남 등에서 대량 생산한 구두와 경쟁 자체가 안 된다”라며 “성수동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수제화라는 점이 강점이었는데, 이러한 흐름이라면 해외 공장을 알아보거나 다른 방법을 궁리해야 할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장인 평균 연령 60대 초․중반, 인력 단절도 치명적
인력 단절도 치명적이다. 현역 장인의 평균 연령은 60대 초·중반이고, 뒤를 잇는 젊은 인력은 거의 없다. 유홍식 장인은 “우리나라 수제화가 다시 살아나려면 나 같은 장인이 최소 20~30명은 있어야 하는데, 현재 A급 기술자들은 대부분 떠나 사실상 2~3명만 남았다”라면서 “명맥을 이으려면 장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전문 학교가 필요하고, 최소한의 월급 보장도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산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제조업체 대표는 “젊은 인력을 직접 채용해 급여를 지급하며 가르쳐 봤지만, 고급 기술을 익히려면 몇 년이 걸리고, 교육을 맡을 장인도 각자 생업이 바빠 쉽지 않다”라면서 “환경과 비전이 열악해 의지가 높았던 2030세대 인력도 한 달을 못 버티고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정책 지원은 있으나 실효성 논란이 크다. 정부와 지자체는 취·창업 희망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인근 시세보다 저렴한 임차료로 운영 가능한 ‘공동판매장’과 ‘슈슈마켓’ 등 행사를 이어왔다. 현장에서는 “교육 기간이 한 달로 매우 짧다”, “임차료 면제가 사라져, 청년 사업자들의 부담이 커졌다” 등의 지적이 나왔다.
수제화거리는 전시용으로? K-수제화 경쟁력 지켜야
수제화거리 내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공공 공간의 임차료도 함께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수제화 디자이너 전시공간으로 활용되던 성수수제화희망플랫폼은 일반 팝업 공간으로 바뀌어 창작 기반이 더 약해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주말엔 간헐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지만, 평일은 한산하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의 말이다.
K-뷰티, K-패션, K-컬처가 글로벌로 확장하는 지금, K-수제화만 그 흐름에서 이탈하고 있다. 값싼 대량 생산품보다 품질이 뛰어나고, 명품 대비 합리적인 K-수제화의 경쟁력이 이대로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이를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실질적인 인재 양성과 창업·취업 연계를 가속화하고, 현장을 면밀히 진단해 효과가 검증된 곳에 예산과 역량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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