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제주도에서 시작된 명품 니트 브랜드 '한림수직'

강지수 기자 (kangji@fashionbiz.co.kr)
25.11.13 ∙ 조회수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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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기자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한림수직 니트 / (오) 옛 한림수직 담요에 부착된 라벨


<기자는 어머니가 1980년대 제주도 칼호텔에서 구매한 한 니트를 물려받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매해 10번 정도 착용했는데, 구매한 지 45년이 지난 지금날까지 모양과 품질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알고보니 이 니트는 1959년 제주도에서 시작된 '한림수직'이라는 로컬 브랜드로, 일본 빈티지 마켓에서는 전설처럼 취급 받는 브랜드라고 한다. 최근 이 브랜드가 다시 복각돼 서울과 제주, 도쿄로 다시 뻗어나가고 있다>


1959년. 한국 전쟁이 끝나고 밥벌이가 어려웠던 시절. 척박한 제주도 땅의 소녀들은 물질을 하거나 공장에 나가 고된 일을 해야 했다. 공장에서 사고로 혹은 과로로 목숨을 잃는 소녀들도 적지 않았다. 


1954년에 아일랜드에서 제주도로 부임해 온 패트릭 맥그린치(1928~2018) 신부는 이러한 상황을 안타까워 했다. 가난한 제주 지역민을 자립시킬 방법을 고민하다 면 양 35마리를 사서 목장을 조성하고, 아일랜드 수녀 3명을 초청해 제주 여성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쳤다.


최고급 니팅 기술을 갖고 있던 푸른 눈의 수녀들은 아일랜드 서쪽 아란섬에서 유래한 꽈배기, 다이아몬드 등 다채로운 아란 무늬를 전수했고, 제주 여성들은 꼼꼼한 손기술로 탄탄하면서도 보드랍고 고급스러운 니트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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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림수직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모습


아일랜드 신부와 1300명의 제주도 소녀들이 만든 니트


이렇게 탄생한 니트가 한림수직이다. 생활력이 강하고 근면 성실한 제주도 소녀들은 당대 최고급 니트를 만들어낸다. 니트의 내구성을 위해 앞판, 뒷판, 소매를 모두 따로 작업해 이어붙이는 기법을 사용했으며 원단 직조는 지금 시대에도 흔하지 않은 최고급 기술을 적용했다. 염색하지 않은 100% 양모로 제작해 양기름에 의한 보온 효과가 탁월했으며, 드라이크리닝이 아닌 손세탁에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한림수직의 스웨터와 카디건, 담요 등은 그 문양의 아름다움과 품질이 입소문이 나면서 금세 명품 대접을 받았다. 제주 칼호텔과 서울 조선호텔에 직영매장을 운영했으며 미국 '타임'지에 실리기도 했다. 1970~1980년대엔 근무자가 13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한림수직은 외국산 원사와 화학섬유의 저가 공세와 속도전에 밀려 2005년에 문을 닫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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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던 한림수직이 다시 조명을 받은 건 제주 기반 콘텐츠그룹 재주상회가 이시돌농촌산업개발(성이시돌목장)과 함께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한 2021년이다. 성이시돌목장에서 버려지던 양모와 재생 양모를 섞은 울 100% 실로 한림수직 니트류를 일부 복원해 펀딩을 시도한 결과, 며칠만에 1억원어치가 팔렸다. 


과거 모든 제품을 검수한 총책임자 김명열 장인을 비롯한 한림수직 뜨개 장인들을 다시 모으고, 전국 각지에 한림수직 제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애장품을 빌렸다. 중고 플랫폼에 올라온 제품들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브랜드 제품 본격적으로 복각했다.


한림수직을 기억하는 세대와 한림수직의 이야기에 매료된 이들의 성원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해 2024년까지 10억원 넘는 누적 매출을 달성했다. 현재는 성이시돌목장의 성이시돌센터와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외에 한림수직 온라인몰과 더현대닷컴, 29cm에서도 한림수직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재주상회는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 5년 째를 맞아 올겨울 서울과 제주, 그리고 일본 도쿄에서 릴레이 팝업을 진행 중이다. 먼저 8~16일 서울 계동에서 열리는 팝업은 한림수직의 전통, 복원, 재해석 과정을 하나의 서사로 엮고, 서울과 제주를 연결하는 전시다.


국내에 아란무늬 니트를 처음 선보인 한림수직의 이야기와 더불어 옛 한림수직 고객들이 오랫동안 간직한 한림수직 제품 13점과 거기에 얽힌 사연을 액자 형식으로 선보였다. 50년이 된 니트들의 모양과 고급스러운 품질이 전혀 훼손되지 않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다시 시작된 한림수직, 서울 제주 그리고 도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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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상회는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 5년 째를 맞아 올겨울 서울과 제주, 그리고 일본 도쿄에서 릴레이 팝업을 진행한다. 먼저 11월 8~16일 서울 계동에서 열리는 팝업은 한림수직의 전통, 복원, 재해석 과정을 하나의 서사로 엮고, 서울과 제주를 연결하는 전시다. 국내에 아란무늬 니트를 처음 선보인 한림수직의 이야기와 더불어 옛 한림수직 고객들이 오랫동안 간직한 한림수직 제품 13점, 거기에 얽힌 사연을 액자 형식으로 선보였다. 한림수직의 장인정신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만든 2025년 제품들도 만날 수 있다.


한 애장품의 설명글에는 '서울의 김지연님이 30년 넘게 간직해 온 라운드넥 카디건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추운 겨울날, 어머니와 이모들이 조선호텔에서 함께 구매해 입던 니트라고 한다. 어머니가 아끼던 옷은 딸에게 이어졌고, 30년도 훌쩍 넘은 지금도 처음 그대로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재주상회 관계자는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는 한림수직의 제조 기술과 뜨개질 문화를 계승하는 ‘기술 복원’을 넘어 제주의 일상과 문화에 관한 ‘기억의 복원’을 목표로 한다”며 “한림수직이 만드는 이와 입는 이, 전통과 새로움을 연결하는 제주 대표 로컬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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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2021~)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는 사라진 패션 브랜드의 부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생계를 위해 이방인에게 배운 기술로 한 땀 한 땀 명품을 만들어낸 제주 여성들과, 그 섬세한 손기술로 완성된 니트류를 아껴 입고, 소중히 대물림해 온 사람들의 기억을 엮어 하마터면 잊힐 뻔했던 이야기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재주상회는 과거 한림수직에서 일했던 어른신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전국의 옛 한림수직 고객들로부터 카디건, 스웨터, 직조 담요, 머플러 등 한림수직 제품과 거기에 얽힌 사연을 수집해 전시하고, 제품 복원에 활용한다. 옛 한림수직의 시그니처 제품들을 복원한 오리지널 라인 외에 한림수직에 13년간 몸 담았던 김명열 장인과 그에게 배우고 실력을 검증받은 제자들이 100% 손으로 뜨는 마스터 라인도 선보였다. 한림수직 전용 실과 도안으로 구성된 DIY 키트도 제작한다.


또한 가난했던 시절에도 ‘품질은 생명’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고집한 한림수직의 뜻을 이어 첫해부터 양모 100%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성이시돌목장의 양모를 섞어 사용하거나, 양을 학대하지 않고 채취한 뮬징프리(mulesing free) 울을 사용한다.

강지수 기자  kangji@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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