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병하 |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조지오 아르마니와 무라카미 하루키"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
25.11.04 ∙ 조회수 336
Copy Link

[칼럼] 조병하 |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 패션계의 제왕이었던 Mr. Armani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나이가 있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몇 년 전 영화 음악의 거장 이탈리아의 엔니오 모리코네가 사망했다는 소식만큼 또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1990년대 초, 처음 이탈리아 밀라노에 출장을 갔다. 늦은 밤, 알리탈리아 항공을 타고 시내 중심인 두오모 성당에서 한 시간 거리의 교외에 있는 리나테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독수리 로고가 박힌 ‘엠포리오 아르마니’ 브랜드의 대형 간판과 옥외 광고판을 봤다. 그 순간 리나테 공항이 아니라 엠포리오 아르마니 공항인 줄 착각했었다. 아르마니 시대가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그의 죽음을 듣고 그때쯤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 떠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7년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출간한 이후 그 소설의 완결편이라고 불린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 대중의 인기를 끌면서 명성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회사 생활 속에서 하루키의 소설과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재즈와 클래식, 와인과 명품 브랜드 등이 나의 변화 없는 회사 생활에 활력과 신선함을 더해 줬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던가. 


개인적으로 1990년대의 허리가 잘록하고 재킷 총장이 길었던 아르마니 슈트와 캐주얼웨어, 그의 의식주에 관한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선망하고 좋아했었다. 물론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일본 최고의 경제 호황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아르마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이야기의 처음은 늘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곤 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아르마니의 넥타이와 소프라니 우모의 슈트, 와이셔츠도 아르마니였다. 구두는 로세티. 나는 딱히 복장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옷에 돈을 들이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청바지와 스웨터만 있으면 충분했다. 하지만 내게는 나름의 작은 철학이 있었다. 가게의 경영자라면 자기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되도록이면 이런 차림을 하고 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차림을 본인 스스로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손님이나 종업원에게도 그 나름의 긴장감 같은 것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게에 얼굴을 내밀 때에는 의식적으로 비싼 양복을 입고 반드시 넥타이를 맸다.” 그 소설의 주인공 하지메는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바를 운영했다. 그 재즈바의 운영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자세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소설 속의 그 한 페이지는 아르마니 슈트를 입고 비즈니스를 할 때 자신감을 줬고, 주인공의 생각은 사회생활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내 인생에서 나는 그렇게 아르마니를 만났다. 그는 ‘우아함’과 ‘미니멀리즘’의 거장으로 불리며 세계 명품시장을 선도했다.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11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
Comment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
댓글 0
로그인 시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Related News
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