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패션 열풍” 숨은 주역 모델리스트 3인과 만나다
K-패션의 열풍과 함께 디자인, 패턴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며 아이템의 실루엣을 설계하는 ‘모델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들은 패션 산업 내 핵심적인 직군으로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패턴으로 개발하고 생산 단계에서 봉제 방식을 설정하는 등 전체적인 과정에 관여한다. 또 디자인 개발과 소재 선택, 고객 피드백을 반영한 제품 기획 작업도 진행하며 없어서는 안될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모델리스트는 디자이너와 생산팀 사이에 위치해 제품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조율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모델리스트는 자신이 보유한 소재와 디자인 지식, 봉제와 가공 등 생산 지식을 활용해 각 부서가 원활하게 소통하며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최근에는 K-패션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현지 시장에 맞춘 사이즈와 패턴 개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주목받는 소규모 브랜드가 많아지며 이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맞는 패턴을 기획하기도 한다.
이렇듯 모델리스트는 정확한 수치를 반영해야 하는 숫자적인 감각과 디자인에 맞게 실루엣을 변형하는 디자인 역량, 디자인 · 패턴 · 생산 세 부서 간 긴밀한 협업을 주도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는 복합적이고 핵심적인 직무다. 실제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델리스트 3인(윤순민 · 이현학 · 박은하수)을 만나 이들의 경험과 통찰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윤순민ㅣ비에파 대표 겸 모델리스트
옷 완성도의 핵심, 패턴 연구에 몰입
“모델리스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옷 자체에 대한 흥미’다. 개발할 때 디자이너보다 더 구성적으로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에 옷을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옷 자체에 흥미를 갖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생산 공장 ‘비에파(VIEPA)’를 운영 중인 모델리스트 윤순민 대표의 말이다. 윤 대표는 한양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LF 신사소싱 BSU 테크니컬 디자인팀을 거쳐 지난 2016년 모델리스트 중심의 생산 공장 비에파를 설립했다. 2014년에는 서울모델리스트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모델리스트에 대해 ‘복합적인 역량이 요구되는 직업’이라고 설명한다. 도식화와 스케치를 실제 패턴으로 옮겨내는 능력, 디자인 감각, 원단 · 부자재 · 봉제에 대한 지식, 디자이너와 생산자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소통 능력까지, 한국에서는 모델리스트라는 직업적인 정의가 희미해 패턴사라고만 불리지만, 실질적으로는 패턴 개발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있는 직업이라는 것.
모델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한 계기에 대한 물음에 윤 대표는 “처음부터 모델리스트라는 직업을 하고 싶었다기보다 ‘옷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라며 “대학교 전공 수업을 들으며 옷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소재와 디자인, 무엇보다 좋은 패턴과 알맞은 봉제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본격적으로 패턴 메이킹과 봉제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 윤 대표는 LF의 테크니컬 디자인팀을 거쳐 2016년, 만 26세에 생산 공장 비에파를 설립했다. 비에파는 모델리스트 중심의 생산 공장으로, 윤 대표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의 모델리스트가 소속된 개발자 중심의 프로모션 회사다. 패턴 개발을 외주로 맡기고 생산에만 몰두하거나 자체 개발팀 인력이 소수인 타 프로모션 회사와 달리 패턴 개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윤 대표는 “제품 생산에 들어갔을 때 기술적인 부문을 더 잘 컨트롤하기 위해 개발자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라며 “디자인 요소가 많은 고가의 브랜드의 경우 개발자, 디자이너, 생산자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모델리스트는 제작 공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비에파는 20곳 이상의 브랜드와 협업해 패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K-패션이 글로벌 소비자에게 많은 주목을 받으며 모델리스트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브랜드가 늘어남에 따라 사이즈에 맞게 패턴을 변형하는 ‘그레이딩(Grading)’ 능력이 더 중요해진 것. 윤 대표는 “미국 같은 경우 한 아이템에 최소 다섯 사이즈를 구성한다”라며 “그레이딩도 패턴의 영역이다. 해외를 대상으로 제작하는 브랜드라면 다양한 사이즈에 대한 디자인과 패턴을 알맞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자 패턴 프로그램인 캐드(CAD)와 3D 모델링 프로그램 등 기술적인 도입은 모델리스트의 업무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윤 대표는 “캐드나 3D 모델링 등 기술의 도입은 매우 당연하고 막을 수 없다. 현재에도 많은 모델리스트가 전자 패턴을 사용한다”라며 “중요한 것은 ‘최종 결정’이다, 어떤 실루엣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관점은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에 패턴을 정확하게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profile
2014년 서울모델리스트콘테스트 우수상 수상
2015년 한양대 의류학과 졸업
2015년 LF 신사소싱 BSU 테크니컬 디자인팀
2016년 비에파 설립
2020년 여성복 브랜드 이아 론칭
2023년 패션봉제 유공 산업부 장관 표창 수상
이현학ㅣ포터리 연구개발팀장
단순 모방은 NO, 고유의 개성 중시
“패턴을 제작할 때 모든 요소에는 개발자의 의도가 담겨야 한다. 각 요소를 선택한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와 해당 요소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모델리스트가 직접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해외 명품 옷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만의 색이 담긴 패턴을 개발할 때 비로소 좋은 옷을 제작할 수 있다.”
꾸준하게 성장 중인 포터리(대표 김건우)의 컨템퍼러리 브랜드 ‘포터리’에서 연구개발팀 팀장을 맡고 있는 이현학 모델리스트의 말이다. 이 팀장은 한양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윤순민 비에파 대표와 함께 비에파에서 모델리스트로 근무한 후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가 2022년 포터리에 합류했다. 대학교 시절 선배였던 윤 대표와 함께 스터디 그룹 형식으로 패턴 공부를 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았다.
졸업 후 윤 대표가 설립한 비에파에 합류해 실무적인 능력을 쌓았고 2020년부터 2년간 프리랜서로 전향해 파트너사의 패턴을 개발했다. 이후 2019년부터 파트너사로 협업한 김건우 포터리 대표의 제안으로 2022년 포터리의 연구개발팀 팀장으로 합류했다.
이 팀장은 “대학교 시절부터 패턴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 동기와 선후배 대부분이 MD 직무를 선택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몸을 쓰며 활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무에 끌렸다”라며 “디자이너가 의도한 대로 선을 긋고 그 선에 맞춰 패턴과 실루엣과 실물 피스가 나왔을 때의 기쁨이 적성에 맞아 패턴을 개발하는 일에 더 빠져들었다”라고 설명했다.
모델리스트의 핵심 역량에 대한 질문에 이 팀장은 “제품의 구상 단계부터 디자인, 패턴 개발, 생산, 판매, 리뷰까지 일련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청받은 패턴을 잘 개발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브랜드에서 제품을 출시할 때까지 거치는 여러 단계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관여할 수 있어야 좋은 옷을 만들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이템 기획 단계에서 기존 시즌의 판매 데이터, 사이즈별 반품률, 핏에 대한 고객 피드백 등을 활용해 패턴 개발에 적용하는 것.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실루엣을 수정한 패턴으로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또 같은 도식화도 패턴에 따라 여러 가지 디자인이 나올 수 있기에 디자인 개발에 관여하기도 한다. 생산 단계에서는 원단의 물성과 봉제 방식 등을 고려해 패턴을 제작해 리드 타임을 단축하거나 퀄리티를 높인다.
이 팀장은 패턴 개발 단계가 ‘디자인 구상’과 ‘생산’ 두 단계 사이에 있기에 이를 잘 조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좋은 옷이 나오기 위해서는 이 세 분야에서의 긴밀한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 패턴을 포함해 생산 일정, 퀄리티, 고객 만족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모델리스트는 전 과정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최근 이 팀장은 다양한 체형에 맞는 패턴 개발에 힘쓰고 있다. 전형적으로 자리 잡은 평균 신체 치수를 기반으로 한 패턴 개발이 아닌 현실적인 실루엣을 연구하는 것. 체형에 따른 사이즈와 핏 구성을 달리해 브랜드를 좋아하지만 알맞은 사이즈가 없어 구매를 망설이는 고객을 위한 패턴을 연구 중이다. 이 팀장은 “포터리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정돈된 디자인과 편안한 착용감’에 있다”라며 “실제 고객의 착용 피드백을 받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개선점을 찾으며 기성복이지만 입었을 때 최대한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하는 패턴을 개발할 것”이라고 전했다.
profile
2018년 한양대학교 의류학과 졸업
2018 ~ 2020년 비에파 랩 개발팀 팀장
2020 ~ 2022년 스튜디오레이아웃 대표
2022년 ~ 현재 포터리 개발팀 팀장(총괄)
박은하수ㅣ부래당 모델리스트
수치적 · 디자인 균형 이제 AI까지
박은하수 모델리스트는 부래당(대표 진성용 · 진현선)의 어덜트 컨템퍼러리 여성복 ‘쁘렝땅’에서 패턴을 개발하고 있다. 의류학을 전공해 대학생 때부터 패턴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졸업 이후 2013년부터 샘플실과 프로모션 회사에서 패턴과 그레이딩을 주 업무로 경력을 쌓았다. 이후 여성복 브랜드 ‘모에’와 골프 브랜드 ‘세인트앤드류스’ 등을 거쳐 2022년 쁘렝땅 개발실에 합류했다.
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패턴 개발에 부족함을 느꼈던 그는 당시 ‘미래패턴연구소’에서 주최한 모델리스트 콘테스트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데뷔반 수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패턴을 공부했다. 이후 더 깊이 있게 배우기 위해 여성복과 아웃도어 등 다른 복종의 패턴 수업에도 참여하며 실력을 키웠다. 또 VMD, 기획실, 디자인실 등 다양한 부서에서 인턴 경험을 쌓아 패션 산업에서의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였다.
모델리스트의 직업적 정의에 대해 묻자 그는 “디자이너가 구상한 스케치를 기술적인 측면에서 구현하는 중요한 직무”라고 답했다. 수치적인 감각과 디자인 감각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 직업이기에 신체 특성에 맞는 정확한 수치 계산과 미적 감각을 발휘해 유동적으로 패턴을 수정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 앞서 윤순민 비에파 대표와 이현학 포터리 연구개발팀장이 강조했던 ‘협업 능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디자인과 생산 각 분야와 잘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핵심 자질로 꼽았다.
박 모델리스트는 AI와 3D 모델링 등 새로운 툴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클로버추얼패션(대표 부정혁·오승우)의 ‘클로(CLO) 3D’ 프로그램을 활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할 때 빠르게 가상 가봉을 진행해 핏을 개선하고 리드 타임을 단축하는 것. 그는 “최근에는 AI를 통해 실루엣별로 박스 패턴 형성이 가능해 좀 더 빠르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라며 “클로 3D와 챗GPT 등 다양한 툴을 활용해 뉴노멀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에 대한 물음에 박 모델리스트는 “쁘렝땅은 기성복 브랜드지만, 일부 요청 고객에 한해서 신체에 맞게 맞춤으로 제작하는 ‘반맞춤’ 서비스를 운영한다. 서류를 통해서 내용을 전달받아 설계에 한계가 있지만, 고객의 요청에 맞춰 패턴을 개발하고 이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모델리스트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패턴을 통해 디자이너, 생산자,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줄 때 모델리스트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박 모델리스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패턴 연구와 개발에 힘쓰며 산업의 변화가 빨라지는 지금 본인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고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계속해서 다양한 스타일의 옷 개발에 참여하고 새로운 툴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profile
2014년 한경국립대학교 의류산업학과 졸업
2015 ~ 2018년 SG세계물산
2018 ~ 2020년 라인바이린
2020 ~ 2022년 크리스에프앤씨
2022년 ~ 현재 부래당
■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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