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 글로벌 확장 속 “K-섬유, 지금이 기회”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지난 상반기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휩쓸며 역대 흥행 기록을 남겼다. 완성품인 영화뿐 아니라 그 콘텐츠 기저에 있는 한국적 소재와 한국에 뿌리를 둔 크리에이터도 주목을 받고 있다. K-패션이 글로벌에서 각광받고 있는 지금, 한국 패션의 재료이자 기반인 소재 업계는 그만큼 조명받고 있을까? 지난 상반기까지 주요 업체들의 매출은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다행히 미래를 향해 △기능성 △디지털라이징 △친환경 가치를 업그레이드하며 각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K-섬유가 글로벌 마켓에서 도약할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국내 섬유업계는 냉감 및 경량 등 기능성, 친환경을 앞세운 지속가능성, 인프라의 디지털라이징 등 그동안 글로벌 패션 시장의 주요 키워드를 참고삼아 차근차근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올해 K-섬유 시장의 가장 주요한 키워드는 무엇일까? 바로 글로벌 시장에 불고 있는 K-패션의 강세를 뒷받침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제작진이나 그 속에 들어간 한국문화처럼 각자 두드러질 수 있는 경쟁력을 강화해야하는 것이다.
때마침 미국 관세 문제로 인해 그동안 중국에 집중돼 있던 원사 및 원단 가공 업체들이 한국에 관심을 보여 시기도 적절하다. 중국에서 생산 및 가공을 거치는 모든 상품에 무거운 관세가 붙게 되자, 상대적으로 상호 관세(15%)가 저렴한 한국을 원단 생산 및 가공 거점으로 삼고 싶어 하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집중돼 있던 봉제 등 프로모션 수요도 한국으로 분산되고 있어서 K-인프라를 활용한 K-패션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열린 프리뷰인서울(PIS)에서 한국 원단 및 가공 업체와 접촉하려는 해외 바이어가 크게 늘었다. 해외 60개국 800여 명의 바이어가 방문했으며, 이 중 ‘아크테릭스’ ‘파타고니아’ ‘알로’ ‘온러닝’ 등 글로벌 브랜드의 소싱 담당자가 약 230명이었다. 유럽 · 미국 및 중동 바이어는 전년대비 12% 늘어 전체 바이어의 46%를 차지했다.
미국 관세 영향, 소재 소싱 · 원단 개발 국가로 주목
글로벌 소싱 담당자 및 바이어가 증가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와 지오라이트가 오랜만에 행사에 참가했고, 글로벌 니즈가 높아지고 있는 기능성 원단을 다루는 대웅에프앤티와 신창티앤씨 등에도 방문객이 몰렸다. 중국이 아닌 베트남 등지에 생산 기반을 둔 기능성 원단 업체 이스트한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
또 태광산업, 대한화섬, 효성티앤씨, 티케이케미칼, 휴비스 등 지난 상반기까지 실적이 부진했던 국내 대형 섬유 전문 기업도 ‘미국 리테일러 보유 재고 감소에 따른 발주량 확대’ ‘대내외 경제 여건 불확실성 해소’ 등을 기대하며 하반기에는 섬유 시장이 활력을 얻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가온 기회를 잡기 위해 소재 전문 기업이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글로벌 패션시장의 니즈가 지속가능성과 디지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친환경은 물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시각이 넓어지고 있고, 디지털화로는 시스템 및 인프라의 디지털라이징부터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AI 솔루션까지 적용 범위도 다양하다.
글로벌 친환경 소재 시장, 2031년까지 연평균 13.8%↑
그중 올해 PIS와 주요 소재 기업의 핵심은 친환경 소재에 집중돼 있다. 실제로 글로벌 친환경 패션 소재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294억6000만달러(약 39조7710억원)에서 2025년 328억7000만달러(약 44조3750억원)로 11.6% 성장했다. 오는 2031년까지 예상하는 규모는 711억1000만달러(약 96조원)이며 연평균성장률(CAGR)은 약 13.8%에 달할 것이다.
글로벌 시장의 규모 성장에 발맞춰 올해 열린 PIS에도 다양한 친환경 소재가 등장했다. 주요 키워드가 친환경이었던 작년보다 재활용, 바이오, 업사이클링 등 다방면으로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는 소재를 폭넓게 소개했다.
대표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부스였던 효성티앤씨를 비롯해 10년 이상 PIS에 참가한 주요 20개 업체 중 16개 업체가 친환경 소재를 주요 제품으로 들고 나왔고, 나머지 4개 중 1개 업체는 천연 소재를 다루는 곳이었다. 프리미엄 소재 부문, 첨단기술을 접목한 테크 부문, 국내 생산 부문의 주요 업체들도 친환경 키워드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효성티앤씨, 리젠바이오로 친환경 · 바이오 소재 집중
특히 효성티앤씨(대표 김치형)는 올해부터 글로벌 요구에 발맞춰 ‘리젠(regen)’과 ‘리젠바이오’ 등 친환경 원사 라인업을 강화하고 글로벌 생산 기지를 확장했다. 최근 탈탄소 흐름 속에서 한국산 원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특히 친환경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유럽에서 재활용 및 바이오 원료를 사용한 제품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리젠은 페트병, 폐어망, 해양 플라스틱 등을 재활용해 만든 100% 리사이클 원사다. 스판덱스, 나일론, 오션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으로 세분화돼 있는데 이 중에서 ‘리젠 코리아’는 국내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으로만 만든 원사이고 리젠 바이오는 옥수수 · 사탕수수 등 재생 가능한 원료로 만든 스판덱스다. 기존 화석 원사 대비 친환경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충족시켜 유럽 및 글로벌 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2026년 베트남에 세계 최초 바이오 스판덱스 통합 생산기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초기에는 연간 5만톤 규모로 가동을 시작해 장기적으로는 20만톤까지 생산 물량을 늘릴 예정이다. 한국산 섬유가 글로벌 시장에서 프리미엄 원단으로 인식되고 있어 이 같은 니즈에 걸맞은 품질을 갖추는 데 주력한다.
렌징, 환경친화적 프리미엄 원사로 사업 다각화
렌징코리아(대표 이정근)도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지속가능 섬유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는 ‘텐셀 라이오셀’ ‘에코베로’ ‘에코베로 블랙’을 주력으로 선보인다. 환경친화적이면서도 고품질의 원사를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렌징의 대표 상품군인 텐셀에서 선보인 라이오셀 섬유는 제작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과 물 사용량을 50% 줄이고, 인증된 목재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원 효율성이 높다. 부드러운 재질에 색상 표현력이 좋아 의류, 홈패션, 기능성 의류 등 폭넓은 상품군에서 사용한다.
에코베로는 비스코스의 친환경 대체품이다. 재생 에너지를 활용해 지속가능한 공정으로 생산해 탄소 배출 저감 및 자원 효율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특히 에코베로 블랙은 별도 염색 공정 없이 검은색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원착사로 물, 염료, 화학물질 사용을 줄여 환경 보호는 물론 생산비도 절감된다.
라이크라, 올해 바이오 라이크라 ‘키라’ 상용화 주력
PIS 참가 기업뿐 아니라 라이크라컴퍼니코리아(대표 최원일) 등 글로벌 소재 기업도 새로운 친환경 소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라이크라는 올해 초부터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바이오 라이크라 ‘키라(QIRA)’의 상용화에 집중하고 있다. 키라는 스탠더드 라이크라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을 44%까지 줄이지만 신축성과 복원력 등 성능과 품질은 동일하다.
올 상반기에 아웃도어 브랜드 ‘K2’와 협업해 바이오 라이크라 키라를 사용한 상품을 조기 출시했고, 대규모 공급이 가능한 생산 시스템을 이미 구축했다. 올 연말부터는 지속적으로 대물량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국내 최초 오가닉 코튼 전문사인 케이준컴퍼니(대표 강성문)는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제조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원사에서 직물이 되고 의류가 탄생하는 전 과정에서 GOTS 및 OCS 인증을 받은 유기농 코튼을 공급하고 있다. 교직물을 전개하는 우정무역(대표 홍순재)은 친환경 재생섬유인 텐셀 소재로 유럽, 미주, 일본 시장 등에서 상품력과 친환경성을 인정받아 수출하고 있고 올해 글로벌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케이준 · 우정 · 예성 등 지속가능성 강화로 수출 역량↑
국내 유일한 고급 면직물과 면교직물 제조·수출 업체인 예성텍스타일(대표 엄성일)은 재킷 · 코트 · 팬츠에 적합한 고급 면교직물의 제직, 염색, 후가공 등 모든 공정에 지속가능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기능성을 더한 고급 소재로 이탈리아, 영국, 일본의 고급 소재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유럽, 미주, 캐나다, 호주 등 환경 가치를 높게 생각하는 나라에 하이엔드 브랜드로 수출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예정이다.
한편 니트 생산 업체인 와이제이글로벌(대표 서국원)은 GRS · HIGG 인증 기반 친환경 환편 니트를 선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가닉 코튼, 리사이클 코튼, 폴리에스터, 나일론, 소로나 원료 등 친환경 소재를 적용한 니트 상품과 기능성 원사를 사용한 특수 목적 원단 제조에 강하다.
교직물 생산력과 원사부터 봉제까지 전 공정에서 버티컬 생산 시스템을 갖춰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영텍스타일(대표 박갑열)은 친환경 셀룰로오스계 원단 ‘셀란(CELLAN)’, 바이오매스 원료의 ‘바이온프라임(BION Prime)’, 폐의류 재활용 재생 원단 ‘서클렉스(CirClex)’ 등으로 지속가능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AI 활용’ 빠르고 낭비 없는 생산공정에 관심도 UP
올해 PIS는 ‘테크스피어’라는 이름으로 첨단기술을 접목한 섬유패션 테크기업이 등장했다. 주로 고정밀 의류 재현 AI 기술을 사용한 룩북 제작 솔루션(라온버드), 첨단 기술과 패션을 융합한 기능성 · 친환경 원단(커버써먼)과 함께 3D 디자인 소프트웨어나 가상 피팅과 관련한 AI 기반 패션 콘텐츠를 선보인다. 맞춤형 디지털 프린팅이 가능한 스마트 팩토리(현우인터내셔널)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디지털라이징은 의류 생산뿐 아니라 소재와 원부자재 생산 분야에서도 꼭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이 됐다. 그중에서도 AI(인공지능) 도입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아직 활용 범위는 넓지 않지만 현재 노후화되고 있는 소재 업계의 지속가능한 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요충분요건이라는 것이 이번 PIS의 주요 기조였다.
AI는 기계의 진동, 속도, 장력 등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방적이나 직조를 최적화할 수 있고, 일관된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실시간 관리도 가능하다. 유지 · 보수 필요성을 예측해 가동 중단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도 손꼽힌다. AI를 활용해 더 빠르고, 정확하고, 낭비를 줄이는 효율적인 생산 공정으로 지속가능한 소재 생산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K-섬유 차별화 강점 ‘맞춤형 소량생산 및 디자인’
PIS가 아니더라도 국내 다양한 소재 업체는 기능성 강화는 물론 기술력 혁신을 통해 국내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한국 섬유 원단 산업의 강점은 바로 ‘소량생산을 기반으로 한 신속한 대응력과 차별화된 디자인’이다. 이러한 강점과 기업의 노하우를 살려 국내 소재 기업의 다양한 성장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속속 등장했다. 모기업의 기술력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거나 원사와 원단업체 간 협업을 통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중 눈에 띄는 기업은 대구의 섬유 기업 지로(대표 이영준)다. 지로는 2023년 설립된 신생 섬유기업이지만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소재 혁명에 협력한 곳으로 유명하다. ‘플라이니트’ 프로젝트에 원사를 납품하는 나이키의 공식 협력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이영준 대표의 아버지는 글로벌 아웃도어 기업에 원사를 공급했고, 할아버지는 목장갑용 특수 원사를 개발해 전국 400여 개 업체에 독점 공급한 전문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원사 개발과 수출 및 경영 능력을 물려받은 이 대표는 실제로도 균등한 품질의 긴 원사 생산력과 재활용 기술로 나이키의 인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로, 나이키가 인정한 3대의 기술력 · 재활용 노하우
직접 개발한 원사는 나이키의 신발 제조에 사용되고, 나이키 신발 제조 과정에서 생긴 데드 스탁을 재활용해 장갑을 만드는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지로에서 만든 재활용 장갑에는 ‘나이키 그라인드(나이키의 순환 프로그램 인증 마크)’가 붙어 있고, 이 상품은 국내는 물론 일본의 대형 편의점 로션과 세븐일레븐 등에 입점돼 있다. 국내 섬유 산업이 매우 어렵다고는 하지만 기술 혁신을 지속하고 시대에 맞는 아이디어를 결합하면 길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한국 고유의 감성과 창작을 담은 텍스타일 디자인으로 미국 시장을 사로잡은 소재 기업도 있다. 올해로 20년째 디자인 원단 개발에 집중해 미국 내 주요 4개 주에서 1위 거래처를 가 된 Y&K투게더(대표 공경식)다. 이 회사는 숙련된 인력과 효율적인 기계 작업, 창의성을 강점으로 삼은 소량 생산, 차별화된 디자인 등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선진국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도 빼놓을 수 없다.
Y&K투게더의 주력 생산품은 퀼트와 홈패션용 원단이다. 특히 퀼트는 예쁘고 차별화된 문양, 완벽한 테두리 마감으로 인정받아 미국 4개 주에 매년 수백만 야드를 수출하고 있다. 앞으로는 단순 수출을 넘어 한국 텍스타일 헤리티지를 강조한 고유 디자인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목표다.
일신방직 × 제클린, 섬유 순환형 재생 모델 구축
서로 다른 기술력을 가진 기업 간 협업 사례도 있다. 특히 섬유 제조 및 방적 기업 일신방직(대표 김정수)과 기후 테크 스타트업 제클린(대표 차승수)의 협업이 눈길을 끈다. 일신방직의 방적 기술에 제클린의 섬유 수거 및 재생 노하우를 결합해 기존 섬유 제품의 물리적 재생 품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리피트’라는 이름의 원사 브랜드를 함께 전개하고 있다.
일신방직은 1990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에서 유일하게 멜란지 원사(Melange Yarn)를 생산하는 곳이다. 전문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원사부터 편직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면, 폴리에스터, 레이온, 모달, 텐셀, 혼방 멜란지 등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제클린은 호텔, 기업 및 학교 기숙사, 군부대, 지자체 등에서 발생하는 섬유 폐기물을 고품질 원사로 재탄생시키고 그것을 침구, 의류, 생활용품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곳이다. 일신방직은 제클린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해 공급처가 다시 수요처가 될 수 있는 순환형 재생 모델을 함께 구상하고 실행 중이다. ‘친환경 탄소 저감 원사’를 중심으로 글로벌 섬유 시장에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제니 티셔츠로 빵 터진 에이엠컴퍼니와 길라아카이브
효성티앤씨와 ‘젝시믹스’ ‘노스페이스’, 라이크라와 ‘안다르’ 등 대형 소재 기업과 브랜드 간 협업 사례가 더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로컬 인프라를 활용한 국내 기업과 국내 브랜드의 파트너십도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에이엠컴퍼니(대표 강태정)와 패션 브랜드 ‘길라아카이브’를 들 수 있다.
이 두 브랜드의 협업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지난 8월 초 블랙핑크 제니가 파리 여행 때 입어 화제를 모은 ‘시어 롱 슬리브 티셔츠’다. 위드에이엠이 국내에서 원사를 짜고 염색하고 원단을 가공하면 길라아카이브는 상품 기획 후 국내에서 봉제와 프린팅 공정을 거쳐 상품을 완성한다. 이들의 협업은 인건비 등 생산 단가 경쟁으로 인해 국내 섬유 및 패션 제조 인프라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로컬 밸류 체인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손꼽힌다.
대구 · 경북 지역의 섬유 기업 활성화를 위해 활동 중인 대구섬유마케팅센터(센터장 류재욱, 이하 DMC)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지역 내 섬유 기업의 성장을 위해 원단 가공 업체, 브랜드, 3자를 잇는 파트너십 구축에 힘쓰고 있다. K-패션이 세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3자 협업을 통해 원사, 상품기획, 봉제 등을 모두 한국에서 진행하는 ‘진정한 K-패션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DMC, 대구 지역 내 섬유 기업 중심 3자 협력 체제
DMC는 2021년 ‘FCMM’, 2023년 ‘모두의신상’과 성공적인 협업을 선보이며 온라인 스트리트 브랜드와 동대문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대구 섬유 기술의 활동 영역을 넓혔다. 대구는 화섬에 약하다는 평이 있지만, 다루는 원사와 원단에 따라 ‘노스페이스’ ‘자라’에서 특정 라인의 원단 개발을 전적으로 맡길 만큼 기술력이 있는 기업도 많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K-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피스피스스튜디오(대표 박화목 · 서승완)의 ‘마르디메크르디’도 원사 편직 및 봉제 파트너들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 상품인 스웻셔츠와 로고 니트 등의 빠른 납품과 고객 응대를 위해 15개 국내 업체와 크루처럼 파트너십을 맺어 납품 물량과 빠른 납기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수출 물량이 증가하면서 국내 파트너들과 협업을 더욱 단단히 다져 품질을 균등히 하는 한편 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반영해 상품력을 업그레이드한다. 대물량은 해외 생산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더 수월하지만, 주문이 줄면 국내 섬유 및 패션 제조 기업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운영에 이롭지 않다는 판단하에 지역 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효성티앤씨 × 무신사어스, 친환경 소재 사용처 늘려
노스페이스와 젝시믹스 등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소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영업 효율을 높이고 있는 효성티앤씨는 최근 친환경 패션 시장 확대를 위해 무신사(대표 조만호·박준모)와 손을 잡았다. 무신사의 지속가능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플랫폼 ‘무신사어스’를 통해 효성티앤씨의 리사이클 섬유 ‘리젠’의 사용처를 넓히기 위함이다.
무신사어스는 무신사 입점 브랜드 중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거나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을 고수하는 곳을 모아놓은 곳인데, 효성티앤씨는 이번 협약을 통해 무신사 입점 브랜드 상품에 리젠을 확대 적용한다. 젊은 세대는 물론 현재 패션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무신사와의 협업으로 국내 패션 시장에 친환경 소재 사용을 늘리고 재활용 소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생각이다.
긍정적인 것은 ‘파타고니아’나 ‘프라이탁’처럼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던 친환경 철학을 가진 패션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폐기된 소방복이나 호스 등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119레오’ 등이 패션으로 인기를 얻고 있고, 소규모 브랜드는 물론 친환경 아웃도어 ‘티켓투더문’ 이나 ‘코토팍시’가 론칭과 동시에 국내 소비자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K-패션 파트너로서 기능 · 지속가능성 · 디지털 고루 강화
올해는 산업통상자원부, 한국패션산업협회, 한국섬유수출입협회가 협업해 한국 패션 소재로 만든 상품의 생산액 및 부가가치 확대를 위해 4월부터 연말까지 ‘K-섬유 패션 스트림 협력 강화 및 수출 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다. 국내 브랜드와 협업 가능한 중소 섬유 소재 기업을 지원하며, 브랜드 수요에 맞는 맞춤형 소재를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일부에서는 섬유와 패션 관련 기관이 많다 보니 지역별 · 기관별 경쟁으로 인해 넓은 의미의 협력이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는 평도 있다. 진행 사업에 따라 기관별 사업 지원금이 나오는데, 지역이나 관이 협력할 경우 정부에서 지급되는 지원금이 통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 상반기 국내는 물론 글로벌을 뜨겁게 달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 비결은 소니픽처스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기업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국의 정서를 갖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활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국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소재 기업들이 패션을 만드는 재료이다 근간으로써 K-패션은 물론 글로벌 패션 콘텐츠의 성장을 함께 하는 단단한 경쟁력을 갖게 되길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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