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투쟁해 봤자 허사라고 말하지 말라
최근 아내와 함께 본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Hope Gap, 2022)이라는 영화는 결혼생활 29년 차가 된 부부가 겪게 되는 갈등과 이혼, 그 두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받고 성장해 나아가는 아들의 이야기다.
내성적인 역사 교사 남편 에드워드(빌 나이)와 시를 엮는 쾌활한 부인 그레이스(아네트 베닝), 그들의 아들 제이미(조시 오코너)가 주인공이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부부가 흔히 겪을 수 있는 현실의 이야기였다.
1박2일의 섬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와 주말 아침에 아내와 함께 그 영화 호프갭을 봤다. <글래디에이터>의 각본을 쓴 윌리엄 니컬슨 감독의 영화답게 영국 해안마을의 풍경과 바닷가 절벽의 경치를 매우 훌륭하게 촬영해 그 아름다운 영상만으로도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내성적인 남편 에드워드는 언제나 아내가 원하는 요구와 기대에 맞춰주고 살아왔지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사랑이었을까?”란 영화 포스터의 카피가 보여주듯이 늘 회의가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과 사별한 학부모인 “안젤라라는 새 여자가 생겼다”며 아들과 아내에게 이혼을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 아내의 일방적인 요구와 기대에 말없이 부응해 왔지만, 그 문제를 직접 마주하거나 투쟁하지 않고 회피해 왔으며 그저 벗어나려고만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갑작스러운 남편 에드워드의 행동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내와 그런 부모의 현실이 혼란스럽기만 한 아들 제이미를 지켜보면서 매우 객관적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연인이든 부부든, 두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많은 대화와 솔직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대방의 지나친 요구와 기대에 타협하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거짓 평화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잘못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결국 어느 순간에 뒤통수를 칠 수밖에 없는 비겁하고 의리 없는 인간이 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면 이 영화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속 좁은 자신이 겪었던 모든 상처를 상대방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치고 한꺼번에 되갚는 것은 인간실격이며 상대방이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남편의 새 여자 안젤라가 아내 그레이스를 만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아내 그레이스가 내 남편을 뺏어갈 권리가 없다고 말하자 안젤라는 “예전엔 세 사람이 불행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만 불행하네요”라고 말했고, 그레이스는 문을 닫고 나온다. 그리고 아서 휴 클라우의 ‘투쟁해 봤자 허사라고 말하지 말라’는 시의 자막이 흐른다.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뒤통수를 치는 게 제일 나쁜 짓이다. 음흉하지 말고, 쓰면 쓰고 달면 달다 말을 해야 한다.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싸우기 싫어서 문제를 회피하고 벗어나려고만 하면 끝은 결국 뒤통수를 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처럼 마음이 좁으면 문제가 커지고 마음이 넓으면 문제는 작아진다. 오랫동안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