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공실률 44% 가로수길, ‘나로수 · 다로수길’로 반등할까?
공실률 44%를 기록하며 ‘공실의 거리’로 추락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이 세로수길과 더불어 나로수길, 다로수길로 다시 반등에 나서고 있다. 메인 스트리트는 임대 문의와 깔세 안내문이 빼곡하지만, 세로수길에는 패션 · 뷰티 브랜드가 속속 모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임차료가 비교적 낮은 ‘나로수길 · 다로수길’로 소비와 유동인구가 확장되고 있다.
한때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패션 스트리트 상권으로 각광받던 가로수길이 올해 2분기 공식률 44%를 기록하며 옛 명성이 무색해졌다. 쿠시먼앤웨이크필드코리아에서 발표한 ‘2025년 2분기 서울 리테일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가로수길 공실률은 1분기 41.6%에서 2.3%p 상승한 43.9%로 공실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인근 청담 상권은 동기간 15.7%에서 13.4%로 2.3%p 하락하면서 가로수길과는 대조적이다. 청담은 최근 ‘제이린드버그’ ‘바쉐론콘스탄틴’ ‘마이바흐’ 전용 전시장 등 럭셔리 브랜드의 신규 입점이 잇따르면서 공실률이 낮아지고 있다. 가로수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가로수길 상권은 패션과 트렌드를 선도한 압구정 로데오 상권의 높은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한 개인(디자이너)이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을 통해 가로수길은 점차 개성 있는 소규모 브랜드와 독창적인 감각의 디자이너 매장이 모인 힙한 거리로 변모했고, 이후 ‘유니클로’ ‘코스’ ‘망고’ 등 글로벌 SPA 브랜드가 하나둘 입점하면서 상권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인근 청담 상권과는 대조적, 무엇이 문제인가
젊고 트렌디한 상권으로 승승장구하던 가로수길은 2018년 애플스토어 입점으로 서울 대표 상권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가속화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애플스토어를 통해 상권의 프리미엄화와 집객 효과는 있었지만 주변 건물 임차료가 기하급수적으로 덩달아 올라 상권이 크게 변화했다.
이후 글로벌 및 대기업 브랜드의 입점과 철수를 반복하다 코로나19 시기에 직격탄을 맞고 회복하지 못했다. 여기에 성수·한남 · 도산공원 등 새롭게 떠오르는 상권에 유동인구를 빼앗기며 공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가로수길 인근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석현 대표는 “가로수길 메인 거리는 49.5~66㎡(약 15~20평)로 월 임차료는 1200만원이며 평당 시세가 100만원 언저리다. 여기에 관리비로 100만~200만원이 더 추가되다 보니 임차인들은 이면 도로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메인 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했던 한 건물은 코로나19 이후 3년째 공실이다. 이 지역 건물주는 가로수길이 형성되기 전부터 건물을 보유한 경우가 많고 여러 채의 건물을 갖고 있어 수익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또 고령의 나이로 매도를 고려하는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낮추면 건물 가치가 떨어져 기대하는 수익률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가격을 쉽사리 낮추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가로수길 메인거리에는 글로벌 및 대기업 브랜드만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가로수길 메인 거리, ‘글로벌 · 대기업’만 버틴다
이런 상황이 맞물리다 보니 가로수길은 애플스토어를 비롯해 높은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는 ‘랄프로렌’ ‘올리브영’ ‘MLB’ ‘아디다스’ ‘아르켓’ ‘에잇세컨즈’ ‘캐리마켓’ 등 글로벌 및 패션 대기업 브랜드만이 매장을 유지하고 있다.
높은 가격에도 이들이 매장을 유지하는 이유는 외부 파사드를 활용한 광고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고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MZ세대를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랄프로렌과 아르켓 등은 패션과 F&B를 결합한 복합매장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동인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높은 임차료를 피해서든 비슷한 업종의 브랜드들이 한데 모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네이버링(Neighboring)’ 효과를 노리든 개성 있는 브랜드들이 세로수길로 모여들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젠틀몬스터’ ‘블루엘리펀트’ ‘아더에러’ ‘칼하트’ ‘오니츠카타이거’ 등 패션 & 잡화 브랜드부터 ‘탬버린즈’ ‘논픽션’ ‘메종마르지엘라 프래그런스’ ‘바이레도’ 등 뷰티 & 향수 브랜드까지 가로수길 상권이 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세로수길이 각광받으며 메인 거리 양쪽이 속속 채워지고 있다.
세로수길로 모여드는 패션&뷰티 브랜드
‘함께 모여 시너지’ 브랜드 네이버링 효과 노려
세로수길에 위치한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 직원은 “매장을 방문하는 관광객 비중은 중국과 일본이 가장 많고 최근 유럽과 중동 고객도 늘어났다”라면서 “전년대비 외국인 트래픽은 50% 정도 줄었는데 이는 7~8월이 외국인들에게 한국 여행 비수기 시즌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 성수기로 접어들고 중국 무비자 입국까지 허용되면 상황이 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식스코리아(대표 김원무)의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 오니츠카타이거는 지난 6월 기존 가로수길 매장에서 직선거리로 180m 떨어진 곳에 3층 규모의 2호점을 오픈했다. 오니츠카타이거 매장 직원은 “주중·주말 상관없이 하루 평균 300명 정도 매장을 방문한다. 중화권 관광객이 전체 60%를 차지하고, 북미·유럽 쪽 관광객이 30% 정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화권 소비자들은 오니츠카타이거 내에서도 고가 라인을 선호하고 국내 소비자는 기본 라인을 구매하는 편이다”라고 답했다.
왁티(대표 강정훈)는 세로수길 인근에 본사 사옥을 비롯해 스포츠 ‘골스튜디오’, 향수 ‘SW19’, 골프웨어 ‘매드캐토스’ 등 매장 3개를 운영하고 있다. 왁티 관계자는 “향수 브랜드인 SW19는 세로수길 향수·뷰티 브랜드들과 시너지가 커 외국인 20대 여성 고객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골스튜디오 매장에는 스폰서십을 맺은 e-스포츠팀 ‘T1’의 굿즈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외국인 고객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라고 답했다.
세로수길로 모여드는 패션 / 뷰티 / F&B 브랜드
세로수길도 ‘매스화’ 임차료 가로수길 수준으로
이어 “2016년부터 매장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 가로수길 메인 거리가 과거에 비해 패션 브랜드가 많이 빠져서 더 이상 패션 상권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다. 이에 비해 세로수길은 젠틀몬스터와 탬버린즈 같은 감도 높은 브랜드들이 트래픽을 견인하고 있어 선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변화된 상권에 대해 말했다.
세로수길도 빠르게 매스(Mass)화가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는 메인 스트리트의 임차료가 서브 라인보다 훨씬 높지만 가로수길과 세로수길의 경우 임차료 수준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세로수길이 더 높은 경우도 있다.
세로수길에서 씨티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박준혁 소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세로수길 메인 라인은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66㎡(약 20평) 기준 월세는 최소 800만~1000만원, 보증금은 8000만~1억5000만원 정도 잡아야 한다. 최근에는 관광객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1층 상가에서 장사하려는 임차인들의 문의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단순 쇼핑에서 끝났으나 현재는 한국 저녁 문화를 즐기기 위해 이 근방 음식점에서 줄을 서는 관광객들도 생겨 저녁 트래픽도 꽤 몰리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향수부터 스포츠·골프까지 다양한 카테고리의 브랜드가 모여들고 있다
저렴한 임차료 ‘나 · 다로수길’로 수요 확산
최근 성수나 한남 등 떠오르는 상권의 특징은 반드시 메인 스트리트가 아니더라도 이면 도로에 위치한 작은 건물, 내국인들이 실제 생활하는 공간, 아기자기한 매장이나 카페 등이 외국인 관광객이나 MZ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세로수길 · 나로수길 · 다로수길은 서울 특유의 골목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방문객들이 ‘재미있게 찾아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강남이라는 입지적 장점과 함께 이 지역이 피부 미용의 중심지로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면 도로 상권으로도 소비자들이 확산되고 있다.
나·다로수길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나로수길·다로수길로 F&B 매장, 소규모 패션 및 액세서리 브랜드, 디자이너숍, 엔터 사무실 등이 들어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지역은 1층 기준 평당 시세 20만~30만선을 형성하고 있다. 지상층은 이보다 저렴한 평균 13만~15만원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로수길 메인 스트리트의 임차료가 주로 패션이나 리테일 브랜드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나로수길과 다로수길은 상대적으로 개인 소상공인도 충분히 접근 가능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나·다로수길은 패션보다는 F&B 브랜드가 모여드는 흐름이 뚜렷하다.
가로수길, 세로수길 대비 임대료가 저렴한 나·다로수길로 수요가 확산되고 있다
F&B · 소규모 브랜드 중심, 저녁 소비 이끌어
‘매덕스피자’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 ‘네기다이닝라운지’ ‘레이브릭스’ ‘샌드커피’ ‘파타고니아’ ‘로우클래식’ 러닝편집숍 ‘레이스먼트’ 등 나·다로수길 초입을 시작으로 반대편 현대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길까지 F&B부터 패션 등 다양한 매장이 혼재돼 있다. 이를 통해 다시금 주말 저녁 소비자를 이끌어내며 한동안 ‘재미없어졌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가로수길 상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새롭게 매장을 오픈하거나 공사를 진행 중인 곳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신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임차자문팀 이사는 “상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재편되는 흐름을 보인다. 압구정 로데오가 도산공원으로, 삼청동이 북촌으로 확장된 것처럼 가로수길도 현재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세로수길이나 나·다로수길이 성수나 한남처럼 폭발적인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향후 주목할 만한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한다. 또 강남권이라는 입지적 장점과 메디컬 특화 구역이라는 특징은 여전히 가로수길이 가진 중요한 경쟁력이다. 과거에는 패션 중심으로만 소비가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메디컬과 뷰티로 확장되며 상권의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나·다로수길은 F&B 업종이 강세이지만 곳곳에 패션·뷰티·잡화 등 다양한 브랜드가 생기는 중이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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