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꾸는 패션산업의 현재와 미래는?
“AI는 인간이 담당해 온 패션 속 과학을 기계의 손에 넘겼다. 이제 인간은 패션의 본질인 예술에 집중할 수 있다.” 전 니만 마커스 임원 그레그 플린(Greg Flinn)은 AI가 패션산업에 가져오는 혁명적 변화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 냈다.
패션은 언제나 ‘과학보다는 예술’이었다. 패션은 신체 보호나 기능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미적 욕망, 아비투스, 자아 표현의 수단이었기에 사람들이 실용성과는 무관하게 패션을 소비해 왔다. 이러한 특성은 패션산업의 제조와 마케팅이 지닌 미스터리를 설명해 준다. 패션산업은 창의성과 장인정신, 소비자 경험과 판매 기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산업이다.
하지만 패션 머천다이징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예술적 표현 뒤에 숨어 있는 ‘과학’을 알고 있다. 이 과학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현재 패션산업은 데이터 분석과 AI 기술의 도움을 받아 트렌드를 예측하고 매출을 올리며, 심지어 디자인의 보조 도구로써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24년 2월 매킨지와 BOF(Business of Fashion)가 공동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패션업계 임원의 73%가 생성형 AI를 비즈니스 우선순위로 꼽았고, 이미 절반 이상이 AI를 실제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t)는 패션산업 내 AI 시장이 2018년 2억7000만달러에서 2027년 44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이는 연평균 37%의 놀라운 성장률을 의미한다.
패션산업 내 AI 시장규모 2027년 44억 달러
그럼에도 AI는 패션의 예술성을 대체하지 않는다. AI는 반복적인 작업과 분석 작업을 자동화함으로써 디자이너의 본연인 창의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패션산업에서 AI의 활용은 트렌드 예측, 마케팅, 고객 서비스, 재고관리, 디자인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AI는 패션산업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예를 들어 인디텍스(CEO 오스카 가르시아 마세이라스)의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는 AI 기반의 시장 트렌드 분석과 수요 예측을 통해 패션산업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자라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 온라인 매출은 2019년 262억달러에서 2020년 441억달러로 69% 증가했고, 2021년에는 533억달러로 21% 증가했다. 2024년에는 570억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오프라인 매장 수는 2020년 2866개에서 2024년 2221개로 22% 줄었다.
자라는 2018년부터 AI 기반 이메일 마케팅 기업 젯로어(Jetlore), 빅데이터 분석 기업 엘 아르테 데 메디른(El Arte de Medirn)과 협력하며 IT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특히 프랑스 AI 스타트업 휴리텍(Heuritech)을 통해 매일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300만개의 이미지를 비전 AI와 딥러닝 기술로 분석해 시장 조사를 진행한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아날로그 시장 조사에서 디지털 기반의 AI 시장 조사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루이비통’ ‘디올’ ‘프라다’ ‘뉴발란스’ ‘몽클레어’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도 휴리텍의 주요 고객이다. 또한 자라는 패스트 패션에서 ‘지속가능한 패션’으로 변화해 가는 소비자들의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과잉생산을 줄이는 방법으로 AI를 활용해 수요 예측 정확도를 높이며 생산량의 85%를 현재 시즌 내에 맞춰 생산하고 있다.
자라, AI 기반 시장 트렌드 분석과 수요 예측
제품 개발과 혁신 영역에서도 AI는 창의성의 한계를 확장하고 있다. 일부 브랜드는 판매 데이터와 최신 트렌드를 기반으로 컬렉션 전체를 AI와 함께 디자인하거나, 고객들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공동 창작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며 브랜드와의 감정적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구찌와 샤넬 같은 럭셔리 브랜드는 AI를 활용해 별도의 추가 촬영 없이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의 사실적인 제품 이미지를 생성해 제품 출시 속도를 높이고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마케팅 영역에서도 AI의 존재감은 확연하다. 리복과 베르사체 등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패션 이미지 캠페인을 통해 모델, 포토그래퍼, 로케이션 촬영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했다. 베터스튜디오 같은 기업은 의류 사진을 업로드하면 다양한 AI 모델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해 해당 브랜드 옷을 입은 가상 패션 모델 이미지를 자동으로 생성한다. 또 생성형 AI를 활용한 웹페이지 A/B 테스트는 헤드라인 배치, 텍스트 내용, 버튼 크기, 레이아웃 등의 다양한 조합을 가진 웹페이지를 여러 벌 생성하고 이를 비교해 사용자 반응이 가장 좋은 버전을 선택하게 해 준다.
고객 경험과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AI는 혁신을 이끌고 있다. 고객이 쇼핑몰에 로그인하면 구매 이력, 검색 행동, 탐색 행동, 장바구니 데이터, 고객 리뷰 등을 바탕으로 AI가 분석하고 생성형 AI는 콜센터 직원에게 반품 처리 시 사용할 스크립트를 제공한다. 또 개인화된 추천 시스템으로 다음에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보여주거나 SNS의 고객 셀피 기반 스타일 제안으로 구매전환율을 높이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AI는 진열 방식, 표지판 레이아웃이나 바쁜 시간에 능률적인 직원 배치 최적화를 통해 매출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AI 기반 챗봇은 고객 응대와 스타일 추천까지 담당하며 ‘디지털 쇼핑 도우미’ 역할을 수행한다.
공급망과 물류도 AI의 주요 적용 분야다. AI는 재고 흐름, 창고 배치, 물류 운송 일정 등을 최적화해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인다. 일부 브랜드는 자연재해와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대체 물류 경로를 미리 시뮬레이션하기도 하며, 원단 낭비를 줄이기 위해 재단 패턴 배치에도 AI를 활용한다. 지역별 판매량 예측을 기반으로 초도 배분 최적화, 매장 성과 분석을 위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의 대시보드를 통한 실시간 매출 및 재고 모니터링도 가능하다.
AI는 패션 비즈니스 변화 이끄는 도화선
머신러닝, 딥러닝,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은 패션산업에 명백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ERP, SCM, CRM 시스템에 내장된 AI는 반복적이고 분석적인 작업을 자동화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AR/VR 기술, 추천 시스템, 챗봇 등이 소비자 경험을 향상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챗봇과 이미지 그리기의 생성형 AI는 텍스트 입력만으로 콘텐츠를 만들거나, AI 에이전트로 진화해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작업을 완수할 수 있다. 이 경우 인간은 AI 에이전트의 결과를 결재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협력자’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생성형 AI의 코딩 수준이 1~3년 차 개발자 실력을 능가하고, 생성형 AI가 창조한 이미지가 충분히 창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경험 많은 상품 기획자는 AI가 제공하는 데이터 기반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디자이너는 점점 더 AI가 제안한 디자인을 큐레이션하는 방식으로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이는 기존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접근 방식과는 다르지만,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성과 창의성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좋은 코딩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고급 개발자의 개입과 검토가 필요하며, 양질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AI가 조사한 것을 책임감 있게 감수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의 지혜가 필수적이다. AI가 초기 작업한 단순한 도식화 이미지는 패션 감성의 시작점일 뿐이다. 재단과 봉제, 퀄리티 있는 제품 생산, 가치를 부여한 마케팅, 고객 경험을 극대화한 판매 등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노련미와 예술성이 결합될 때 인간과 AI의 협업은 비로소 실현된다.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패션 비즈니스의 근본적 변화를 이끄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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