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명선 l 기빙플러스 ESG위원장 '앞으로 모든 것이 지속가능성 위주로 바뀐다'
2028년부터 유럽연합(EU) 시장에 진출하는 모든 의류에는 ‘내구성’과 ‘정보제공’ 기준이 의무화된다. 더 나아가 섬유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이력을 추적하는 디지털 제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이하 DPP) 제도가 시행된다. 제품 하나가 소비자 손에 닿기까지 원자재, 탄소배출량, 재활용 가능성 등 모든 데이터가 투명하게 기록되고 공유돼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 섬유 · 패션 산업계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7월 초 서울 코엑스마곡에서 열린 ‘한-EU 에코디자인 포럼’에서 섬유제품에 대한 EU의 ‘지속가능 제품 에코 디자인 규정(ESPR)’을 소개하면서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며 펼쳐질 상황을 예고했다.
EU가 준비 중인 DPP는 모든 브랜드가 공급망 전 단계의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단순히 한 기업만의 소유가 아니라 세관과 감독기관 등 모든 관련 기관이 열람할 수 있는 공공 자산으로 관리된다. 이는 기업 측에서 엄청난 부담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제품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소비자는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브랜드를 선택한다. 신뢰받는 브랜드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브랜드는 시장에서 도태된다.
이미 글로벌 기업인 유니클로의 경우 ‘아리아케 프로젝트’를 통해 원재료, 생산, 유통, 판매, 재활용까지 연결하는 선순환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며 ESG 경영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 2021년부터 지속적으로 ‘버린 것을 다시 쓰는’ 수준을 넘어 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재활용과 재사용을 고려한 설계, 전사적 공급망 관리, 소비자 참여를 결합한 선순환 구조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10년 차 사회적기업 제클린의 선순환 모델이 주목된다. 버려진 원단이나 폐의류를 수거해 새로운 디자인의 업사이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동시에 제주 지역 ‘춘강’ 등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지속가능한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제클린의 모델은 지역사회와 함께 폐자원을 모으고 이를 선별 · 분류해 가치 있는 상품으로 재생산하며, 판매 수익을 다시 지역과 나누는 구조다. ‘메이드인 제클린’으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 생산만 고집하고 있는 등 순환경제가 단순한 친환경 실천을 넘어 사회적 가치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모든 기업에 적용하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EU는 2026년까지 법안을 마무리하고 이후 18개월의 준비 기간을 준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야 ‘데이터가 없다’거나 ‘기술이 부족하다’ 등 현실을 파악하는 단계다. 이대로라면 글로벌 규제 대응에서 경쟁력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다. DPP에 대비해 데이터 호환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공급망 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내구성’을 포함한 품질과 설계 단계부터 재사용과 재활용이 용이한 디자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북유럽처럼 ‘순환 디자인 전환교육 프로그램’을 기업 내부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재활용 원료에 대한 가격과 품질 기준을 조율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필요하다. 정부와 산업계는 실시간 통계 시스템을 갖추고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EU 규제는 단순한 법적 대응 수준을 넘어 브랜드의 지속가능 경쟁력과 직결된다. 규제는 더 정교해지고, 소비자는 더 똑똑해지고 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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