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5.08.01 ∙ 조회수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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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27-Image


지난해 여름의 끝자락, 영화 <행복의 속도(2021)>를 보고 오래전 예약해 둔 도쿄에서 100㎞ 떨어진 오제습지 트레킹을 취소해야 될지 결론을 못 내린 채 난카이 대지진 뉴스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행히 여행 일주일 전 오후 5시에 일본 기상청은 대지진 주의보를 해제했지만 생필품을 준비하고 대지진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했다. 


다음에 갈 수도 있었지만,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진 · 해일의 위험이 덜한 오제국립공원의 해발 1500m 산속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정대로 오제습지 트레킹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발했다. 두 시간 남짓 걸리는 도쿄까지 기내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나면 도착하겠지 싶어 기내 영화 목록을 살펴봤다. 


영화 목록 중에서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를 발견했다. 비행기가 택싱(Taxiing)할 때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오제 트레킹을 다녀온 후 영화관에서 다시 그 영화를 보았음은 물론이다. 


1990년대 초, 바쁜 나 대신 영화로 외로움을 달랜 아내 덕분에 영화에 빠져 많은 영화 관련 서적을 읽었다. 또한 아내가 비디오가게 주인에게 부탁해 빌려온 많은 명작 영화를 봤었다. 그때 좋아했던 영화감독들 중의 한 명이 영화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연출한 빔 벤더스 감독이다. 일본 영화 <셸위댄스(Shall We Dance, 2000)>로 처음 만났던 영화배우 야쿠쇼 코지는 2023년 칸영화제에서 <퍼펙트 데이즈>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든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에서 일하는 청소부 이야기다.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고지)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 테이프로 올드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을 찍고, 퇴근 후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저녁과 함께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루틴이 함께 일하는 젊은 동료의 여자 친구가 등장하는 순간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조카딸이 가출해 찾아오면서 깨진다. 그리고 주인공 히라야마의 평정심이 무너지고 만다. 아마도 두 시간의 영화 중 전반부는 비디오를 반복 재생해 놓은 줄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하루의 루틴이 매일 반복됐다. 


루틴한 일상 중 간간이 매번 다른 올드팝송이 카세트에서 리플레이 됐다. 영화 <접속(1997)>의 OST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갈망을 노래한 ‘Pale blue eyes(The velvet underground)’와 미국 구전가요지만 존 바에즈와 밥 딜런도 부른 헛되이 보낸 인생을 한탄하는 ‘House of the rising sun(The animals)’은 매우 귀에 익숙한 노래라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모티브가 되기에 충분했다.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회사 생활을 끝내고 매일의 루틴이 있는 소중한 일상을 생활하고 있는 내 모습이라서 크게 낯설지 않았다. 단지 그 영화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한 출근만 없을 뿐, 스스로 몸에 체화된 미니멀한 하루의 루틴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남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지 않을 때 삶은 더욱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차피 인생은 무한 반복의 삶일 뿐이니까.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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