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광철 l 국제패션디자인학교 교수 겸 에코그램 부사장 '패션스타트업 헤게모니, 혁신? or 새로운 질서?'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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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광철 l 국제패션디자인학교 교수 겸 에코그램 부사장 '패션스타트업 헤게모니, 혁신? or 새로운 질서?' 27-Image


패션산업에서 스타트업은 이제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헤게모니(Hegemony)로 하는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기존 브랜드와 유통의 질서를 혁신과 새로운 질서로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들의 행보는 수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질서와 권력이 형성되고 있다.


패션 스타트업에서 헤게모니의 사례로 패션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무신사를 들 수 있다. 무신사는 2001년 스니커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로 시작했다. 무신사는 2024년 매출 1조원을 넘기며 패션 플랫폼의 강자로 성장했다.


이 플랫폼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다.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입점 브랜드를 선별하고, 메인 페이지 노출 여부를 결정한다. 입점 여부가 브랜드 생존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지금, 무신사는 브랜드에 기회를 제공하는 ‘문지기’가 됐다. 새로운 스타트업이 등장해 기존 질서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무신사 자체가 새로운 질서가 된 것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미국의 스티치 픽스(Stitch Fix)는 AI 기술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예측해 옷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은 스타일리스트가 추천한 옷을 집에서 받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점점 더 알고리즘이 제시한 스타일에 익숙해지고, 결국 스타일의 기준이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데이터가 된다. 이는 취향의 자유로움을 억제하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 것이다.


브랜디와 지그재그 같은 여성 패션 중심 스타트업도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이들 앱은 라이브 커머스, 인플루언서 마케팅, 개인화 추천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했다. 이런 편리함 뒤에는 스타트업들이 구축한 알고리즘적 질서가 존재한다. 브랜드와 셀러는 이들 앱의 규칙을 따라야 하며, 인기 셀러에게 판매가 집중되는 구조로 인해 기회는 평등하지만 결과는 불평등해지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기업은 중국의 쉬인이다. 이 회사는 하루 수천 개의 상품을 업로드하며, 소비자 반응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는 초고속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쉬인은 기술과 자본, 공급망을 결합해 전 세계 Z세대의 취향을 장악하고 있으며, 단기간에 글로벌 패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쉬인의 구조는 환경 파괴와 저임금 노동이라는 문제를 동반하며, ‘성장’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윤리적 질문을 남긴다.


이렇듯 다양한 패션 스타트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혁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들이 세운 시스템은 결국 또 다른 중심과 위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혁신은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지금의 패션 스타트업들이 만든 구조는 오히려 다양성을 위협하고, 선택의 자유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스타트업이 지닌 속도감, 창의성, 기술력은 산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다. 이들이 형성하는 ‘헤게모니‘, 즉 지배적 질서가 소수에 의해 통제되고 반복되는 구조로 굳어진다면, 결국 또 다른 불균형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정한 혁신은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중심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전환점 위에 서 있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7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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