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멀티숍 이야기(1)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 코코 샤넬 -
나는 17년 차 멀티숍 바이어이자 스페이스눌(Space Nulu)의 오너인 동시에 치프 MD다. 그리고 멀티숍을 운영하면서 단 한 푼도 벌지 못한 사람이다. 아니, 솔직히 정말 많은 돈을 까먹었다. 인지도도 좋았고 판매율도 높았으며, 실력도 자타가 공인했지만 수입 멀티숍만으로는 만성 적자의 늪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멀티숍을 사랑한다. 변화무쌍하고 새로운 패션을 향한 열망이 있는 한 멀티숍은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대로 지금도 국내외 다양한 멀티숍의 큰 고객이자 열렬한 예찬론자로 살고 있다. 패션 비즈니스의 냉정한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야심 차게 시작한 멀티숍 대부분은 적자에 허덕이다 문을 닫고, 다른 감성의 새로운 멀티숍이 끊임없이 그 자리를 대체하곤 한다.
그렇다면 패션인들이 이토록 강조하는 ‘멀티숍’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할까? 어째서 만성 적자이며, 수익 창출이 어려운 이 비즈니스를 도대체 누가 하는 걸까? 정말로 지속가능한 수익을 낼 수 없다면 대안적 수익 구조는 무엇일까?
예술가이면서도 철저히 사업가였던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와 하인즈케첩 등을 예술의 영역으로 들여와 광고와 예술의 경계를 허문 팝아트의 대명사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가 인생의 커리어를 1952년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데뷔해서 하이힐 등 여성 신발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백화점은 미술관과 비슷하다”라고 말하며, 더 나아가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라고 예술과 비즈니스의 관계를 규정했다. 예술과 비즈니스의 관계를 규정한 그의 말은 예술과 비즈니스의 경계를 허물어 예술의 대중성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추구한 그의 작업 철학을 잘 보여주는데, 이는 패션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패션은 비즈니스이자 예술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없는 예술은 지속될 수 없다."
이 글은 바이어로서 나의 경험과 다양한 멀티숍 사례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멀티숍 운영에 대한 실질적인 길잡이를 제시하는 글이다.
멀티숍이란 무엇인가?
멀티숍은 단일 브랜드 매장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여러 브랜드를 한 공간에 모은다는 점에서 ‘멀티 브랜드숍’, 줄여서 멀티숍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셀렉트숍’, 미국에서는 ‘스페셜티 스토어’ 등의 용어로 사용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멀티 브랜드 스토어’가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파리의 콜레트, 밀라노의 10꼬르소꼬모, 뉴욕의 블루밍데일즈 · 바니스뉴욕 · 헨리벤델처럼 대형화된 형태 등 단순한 브랜드의 집합을 넘어 고유한 콘셉트와 스타일을 제안하는 편집된 공간이 바로 멀티숍이다.
멀티숍은 왜 필요할까?
패션 브랜드는 대개 계절성과 아이템별 강점이 뚜렷하다. 에르노와 몽클레어처럼 겨울 아우터에 강한 브랜드는 여름 시즌에 약세를 보인다. 메리링과 보라악수 같은 브랜드는 드레스(원피스)가 주력이며, 일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는 재정적 문제로 인해 아우터 개발에 소극적인 경우도 많다. 또 기성복 브랜드는 대개 가방이나 신발 같은 액세서리류에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인다.
여기서 멀티숍이 빛을 발한다. 단일 브랜드가 충족할 수 없는 부분을 보완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링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모노 브랜드숍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파는 곳이라면, 멀티숍은 스타일을 파는 곳이다.
스타일을 편집하는 공간
멀티숍의 가장 큰 매력은 ‘바잉’이다. 편집숍의 바잉은 단순한 제품 유통이 아니라 하나의 패션 철학과 미학을 제안하는 작업이다. 바이어의 취향에 따라 멀티숍은 각기 다른 스타일을 지향한다. 나는 저서 <패션 MD 2: 브랜드 편>에서 멀티숍의 스타일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 스트리트 웨어풍의 유니섹스 스타일
• 페미닌 무드
• 차분한 미니멀리즘
• 맥시멀리즘 스타일
• 보헤미안룩
• 해체주의적 아방가르드룩
• 일본 브랜드 특유의 감성
•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이처럼 멀티숍은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바이어의 큐레이션을 통해 탄생하는 공간이다. 국내에서도 스페이스눌이나 에크루 같은 개인 숍들은 오너 바이어가 직접 브랜드를 셀렉트해 자신만의 미학을 반영한다. 분더샵과 톰그레이하운드 같은 대기업 편집숍들은 전문 바이어들이 트렌드와 상업성을 고려해 숍의 정체성에 맞춘 바잉을 진행한다. 때때로 멀티숍 바이어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유망 브랜드를 발굴하거나, 규모는 작아도 독창적인 아이템을 큐레이팅한다. 단순한 판매를 넘어 개성 있는 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다.
패셔니스타를 위한 유일한 공간
멀티숍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희소성’이다. 모노 브랜드숍과 달리, 멀티숍은 각 아이템의 수량이 많지 않다. 즉 많은 사람이 갖지 않은 나만의 독특한 아이템을 찾는 패션 마니아들에게 최적화된 공간이다. 따라서 고객층도 대개 대중적인 브랜드나 트렌드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다. 얼리어답터들의 리더, 패션계의 아이콘 칼 라거펠트도 멀티숍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콜레트는 내가 가는 유일한 패션 매장이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는 곳이다.”
멀티숍의 미래는?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스타일을 편집한다’라는 멀티숍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도 멀티숍은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 다양한 브랜드와 스타일을 큐레이션하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라는 코코 샤넬의 말처럼 멀티숍은 단순히 옷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플랫폼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패션의 최전선, 트렌드의 교차로인 멀티숍은 그 존재만으로도 패션계를 풍요롭게 하지만, 재무제표 앞에서는 늘 빈곤하다. 왜 이토록 아름다운 포맷이 존재의 당위가 분명한데도 이윤을 내지 못할까? 그렇다면 멀티숍의 지속가능성은 불가능한 것인가? 만약 지속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 호에 계속된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5년 5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