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란 등 급격한 내리막길 '벼랑 끝 명품 플랫폼' 대안 없나
명품 플랫폼 3사 앱 화면 (이미지=패션비즈)
한때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이상 스타트업) 후보로도 꼽혔었던 명품 플랫폼이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23년부터 뚜렷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이 업계는 최근 미정산 사태가 계속 불거지며 ‘제2의 티메프’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쟁점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발란(대표 최형록)의 정산 지연 사태가 터지면서다. 2015년 설립된 발란은 명품 패션을 중심으로 오픈마켓 기반 사업 모델을 구축하며 성장한 플랫폼이다. 2023년 4000억 규모의 거래액을 달성하는가 하면, 기업가치 3200억원을 평가받으며 몸집을 키웠다. 발란의 지난해 월평균 거래액은 300억원 내외로 드러났으며 전체 파트너사는 3500여개, 브랜드는 6000여개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명품 수요 감소 등 업황이 악화되면서 기업가치가 10분의 1로 떨어졌고, 여기에 투자 유치까지 지연되면서 단기적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사실 올 1분기까지만 해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발란은 지난 2월 실리콘투로부터 총 15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확장에 집중한다는 목표를 드러냈다. 1차로 75억원을 우선 투자 받고, 나머지는 실리콘투가 내건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추가로 지급되는 구조였다.
실리콘투 150억 유치했던 ‘발란’ 추가 확보 실패
조건은 '직전 2개월 연속 직매입 매출 비중 50% 이상', '2개월 연속 월 영업이익 흑자' 등이 있었다. 그러나 발란은 이를 충족하지 못해 나머지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최형록 발란 대표는 “올 1분기 내 계획했던 투자 유치를 일부 진행했으나 당초 예상과 달리 추가 자금 확보가 지연돼 단기적인 유동성 경색에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발란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전 일부 입점사에 정산대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못해 논란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요가 급감하자 마케팅에 과도한 비용을 들였고, 2023년 결국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정산대금 지연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입점 업체들이 최형록 발란 대표를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 3월 말 정산 지연 사태를 시작으로 상품 결제 서비스 중단, 법정 관리까지 약 일주일 만에 이 모든 과정이 이뤄진 셈이다. 정산 지연 당시 발란은 자체 재무점검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재개 일정을 다시 공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발란의 결제 서비스는 모두 중단됐고, 연이어 기업회생절차 신청에 대한 최 대표의 입장문이 발표됐다.
발란 로고
수익성 개선 집중했지만 ‘머트발’ 모두 적자
서울회생법원은 지난달 4일 발란의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발란의 미정산 금액 규모는 13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란은 오는 6월 27일까지 회생계획안을 제출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법원이 회생 인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만일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파산하게 된다. 최형록 발란 대표는 회생계획안 인가 전 외부 인수자를 유치해 현금흐름을 대폭 개선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인수자 찾기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관측이다.
연일 국내 명품 플랫폼 1위를 내세우던 발란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명품 플랫폼 업체들은 일제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동종 업계인 머스트잇(대표 조용민)과 트렌비(대표 박경훈) 등 경쟁사들은 선정산 지원책을 내놓으며 발란 사태와의 차이를 강조했다. 파트너사의 유동성 우려를 없애고 운영 원칙을 구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럼에도 명품 플랫폼 시장의 위기는 실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머스트잇 168억원, 트렌비 32억원, 발란 1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머스트잇의 경우 작년에도 79억원의 손실을 내면서 흑자전환에 실패했다. 매출 또한 전년(250억원) 대비 52% 감소한 119억원을 기록하며 반토막 실적을 냈다.
머스트잇 등 명품 커머스 업계 투자 심리 살얼음
머스트잇은 신규 투자 유치에도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발란 사태로 명품 플랫폼 투자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어 지난 2월 시리즈C 투자유치를 개시한 이후 현재까지 2개월 넘도록 단 한 곳의 밴처캐피털(VC)도 신규 투자자로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머스트잇은 재무적 투자자(FI)가 아닌 전략적 투자자(SI) 확보로 방향을 전환했다. 고가 소비 심리 위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명품 플랫폼은 FI가 피할 수밖에 없는 투자처가 됐기 때문이다. 최근 SI 확보에 집중하기로 한 머스트잇은 삼정KPMG를 투자유치 자문사로 선정하고 시리즈C 단계의 전략적 투자 유치 절차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트렌비도 작년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중고 명품 사업과 글로벌 확장으로 흑자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를 이뤄내지 못한 것이다. 작년 영업이익 추이는 1분기 -6억8000만원, 2분기 -12억5000만원, 3분기 -8억7000만원, 4분기 -1억5000만원으로 총 29억5000만원의 손실을 냈다. 매출도 전년(402억원)대비 48% 줄어든 207억원을 기록했다.
주요 명품 플랫폼 연간 실적 추이 (이미지=패션비즈)
젠테, 머트발 꺾고 1위? ‘외형 커졌지만 수익 ↓’
또 다른 명품 플랫폼 젠테(대표 정승탄)도 시리즈B 라운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젠테는 2020년 설립된 3세대 명품 플랫폼으로 발란, 트렌비, 머스트잇과 달리 부티크로부터 직매입하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즉 부티크 상품을 젠테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와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부티크 100% 직소싱’을 내세워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넓혔다.
매년 최대 매출을 달성하는 등 머트발을 꺾고 업계 1위에 올라서며 외형 확장에는 성공했지만 재고부담으로 인한 영업손실 및 미처리결손금 등이 증가해 적자 폭이 확대됐다. 2023년 488억원의 매출 기록함과 동시에 5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지난해도 매출 537억원, 영업손실 53억원을 기록하는 등 수익성 개선에 힘썼지만 흑자전환은 실패했다.
주요 플랫폼 외에도 명품 커머스 시장 전체에 대한 소비 심리가 얼어 붙고 있다. 모바일인덱스 조사에 따르면 국내 명품 플랫폼 7곳(발란, 트렌비, 머스트잇, 오케이몰, 필웨이 등)의 카드 결제 금액이 지난해(1~8월) 3758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9245억원) 대비 59% 감소한 수치로, 코로나19 특수로 규모를 키웠지만 경기 침체와 명품 수요 감소 등의 이유로 업황이 다시금 악화됐다.
명품 플랫폼 A사 관계자는 “경기 침체와 명품 수요 감소가 이어지며 명품 플랫폼 시장은 지속해서 하락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발란 사태가 업계의 충격을 준 것은 맞지만 이는 스타트일 뿐, 이미 명품 커머스가 한계에 다다랐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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