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비효율 털어내고 재정비 분주” 패션기업, 비상경영 나섰다
몸집이 큰 패션 대기업부터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선택과 집중’ 카드를 내밀고 있다. 지금은 볼륨화가 아닌 슬림화 시대로 가는 편이 수익구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신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기업 본연의 능력치를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체력을 키우며, 브랜드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는 등 불확실성을 극복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메이저 패션기업들이 외형을 키우기보다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장기화된 경기불황과 소비위축이 짙어진 가운데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택한 것이다.
브랜드 구조조정을 통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실현해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패션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인력 채용도 최소한으로 잡고, 물량 및 마케팅 비용 등 예산을 긴축해 타이트한 관리로 고삐를 조이고 있다.
올해 임직원 승진 인사는 물론 신규 사업도 예년에 비해 극도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국내 메이저 패션기업들은 경기불황뿐 아니라 고물가·고환율 영향으로 예상보다 제반 비용이 가중됐으며,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경기 상황과 이상기후 등이 작년에 이어 올해 시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시장 주도권을 잡고 있던 기존 레거시 기업들은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는 패션 마켓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버거워하며, 새로운 엔진 개발에 나서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도태된다는 위기감 속에서 비상경영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고물가 · 고환율 속 제반비용 늘어나 위기감
삼성물산패션부문(부문장 이준서)은 지난해 상반기 ‘메종키츠네골프’를 중단한 데 이어 올해 S/S 시즌을 끝으로 니트 특화 여성복 ‘코텔로’를 접는다. 코텔로는 2021년 하반기 론칭한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자사몰 ‘SSF샵’을 중심으로 운영하며, 오프라인 팝업을 병행해왔다.
삼성물산패션부문 관계자는 “과거와는 달리 온라인 채널을 통해 다양한 브랜드를 론칭하고 새로운 소비층들을 겨냥해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중단하는 사례가 예전보다 많아지는데 시장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 앞으로도 이런 케이스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메종키츠네골프의 경우도 프랑스 메종키츠네 본사와 협의를 통해 MZ세대를 위한 골프웨어에 새롭게 도전했으나 메종키츠네 메인 라인에 더욱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철수를 결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코텔로
LF · 코오롱FnC 등 패션 사업구조 바꾼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대표 유석진)도 실적 한파가 몰려오자 경영 효율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남성복 ‘프리커’, 여성복 ‘리멘터리’, 캐주얼 ‘럭키마르쉐’ 등 온라인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던 브랜드 일부를 정리했다. 올해는 골프웨어 ‘잭니클라우스’와 ‘엘로드’, 스포츠 브랜드 ‘헤드’ 등 주요 브랜드들의 효율화를 위해 사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코오롱FnC부문의 한 관계자는 브랜드 중단설에 대해서 일축하며 “잭니클라우스는 서브 라이선스 사업으로, 엘로드는 골프클럽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라며 “헤드는 스포츠 전문웨어쪽으로 사업을 전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LF(대표 오규식 · 김상균)는 지난해 ‘랜덤골프클럽’ ‘스탠다이얼’ ‘티피코시’ 등을 중단한 데 이어 올해도 브랜드별 효율화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LF는 지난해부터 ‘선택과 집중’ 전략을 앞세워 브랜드 구조조정은 물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내실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한 내부 정비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MZ세대 공략 온라인 전용 브랜드 “쉽지 않네”
한세엠케이(각자대표 김지원 · 임동환)는 키즈 스트리트 멀티 스토어 ‘컬리수에딧’ 사업을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새롭게 선보인 컬리수에딧은 기존의 ‘컬리수’ 브랜드를 리뉴얼한 편집형 브랜드다. 한세엠케이 측은 “저출산 시대에도 국내외 패션 브랜드들이 앞다퉈 키즈 라인을 강화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라면서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현재 성장세를 보이는 ‘모이몰른’ ‘플레이키즈프로’ ‘나이키키즈’ 등에 기업 역량을 집중하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한세엠케이는 골프웨어 ‘PGA투어’ ‘LPGA’ 사업도 축소 운영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특수로 호황을 누렸던 골프산업이 이용자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자 운영 효율화를 위해 28개점이었던 오프라인 유통망을 상반기 내 아울렛 매장 위주로 정리하고 온라인 판매 중심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시기에 호황을 맞았다가 거품이 빠진 골프웨어 시장은 계속해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브랜드가 생겨나며 마켓 전반에 옥석이 가려지고 있다. 지난해 에스앤에이(대표 백관근)의 ‘톨비스트’ 등이 정리한 데 이어 캘러웨이골프코리아(대표 제임스황)의 ‘트래비스매튜’, 독립문(대표 김형건)의 ‘엘르골프’도 사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컬리수에딧
이제부터 시작? 중소업체들도 생존 판가름
이 외에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해 운영하는 브랜드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제이씨패밀리(대표 김예철)의 골프웨어 ‘혼가먼트’가 올 초 백화점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했으며, 에스제이그룹(대표 이주영)은 팬 아메리칸 월드항공과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탄생한 ‘팬암’을 온라인 중심으로 바꿀 계획이다. 서양네트웍스(대표 방소현)의 아동복 ‘알로봇’도 오프라인을 축소하고 온라인에서 가성비를 높여 운영하고 있다.
수입 브랜드의 국내 비즈니스 철수 소식도 들려온다. 신세계인터내셔날(대표 윌리엄김)에서 2007년 국내에 들여온 미국 SPA 브랜드 ‘갭’은 18여 년 만에 계약을 종료한다. 신세계백화점과 온라인몰 등에서 판매했고, 키즈 단독 매장을 열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현재는 매장을 정리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가 몇 해째 이어진 패션 시장에서 사업구조의 효율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며, 기업의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도 불가피한 정책이다. 패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만의 일이 아니라 중소기업도 의류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한계치에 다다른 곳들이 부지기수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위기감 속에서 패션 마켓의 시장 재편은 올해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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