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이 아니라 괜찮다?... 합법적 유사품 '듀프' 이대로 괜찮은가
'샤넬' '구찌'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 디자인을 모방한 '듀프'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소득이 낮은 젊은 연령대를 중심으로 '가성비' 트렌드가 확산되며 '듀프 소비' 또한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고 있는 가운데, 복제품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허용 범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듀프(Dupe)'는 복제품(Duplicate)의 줄임말로, 고가 브랜드의 디자인 또는 기능을 살짝 변형한 '저가 모방 제품'을 의미한다. 쉽게 '저렴이' '고가 브랜드의 값싼 복제품'으로 불린다.
고가품을 대신해 저렴한 대체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며 명품 혹은 고가 브랜드 제품의 매력은 반감되고 오히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듀프가 하나의 소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다.
월마트, 에르메스 버킨백 듀프 상품 전량 품절
최근 미국 대형 유통사인 월마트가 출시한 '에르메스 버킨백'의 듀프 상품이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전량 품절됐다. 지난해 8월 월마트는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매우 유사한 핸드백 '워킨백'을 출시했는데, 디자인과 소재 등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버킨백과 똑 닮아 출시 초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9000달러(약 1300만원)가 넘는 가격의 버킨백과 매우 흡사한 가방을 78달러(약 11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많은 구매가 이뤄진 것이다.
이외에도 '샤넬' '구찌' 등 명품 브랜드 제품과 비슷한 듀프 상품을 비롯해 '자라' 'H&M' '앤아더스토리즈' 등 SPA 브랜드에서도 고가 브랜드 스타일과 유사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요가복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룰루레몬'의 듀프 브랜드(CRZ요가, 할라라 등)도 있다.
여기에 이커머스 플랫폼까지 합세해 듀프 소비를 겨냥한 다양한 복제품이 속속히 출시되면서 패션 업계에서는 어디까지가 듀프 상품인지에 대한 의문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월마트의 워킨백(좌), 에르메스의 버킨백(우)
짝퉁은 불법, 듀프는 합법?...경계선 모호
듀프 상품은 브랜드의 로고까지 명품으로 착각하게 만든 위조품 '짝퉁'과는 차이가 있다. 특정 브랜드의 로고와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 상표권을 침해하는 위조품은 불법이지만, 디자인과 주요 특징을 비슷하게 따라 한 복제품(듀프)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외적 법적 문제가 없는 모방이라고 해도 어디까지 듀프이냐 대한 경계가 모호해 지식재산권 문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특히 특정 디자이너 브랜드 혹은 소형 브랜드의 경우 사업에 큰 피해를 주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8월 미국 고급 가구 브랜드 '월리엄스소노마'는 '듀프 닷컴'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유명 브랜드 오리지널 제품의 듀프 상품을 검색해 주는 사이트인 듀프닷컴이 자사 디자인을 무단 복제한 제품을 노출해 저작권 침해 및 브랜드 이미지에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였다.
'듀프' 상표법·디자인보호법 등 문제없어
미국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이글' 또한 아마존을 상대로 "열등한 품질의 모조품으로 소비자들을 이끌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 브랜드 '에어리'와 '오프라인바이에어' 상표를 무단 사용하고 고객들을 속여 아마존에서 판매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듀프는 짝퉁이 아니기에 상표법, 특허법, 디자인보호법 등을 피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상표나 브랜드명 위조한 것은 문제가 되는데, 디자인 유사성에 대해서는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은 조금 다르다.
2015년 에르메스백 디자인에 눈알 모양의 장식만 추가한 이른바 '눈알 가방' 논란이 이어지며 '에르메스'가 한국 패션 브랜드 '플레이노모어'를 상대로 부정경쟁행위 금지를 주장하는 소를 제기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는 플레이노모어가 에르메스의 성과물을 도용해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물 도용에 의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정경쟁방지법이 문제, 법적 처벌 가능성↑
법조계 일각에서는 브랜드에 허락받지 않은 듀프 제품의 경우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법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타인의 성과를 허락 없이 도용해 해당 업체에 경제적 이익을 침해한 경우 디자인권 존속 기간이 만료됐더라도 부정경쟁방지법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경 건국대학교 교수·패션디자이너연합회 변호사는 "듀프는 짝퉁이 아니므로 특허법, 디자인보호법 등에 위반되지 않지만 듀프 제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며 "에르메스 '눈알 가방 사건' 등의 사례로 보아 듀프 현상은 앞으로 좀 더 신중히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길 특허법인로율 대표 변리사는 "합법적 모방이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은 누가 봐도 다른 디자인의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 데, 듀프의 경우 합법적 모방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사례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에서 허락 없이 유사품을 내놓은 것은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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